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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심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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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00회 작성일 20-11-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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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멘맏한 심부름 담당은 내가 적격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누나들은 논과 밭일, 부엌일에 바빴고 남동생은 어린 탓이었으리라 여겨진다
등잔불 기름이 떨어지면 대두병을 들고 신작로에 있는 소금/담배집에 가서 사와야 하고, 쇠주집에 가서 대도병으로 소주를 사오기도 하고, 논의 물꼬도 보고 올만큼 심부름에 바쁘기도 했었다
닭 알을 팔고 오라는 것과 매일 토끼풀 뜯으러 가는 일은 제일 힘들었고 하기싫은 심부름이었다

아버지 담배 심부름은 늘상 하는 것이었고 논에서 일할 때 샛거리를 위해 신작로 주장집에 가서 큰 주전자로 막걸리를 받아오는 일도 내가 도맡아 하는 심부름이었다
우리집 농삿일은 아버지께서 품앗이 하지않고 늘상 혼자서 호락질로 부지런하시는 것을 옆에서 보아 왔다
논배미에서 일을 하실 때는 광주리에 샛거리 이고가는 어머니 옆에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따라가서 꿀맛 음식을 함께 즐기기도 했다

구성지게 부르는 '막걸리 한잔'이라는 노래가 요즈음 꽤 유행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노래 가사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때 시골 농부였던 아버지가 마시는 막걸리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도 같기도 하다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인정하는 아버지지만 어머니한테는 담배 피운다고, 한겨울에 노름방 가신다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구박을 많이 받으셨다

담배는 가끔 한갑 두갑하는 갑담배를 사기도 했지만 이름이 풍년초인 봉초담배가 나의 주 심부름이었다
봉초는 봉지를 뜯어 담배를 창호지 같은 깨끗한 종이에 말아서 피우셨는데 나중에는 보통 종이를 그리고 신문지를 잘라 손으로 구부려 말아 피우셨다
담배 피우기 위한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신 것 같다

공고를 졸업할 때 한전시험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해 7월 취업하게 되었는데 첫 직장이 신탄진 연초제조창이었다
그때 신탄진이란 담배가 있었고 담배 이름이 신탄진이란 지명을 딴것이라고 하는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제조창 안에서 일하는 중에는 담뱃잎에 향을 가미하고 숙성, 제조하는 과정에서 나는 냄새는 그동안 아버지 봉초담배에서 나던 바로 그 냄새였다
나는 담뱃잎 냄새와 담배향이 섞인 냄새로 큰 공장안이 가득하고 그 냄새 가운데서 일을 하였다

회사에서는 진달래라는 필터없는 담배 한갑씩이 나왔다
월급날마다 나오는 진달래를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집에 갈 때 큰집 형님한테 갔다 주었다

공짜로 매달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아들인 내가 열심히 일해서 받은 것으로 그것을 아버지께서 갔다 드렸우면 얼마나 좋아 하셨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울컥 해진다
아버지는 내가 학교 졸업하던 그 해 1월에 돌아가셨고 그뒤 나는 7월에 직장을 잡게 되었었다

또 군산 백화양조에 다녔던 회사 친구가 비싼 백화수복 정종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길래 공장앞에서 2개들이 종이박스를 받아서 집으로 향했었는데
아무래도 소주나 막걸리 보다는 정종이 한수 위라는 마음과 함께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다
군산역까지 걸어오던 도중 다른 한손에 무거운 짐이 있기도 하려니와 엄청 힘이 들었었는데 그만 . .
종이박스 밑부분이 터져 병이 바닥에 떨어지고 아까운 술이 줄줄 새고 말았다
차라리 가슴이 후련했다
힘겹게 집으로 가지고 갔어도 정종을 반기고 마셔줄 아버지는 계시지 않고 잘사는 큰집 사촌 형님에게만 좋은 일을 할뻔 했기 때문이다

문득 시인 박인로의 시조 한편이 생각난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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