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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으로 추억여행

옛 버스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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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댓글 0건 조회 2,155회 작성일 22-03-1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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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버스와 차장

학창시절 만원 버스 입구에 올라탄 우리 등을 뒤에서 밀면서 탕탕 차를 두드리고 손잡이를 잡으며  '오라잇'하고 여차장이 버스를 출발시키던 시절이 있었다

기차 통학할 때 학교가 일찍 끝나는 토요일은 항상 이리역 광장, 대합실, 학생회관 등에서 서성거리며 저녁 통학차 시간까지 보통 5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무척 지루하였었고 때로는 철로 7.2km 를 2시간 걸려 친구들과 함께 걸어 오기도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5 시간 이상 오랜 시간을 할 일없이 마냥 기다려야 했었다
지금 이라면 자가용으로 . . ㅎㅎ

무작정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용에서 가까운 유강리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생긴 것을 알게되어 몇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탔다
내려서 집까지 한참을 걸어 왔으며 얼마 후 방개까지 차가 오고 나중에는 부용에 까지 버스가 들어 왔다

부용으로 오는 김제로 가던 지방도로는 고교졸업할 때까지 자갈릴로 늘 덜컹거렸으며 차가 많이 흔들려 울렁이고 멀미가 날 때가 있었다
전주 방향으로는 길이 좋았고 처음에는 버스가 백구정 까지만 왔었는데 나중에 반월리까지 오는 버스가 생겨 시간을 보고 골라서 반월리로 타고 와 걸어오는 때도 있었으며 둘 다 집까지 걸어오는 시간은 비슷했다
지금 생각하니 한시간 조금 못되게 걸은 것 같다

고교때 한동안 기차를 타지않고 버스를 이용 했는데 부용역 앞에서 기다리면 멀리 황산에서 덜컹거리며 뿌연 먼지를 휘날리면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때 버스비가 15 원이었는데 1 원짜리 15 개는 동전이 한 주먹이었지
줄을 서서 타는데 여러개의 동전을 잘 세어 보지 않을것 같아 한 두개를 빼놓고 버스차장한테 주면서 맴이 조마조마, 가슴이 콩닥콩닥 . .
다음부터는 그깟 1 원 때문에 그렇게 마음 조릴 필요가 없다 싶어 그러지 않았다
그때 계란이 10 원, 짜장면이 15 원 정도였으니 1 원이면 작은 돈은 아니었다

기차로 이리역 도착후 학교가는 왼쪽 길은 호남국토건설국 사무소 옆까지 굉장히 넓었으나 포장이 안되어 우둘투둘했으며 졸업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 중간에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 나오면 중앙시장으로 꺽어지는 길이 나오고 그냥 바로 가면 길이 좁아지면서 학교가는 길이다

그때 하늘색 제복을 입은 버스차장을 창인동 옆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주차장 안팎을 왔다갔다 하면서 많이 보았었다
'껌 있어요' 하며 대나무 바구니에 껌과 캬라멜, 초코렛 등을 잔뜩 담고 버스를 오르 내리는데 버스가 출발하려는 데도 좀처럼 내리지 않고 팔고있던 그 아가씨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누나는 우리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였고 얼굴이 약간 넓적하며 가냘픈 목소리였었는데 그때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던 친구들은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버스 차장은 어느듯 사라졌지만 우리들 학창시절 이후에도 한동안 버스에 차장이 있었으며 아래에 전해들은 어느 시내버스 여차장과 한 대학생의 사랑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울에 부잣집 외동 아들이 있었어요.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신체의 일부가 자유롭지 못했지요.
그렇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K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이었어요.
그런데 매일 학교가는 버스에서 여차장과 낯이 익어 눈 인사를 나누게 됐어요.
80년대의 사회상이었죠.

♡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여차장은 자리도 잡아주고 간혹 부축도 해주면서 둘 사이에 어느덧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고, 청년은 행복했어요.
몸이 불편한 자신을 보듬어 주는 연인이 생겼으니까 . .

♡ 버스차장도 행복했어요.
배움이 부족한 자신에게 대학생 애인이 있으니까 . .
둘은 휴일이면 데이트도 하며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갔어요.

그런데 청년 집에서 이를 알아채고 난리가 났지요.
아무리 장애가 있더라도 큰 부잣집 외동 아들이었거든요.
부모가 버스회사로 찾아가서 난리를 치고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을 줬어요.
어디 가난하고 무식한 촌년이 감히 남의 귀한 아들을 넘보느냐고.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시골에서 올라와 고된 차장 일을 하며 가난하나마 보랏빛 장래를 꿈꿔왔는데,
그런 수모를 겪은 후에 . .

♡ 버스차장 일을 그만두고 홀연히 종적을 감췄어요.
청년은 근 한달간 집에 갇혔대요. 그는 부모에게 다시는 그녀를 안 만나겠다고 맹세를 하고 겨우 집 밖으로 나온 첫날, 곧 바로 그녀가 일하던 버스회사로 가서 사정 사정하여 그녀의 시골집 주소를 알아내곤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 그녀의 부모님은 돌아가셔서 오빠집에 얹혀 살았어요.
오빠가 말없이 가리키는 뒷산 중턱에는 그녀의 무덤이 . .
집에 와 일주일을 몸져 누웠던 그녀는 농약을 마셨던 거예요.
가난하고 부모없이 고생하며 배움도 짧았건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사랑이 수모로 끝나자 더 이상 세상을 버틸 기력이 없었던거지요.

♡ 청년은 절규했어요!
자기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울부짖었지 . .

♡ 그리고 어느날 청년도 그녀의 무덤가에서 약을 먹고 뒤를 따랐대요.
그의 점퍼 주머니에는 그녀를 그리는 다시 한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애닲고 구구절절한 유시(遺詩)가 있었는데,
그 시에 곡을 붙여서 부른 노래가 80년대에 히트를 했답니다.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머물고간 바람처럼

  기약없이 멀어져간 내 사랑이여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지지않는 사랑의 꽃으로

  다시 한번 내 가슴에

  돌아오라 사랑이여 내 사랑아

  아 ~ 사랑은 타버린 불꽃

  아 ~ 사랑은 한줄기 바람인 것을

  아 ~ 까맣게 잊으려 해도

  왜 나는 너를 잊지 못하나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

  영원토록 못잊어, 못잊어 . .

⬇️ 유심초의 사랑이여...
https://www.youtube.com/watch?v=xI77g5okDzg

□ 아랫사진 : 옛 이리 시내버스 정류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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