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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으로 추억여행

흙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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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댓글 0건 조회 2,009회 작성일 21-12-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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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탕길
어렸을 때와 비교하여 많이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길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때 시골길은 모두 흙으로 된 길이었고 때로는 가시밭길로 다가 왔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단단하고 다니기 좋았던 길이 바람이 불면 흙 먼지가 날리다가 비가 오면 질퍽거리고 다니기 어려운 길이 된다

비가 많이 와서 땅이 물을 흠뻑 머금어 물러져 있는 길에 무거운 나락을 잔뜩 실은 소 구루마나 큰 트럭이 지나가며 신작로와 주된 도로에 두줄기의 넓고 깊은 타이어 바퀴자국을 만들어 놓았다
낮은 웅덩이와 바퀴 자국으로 파인 곳에 물이 고여 자동차나 구루마가 지나갈 때 멀지감치 피하여 물창 튀기는 것을 조심해야 했다

비가 오고나서 소구루마, 리어카, 짐자전거,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은 질어지며 진흙밭과 흙탕물 웅덩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땅바닥이 흙인 골목길도 마찬가지여서 그땐 미끌미끌한 곳을 피하고 발 디딜 수 있는 좋은 곳을 찾아 한발짝 두발짝 뜀뛰기나 넓이뛰기, 깨금질을 하면서 건너야 했다
질펀한 부위를 건너려고 뜀뛰기를 하다가 미끄러운 흙을 잘못 밟아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훌러덩 자빠지거나 절푸덕 미끄러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비가 오면 흙길은 미끄렀었으니까 조심 했어야지

그럴 때 멋있는 하얀 장화 또는 검정색 장화를 신고 일부러 물 고인데를 발로 휘젓으며 걷는 친구들도 있었기는 하지만 . .
그땐 하얀 장화를 신은 사람이 부러웠고 그런 장화신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장화를 신었어도 수렁길, 진흙이 들러붙는 미끄러운길은 조심해야 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눈이 오는 겨울에는 더욱 심했다
가끔 서부영화에도 그런 모습이 나오는데 도로 포장이 안됐던 서부의 시내에서도 진흑길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래도 서부는 마차나 말을 타고 다닐 수 있었던게지

눈이 내려 쌓이면 길이 미끌미끌하여 조심스럽게 발 미끄럼을 타면서 걸었다

그러나 날이 좋아지고 햇볕이 나면 양지부터 눈과 얼었던 길이 녹으면서 그때부터 신작로나 주된 길들은 질펀해지고 불편한 길이 되기 시작한다
신작로 길이 온통 질펀질펀한 진흙밭이 되고 웅덩이 흙탕물로 발 디딜만한 자리가 없을 때는 골목길을 찾아서 먼길로 돌아 가기도 했다
때로는 신작로 길은 가상 울타리 바짝 옆으로, 가게 코앞으로 사람들이 밟지않은 부위를 찾아 행여 바지에 진흙이 묻을세라 조심조심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역전 근방에 사는 친구들과 나 또한 학교 끝나고 신작로로 올 때 우리집 골목으로 꺽어지기 까지의 멀지 않은 길이지만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 ?' 하고 걱정해야 하는 꺽정스런 길 이기도 했다
방죽길은 둑 아래 경사진 풀이 난 곳으로 방죽이 얼면 얼음 위로 걸었고, 중학교 가는 길은 길옆 풀이 자란 곳 묘지가 있는 잔디 위로 진흙을 피하여 걸었다
용지쪽 사거리 가는 길은 길옆 밭 속으로 밭 두덕길로 물을 잔뜩 먹어있는 길을 피해 갔었다

그땐 바지 자락에 진흙이 묻으면 햇볕에 말려서 가랭이를 두 손으로 비비고 털었었지
집에 왔어도 묻은 흙물이 마르지 않았으면 부엌 불때고 있는 누나 옆에 서서 따뜻한 아궁이 불을 쪼이며 가랭이를 말렸다

우리들은 국민학교 내내 졸업할 때까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었다
고무신이 찢어지면 꼬매서 신었고 꼬매진 틈으로 흙물, 진흙이 들어오면 양말은 그대로 젖을 수 밖에 없었다

