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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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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댓글 0건 조회 2,312회 작성일 21-05-2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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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호박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 중 주방에서 가장 오랫동안 쓸모있었던 것은 플라스틱 바가지일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릴적에는 그런 플라스틱 바가지처럼 내부쳐도 깨지지 않고 닳지도 않아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는 바가지는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초가지붕 위에서 자라는 박으로 만든 자연에서 나오는 천연제품 바가지를 사용하였기 때문이지요 

옛 시골풍경 사진을 보다보면 초가지붕 위에 보름달처럼 둥근 박이 넝쿨과 함께 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은 모종을 심고 대나무나 막대기를 옆에 대 놓으면 지지대를 붙잡고 박의 넝쿨손이 스멀스멀 기어 지붕이나 담위로 올라 갑니다
자고 일어나면 몇 센치쯤 올라가 있습니다
지붕에 올라갈 때 쯤이면 가냘프고 수수하게 피어있는 새하얀 박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릴적 집집마다 박을 심었지만 그당시 사람들은 박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어 놓으면 천천히 저절로 혼자 자라므로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지요
기와집이라면 기와지붕에서는 둥근 박이 자리잡기에 불편하였겠죠 
둥그런 박이 둥글 둥글 크게되면 무거워 저절로 굴러 떨어질 수 있으며 더우기 여름철에는 달궈진 기와에 줄기나 잎이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땅바닥에서 박을 키우지는 않았습니다

초가집 지붕이나 담에 덮힌 푹신한 지푸락 위에서 박이 자라는데 그래야 상처가 생기지 않고 둥그런 모습을 잘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줄기에 매달려 있던 박은 크면서 무거워지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줄기가 찢어지기 때문에 받침대를 만들어 주던지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곤 하였습니다
손에 쉽게 닿을 수 있게 달려있는 박에 장난을 할 수 있었지만 동네 애들도 거의 박을 함부로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박은 먹을려고 심는게 아니라 주로 바가지를 만들려고 심었지만 때로는 박을 따다가 속을 파내어 박속무침을 해먹기도 했습니다
사실 박속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맛도 없고 양념과 어울려 양념이 내는 맛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 세발낙지를 넣은 박속낙지탕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속을 다 긁어 낸 박은 조심스럽게 그늘에 천천히 잘 말려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면 일그러져 버려 바가지로 쓸 수가 없게 됩니다
또한 큰박 작은박 조롱박 등 여러가지로 종류로 나뉠 수 있는데 큰박은 주로 물을 푸고 밥 할때 사용하였고 작은박, 조롱박은 쌀, 보리, 콩을 푸는 종고래로 사용했었습니다
단단하지 않은 마른 바가지는 내부치거나 쌀 같은 것을 넣은채 떨어뜨리면 쉽게 깨지는데 조각이 나지 않았다면 금간 것이나 깨진 것을 다시 비료푸대 실 등으로 꿰메어 사용 하기도 했습니다
꿰멘 자리로 물이 조금씩 새기도 했지만 사용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박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양푼 정도 밖에 없어서 양푼에 비하여 가볍고 부드러웠으며 흔했던 박은 특히 부엌에서 유용하게 사용 하였었습니다

옛날 동화책 흥부 놀부전에서 등장한 커다란 박 속에서 금은 보화가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나
신라시대에 박같은 혹은 박 크기만한 알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박 이름을 따서 지은 박씨의 선조 박혁거세의 신화 라든지, 
부엌에서 여자들이 사용하던 바가지를 빗대어 바가지를 긁는다고 하는 속담 등등을 생각해보면
박은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과 아주 친근하고 가까운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음이 분명한것 같습니다

나중에 플라스틱 바가지가 등장한 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지요
자연의 산물인 박은 그만 설 자리를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흑 흑 흑 . . .
그 이후 바가지를 아무리 긁어도 닳지도 않고 아무리 살살 때려도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박이 자라는 같은 시기에 담장에 올라가는 것은 박 말고 호박도 있었습니다
박과 비슷하였던 호박도 똑같이 넝쿨로 성장하며 넝쿨손으로 주위 물건을 잡고 슬금슬금 기어 올라갔습니다

호박은 박과는 달리 맛있는 호박국을 제공하므로 비교적 사람하고 더 가까웠다고나 할까요?
호박밥을 해 먹은 적도 있었고 요즘에는 단 호박죽을 즐겨 먹곤 합니다
우리집은 호박을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 위에 자라게 했습니다
탱자나무 한쪽에 모종을 심고 주위에 골을 만들어 아버지는 인분을 한 바가지씩 주었습니다
울타리 역할을 하는 탱자나무는 윗부분이 별다른 쓸모가 없었으나 호박넝쿨이 자라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요즘에 나오는 길쭉한 호박은 그때에는 볼 수 없었으며 사실 길다란 앉은뱅이 호박은 밭에서 면적을 차지하므로 다른 작물을 더 심기 위해서도 심지 않았을 것입니다

탱자나무 가시에 찔릴 수도 있는 위험한 곳임에도 호박은 넝굴손으로 가시나무 가시를 사알짝 붙잡고 올라가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설익은 애호박이나 알맞게 잘 익은 호박이 하나 둘 열릴 때마다 따다가 맛있는 호박국을 끌여 먹었습니다
그때 호박을 따오는 심부름은 내 차지였는데 나는 탱자나무 가지에 열린 잘 생기고 맛있게 생긴 것만 골라서 따오곤 했습니다
노랗게 줄기가 말라 비틀어 질 때까지 익게 놔두는 늙은 호박은 따서 마루 시렁(시루)에 올려놓고 오래 보관하여 나중에 호박떡이나 단 호박죽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호박이 길가 담위에 열려 있으면 심술궂은 애들은 호박에 그림을 그리거나 말뚝박기를 하기도 하였었지요
호박꽃은 손에 닿을 정도의 높이에 노랗게 피어있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숫꽃의 수술로 암꽃에 수정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실습하기도 하였습니다

긴 겨울밤 식구들이 등잔불을 둘러싸고 모여앉아 이야기하며 호박씨를 까먹던 생각이 납니다
힘이 들고 시간이 상당히 걸리지만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오랫동안 까서 모은 호박씨를 한입에 툭 털어넣고 자근자근 씹어 먹으면 참 고소하고 맛이 있었습니다

호박꽃도 꽃이냐고들 하지만 농촌 사람들에게는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호박꽃은 어여쁜 꽃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기후변화가 심화된 탓인지 예전에는 듣도보도 못한 열대성 과일들이 온통 자리잡고 풍성해진 지금 그러한 둥그런 박과 호박은 찾아 볼 수 없으니 이제 모두 지나간 옛날 얘기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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