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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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
친구가 보내온 노랗게 익은 보리밭 정경을 보니 지금이 그 시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이제 조금 늦었을 것입니다
보리를 비어내고 모 심는 시기 말이죠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모를 심어야 하므로 이모작하는 논은 모심는 시기가 항상 조금씩 늦었지요
집앞에 보리밭이 있고 동네 밭, 산 밭 그리고 논에도 보리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보리는 벼보다도 생활에 더 가까웠습니다
동네 한가운데 밭에도 보리를 심었고 학교에서 오는 길은 보리밭 사잇길이었습니다
보통 늦가을에 심어 한겨울 추위 눈밑에서 견뎠고 일찌감치 푸릇하기 시작하여 봄이 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봄에 보리를 심어 늦게 대열에 합류한 보리밭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수확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추운 이른 봄 보리밟기하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발들이 보리밭을 자근자근 밟으면 성에들이 올려놓은 보리 뿌리가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았습니다
들뜬 어린 보리를 밟아 주면 죽지않고 잘 자란다고 했었지요
봄철 단비를 맞으면 푸른 보리로 쑥쑥 자라고 키가 큽니다
그러면 농부들은 보리밭 둑에 무성하게 함께 자라는 독새풀을 베어야 했고 . .
비 바람이 한바탕 지나가면 보리가 견디지 못하고 밭 한쪽이 땅바닥에 그냥 누워버리기도 했었습니다
보리가 자라면 보리밭에 들어가 깜부기를 뽑아들고 친구 얼굴에 검정칠도 하고, 보리밭 고랑으로 숨기놀이도 하고, 놀다가 급할땐 보리밭 속으로 들어가 숨어 용변을 보기도 하고 . .
보릿대가 노랗게 변하고 논밭의 보리밭이 온통 누런 물결로 출렁대기 시작할 때 쯤이면 농촌에서는 보리베기 준비와 함께 벼농사 준비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높은 언덕위에 올라보면 누런 보리밭 물결이 출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지요
맑은 하늘에 아지랭이가 아물거리고 노고지리가 하늘에서 노골~노골~지리~지리 우짓는날 꿩은 꿰엑~꿱 짓다가 보리밭으로 숨습니다
조금있다가 농부들은 밀대모자 쓰고 낫으로 여기저기서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데 산에서 보면 평평바다가 군데군데 이빨빠진 바둑판으로 되어 갔습니다
벼를 심기 위해 논보리부터 베기 시작했으며 보리는 벼에 비하여 가벼워 낫으로 보릿대를 잡고 베기가 쉬웠습니다
보리를 다 베어 밭에 깔아 놓고 일주일 쯤 말리고 묶은 뒤 멍석을 깔아놓고 탈곡기 기계가 오는 것을 기다렸지요
한쪽에 엔진을 잘 고정시키고 탈곡기와 벨트를 연결한뒤 엔진 시동을 걸면 '통통통통 . . .'
한쪽에서는 기계에 보릿대를 연신 집어넣고 다른 쪽에서는 갈퀴로 날려 나오는 보릿대 등을 긁어 정리하였습니다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보리의 까락이 옷속에 파고들어 가렵고 따거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보릿대는 잘라서 빨대로 사용하는데 딱 이었으나 당시 청량음료를 즐길 상황은 아니어 그저 보릿대로 비눗방울을 만들어 날리며 놀곤 하였습니다
당시에도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어 먹을 양식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보리가 익는 것을 많이 기다렸겠지만 우리는 심심하면 덜익은 보리를 베어다가 모닥불에 구워 익은 보리알을 호호 불며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쌀이 부족한 시기로 국가에서는 혼식을 장려하였고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학교 선생님이 도시락 밥에 보리가 들어 있는지를 검사하기도 하였었습니다
집에 쌀이 없어 꽁보리밥만 먹는 집도 많았었지요
노래도 있었죠 '꿀맛보다 더 좋은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사람 신체 건강해 ~♪ !'
보리는 밥을 지을 때 잘 익지않아 학독에 갈았었고 또 오랫동안 물에 담가서 불렸다가 쌀과 섞어야 했으므로 밥을 짓는데 조금 불편하였습니다
또 보리밥은 꺼글하며 잘 씹이지 않고 입에서 잘 넘어가지 않아 먹기 싫어 했었으나 최근 칼슘과 비타민 B가 많고 섬유질이 풍부하여 변비와 당뇨병에 좋다고 하여 아예 꽁당 보리밥만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보리방귀라는 표현도 있었는데 보리밥을 먹고 난 후 뀌는 방귀는 보리의 식이섬유가 장운동을 촉진기키기 때문이라고 하며 좋은 현상이라고 합니다
당시 보리 가격은 쌀의 절반 정도였으므로 쌀 한가마니로 보리 두가마니를 살 수 있었습니다
보리는 겉보리와 쌀보리로 나뉘어 겉보리는 쌀보리보다 키가 더 크고 까락이 더 길었으며 거기에 알곡 표면에 껍질이 있었습니다
옛말에 '겉보리 세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않는다' 라는 말과 함께 '처가집과 변소는 멀을수록 좋다'라는 사고방식의 호랑이 담배먹던 시기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즉 겉보리는 주로 엿기름을 만들어 식혜를 만들었고 밥을 해먹을 수도 있으나 껍데기 때문에 먹기가 굉장히 불편하였지만 그것이라도 있으면 처가집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어릴적 보리밭 생각하며 제가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이있서 발을 멈춘다 ~ ♬ . . . . . . . . . '
친구가 보내온 노랗게 익은 보리밭 정경을 보니 지금이 그 시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이제 조금 늦었을 것입니다
보리를 비어내고 모 심는 시기 말이죠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모를 심어야 하므로 이모작하는 논은 모심는 시기가 항상 조금씩 늦었지요
집앞에 보리밭이 있고 동네 밭, 산 밭 그리고 논에도 보리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보리는 벼보다도 생활에 더 가까웠습니다
동네 한가운데 밭에도 보리를 심었고 학교에서 오는 길은 보리밭 사잇길이었습니다
보통 늦가을에 심어 한겨울 추위 눈밑에서 견뎠고 일찌감치 푸릇하기 시작하여 봄이 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봄에 보리를 심어 늦게 대열에 합류한 보리밭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수확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추운 이른 봄 보리밟기하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발들이 보리밭을 자근자근 밟으면 성에들이 올려놓은 보리 뿌리가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았습니다
들뜬 어린 보리를 밟아 주면 죽지않고 잘 자란다고 했었지요
봄철 단비를 맞으면 푸른 보리로 쑥쑥 자라고 키가 큽니다
그러면 농부들은 보리밭 둑에 무성하게 함께 자라는 독새풀을 베어야 했고 . .