비올 때 찢어진 고무신 사이로 발고락이 슬며시 내밀었지만 할수없이 계속 걸었고 고무신에 흙탕물이 들어오면 발을 딛을때 미끌미끌하여 차라리 벗어 손에 들고 맨발로 진흙 속으로 걸어 왔었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발이 시리니까 더욱 조심할 수 밖에 없기도 했지

학교 마당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내리면 온통 하얗게 된 세상을 반기며 운동장에서 발자욱을 만들고 친구들과 눈싸움을 즐기다가도 해가 나서 금방 녹기 시작하면 질펀하여 발자국으로 쑥쑥 들어가는 운동장 가운데를 피하여 남쪽 벚나무 아래와 북쪽 소나무 밑으로 걷기 좋은 곳을 찾아서 고무신에 흙이 묻지않게 피해 다녔었다
그러다 운동장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내 작은 검정 고무신이 구두가 되고 조금 더 걸어가면 나중에는 워카가 되어 발을 들기조차 힘이 들도록 신발에 흙덩이가 둘러 붙었었으니까

물 고인 웅덩이와 질펀했던 길이나 학교 운동장도 밤에는 살얼음이 얼어 꼬독꼬독 하다가 다음날 햇빛을 받으면 다시 녹아 질퍽질퍽하게 되었다
그러한 날이 며칠간을 반복하다가 맑은 날이 계속 이어지고 조금 따뜻해지면 점점 길바닥이 마르며 나중에 길이 정상화가 되었다

이것들은 60년대 ~ 70년대 초반 우리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었다

초교 때 백구에 가는 길에 전주-군산간 도로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가다보니 길 바닥이 매끈매끈한 곳이 나와서 무슨 이런 데가 다 있어 하고 촌놈이 검정 고무신을 벗어 손에 들고 반들반들하는 길을 뛰어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도로 전체가 그랬던 것은 아니고 파손이 많이 진행되어 있고 일부만 그랬기 때문에 버스가 다니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일제의 잔재가 그때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70년도 고등학교 무렵 이리-김제간 도로는 비포장 자갈도로였었다
그 길을 자전거로 부용에서 김제 친척집까지 갔다 온적이 있었는데 바닥에 자갈이 깔려있어 작은 돌팍들을 요리저리 잘 피하지 않으면 안되었었다
그 시절에는 맑은 날이면 자갈길을 달리는 버스 뒷 꽁무니에는 항상 뿌연 모래 연기가 날리는 것을 멀리에서도 볼 수 있었으니까 . .
주요 지방도로는 자갈을 주기적으로 깔았었으나 자갈길도 오래되면 웅덩이가 여기저기 생겼었었지

이리시내 주 도로는 아스팔트 포장 도로였었다
지금과는 다른 뜨거운 콜타르를 길에 부어 만든 아스팔트 길로 여름철 더울 때는 뜨거운 햇볕으로 검정색 길바닥이 뜨거워지고 물렁거리며 콜타르가 신발 밑창에 찐덕진덕 늘러 붙기도 했다
성광교회 부근에서 어떤 친구의 신발 밑바닥이 콜타르에 착 달라붙어 쫘-악 소리가 나며 농구화 밑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 후 질펀하던 시골길도 점차 포장하여 좋아지고 골목길 조차 흙이 없어졌다
흙바닥과 작은 모래로 먼지가 조금 나지만 안전하고 자연적이던 도시의 학교 운동장들도 플라스틱 제품으로 운동장과 트랙을 모두 덮어버린 것 같다

그 옛날 울퉁불퉁 파여진 시골 웅덩이 길을 학생들을 몽땅 실은 콩나물 버스가 느릿 느릿 좌우로 흔들 흔들 가는데 타고있는 나도 앞에 숨죽이며 끼여있는 단발머리 예쁜 여학생도 서로 앞이 밀착된 모습으로 심장이 콩콩 콩콩 함께 기우뚱 자우뚱 거리던 추억이 머리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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