얼마전 '부용 신작로'란 내글을 받아 본, 용지 죽신리 살았으며 KBS 스포츠국장을 지낸 친구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신작로는 부용국민학교까지가 아니라 용지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고 하며 그때의 부용 신작로를 잘 표현해 주어 감동했다고 하면서 몇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부용은 그때 대부분 용지 사람들이 왕래하던 텃밭이었다고 . . 용지에는 국민학교 부근에 아무것도 없었고 교회도 몇명 어느 집에 모여 예배 드리는 시작 단계여서 부용 교회를 다녔는데 나랑 5학년 때쯤 만났다 용지 사람들이 부용역을 이용하였고 그래서 부용 술…
우리 친구들 가운데 실제 본격적인 농삿일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시절 농사라는 것은 지게를 지어 필요한 충분한 짐을 나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논농사, 밭농사이던 수확물은 전부 집으로 가져와야만 했었고 농사에 필요한 씨를 포함 거름(퇴비) 등은 모두 지게를 이용하여 나르지 않으면 안되는 게 그 당시 농촌상황 이었었지 ! 물론 소구루마가 있으면 조금 느리지만 오늘의 자동차 한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맞먹는다고 생각되나 그런 집은 많지 않았고, 또 소를 보유하려면 꼴을 베고 여물을 위해 소죽을 …
지금은 서부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는 칙칙폭폭 검은 연기를 날리며 여객차량에 때로는 한쪽은 짐칸이 달린 기차를 타고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 통학을 했었다 내가 살던 부용은 호남선에 있는 작은 역으로 아침 기차시간에는 대부분이 생활 근거지가 이리인지라 그 근방 학생 통근자들이 역 플랫폼에서는 낯익은 아저씨. 혼자만 좋아하던 예쁜 여학생, 친구 모두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억에 남는 장소였었다 한 정거장만 가면 되기 때문이며 항상 만원이었기에 오랜기간 주로 문 가까이 객차 오를때 잡는 손잡이 부근에서 타고 다녔었다 시절에 따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