비 바람이 한바탕 지나가면 보리가 견디지 못하고 밭 한쪽이 땅바닥에 그냥 누워버리기도 했었습니다
보리가 자라면 보리밭에 들어가 깜부기를 뽑아들고 친구 얼굴에 검정칠도 하고, 보리밭 고랑으로 숨기놀이도 하고, 놀다가 급할땐 보리밭 속으로 들어가 숨어 용변을 보기도 하고 . .
보릿대가 노랗게 변하고 논밭의 보리밭이 온통 누런 물결로 출렁대기 시작할 때 쯤이면 농촌에서는 보리베기 준비와 함께 벼농사 준비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높은 언덕위에 올라보면 누런 보리밭 물결이 출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지요
맑은 하늘에 아지랭이가 아물거리고 노고지리가 하늘에서 노골~노골~지리~지리 우짓는날 꿩은 꿰엑~꿱 짓다가 보리밭으로 숨습니다
조금있다가 농부들은 밀대모자 쓰고 낫으로 여기저기서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데 산에서 보면 평평바다가 군데군데 이빨빠진 바둑판으로 되어 갔습니다
벼를 심기 위해 논보리부터 베기 시작했으며 보리는 벼에 비하여 가벼워 낫으로 보릿대를 잡고 베기가 쉬웠습니다
보리를 다 베어 밭에 깔아 놓고 일주일 쯤 말리고 묶은 뒤 멍석을 깔아놓고 탈곡기 기계가 오는 것을 기다렸지요
한쪽에 엔진을 잘 고정시키고 탈곡기와 벨트를 연결한뒤 엔진 시동을 걸면 '통통통통 . . .'
한쪽에서는 기계에 보릿대를 연신 집어넣고 다른 쪽에서는 갈퀴로 날려 나오는 보릿대 등을 긁어 정리하였습니다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보리의 까락이 옷속에 파고들어 가렵고 따거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보릿대는 잘라서 빨대로 사용하는데 딱 이었으나 당시 청량음료를 즐길 상황은 아니어 그저 보릿대로 비눗방울을 만들어 날리며 놀곤 하였습니다
당시에도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어 먹을 양식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보리가 익는 것을 많이 기다렸겠지만 우리는 심심하면 덜익은 보리를 베어다가 모닥불에 구워 익은 보리알을 호호 불며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쌀이 부족한 시기로 국가에서는 혼식을 장려하였고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학교 선생님이 도시락 밥에 보리가 들어 있는지를 검사하기도 하였었습니다
집에 쌀이 없어 꽁보리밥만 먹는 집도 많았었지요
노래도 있었죠 '꿀맛보다 더 좋은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사람 신체 건강해 ~♪ !'
보리는 밥을 지을 때 잘 익지않아 학독에 갈았었고 또 오랫동안 물에 담가서 불렸다가 쌀과 섞어야 했으므로 밥을 짓는데 조금 불편하였습니다
또 보리밥은 꺼글하며 잘 씹이지 않고 입에서 잘 넘어가지 않아 먹기 싫어 했었으나 최근 칼슘과 비타민 B가 많고 섬유질이 풍부하여 변비와 당뇨병에 좋다고 하여 아예 꽁당 보리밥만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보리방귀라는 표현도 있었는데 보리밥을 먹고 난 후 뀌는 방귀는 보리의 식이섬유가 장운동을 촉진기키기 때문이라고 하며 좋은 현상이라고 합니다
당시 보리 가격은 쌀의 절반 정도였으므로 쌀 한가마니로 보리 두가마니를 살 수 있었습니다
보리는 겉보리와 쌀보리로 나뉘어 겉보리는 쌀보리보다 키가 더 크고 까락이 더 길었으며 거기에 알곡 표면에 껍질이 있었습니다
옛말에 '겉보리 세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않는다' 라는 말과 함께 '처가집과 변소는 멀을수록 좋다'라는 사고방식의 호랑이 담배먹던 시기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즉 겉보리는 주로 엿기름을 만들어 식혜를 만들었고 밥을 해먹을 수도 있으나 껍데기 때문에 먹기가 굉장히 불편하였지만 그것이라도 있으면 처가집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어릴적 보리밭 생각하며 제가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이있서 발을 멈춘다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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