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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으로 추억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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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07회 작성일 20-09-0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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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머리가 길어서 더 더웁게 느껴지는데 코로나 유행 때문에 깍아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다 단골 이발소로 갔다
머리깍고 면도하고 머리감고 마무리하는 이발소 머리깍기 과정은 어릴적 옛날이나 다름없다
조금 고리타분한 분위기 조차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아진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머리를 깍는 방법 등을 비교하면 많은 변화를 느낄수가 있다

먼저 머리를 깍는 기계는 완전 수동식 기계로 한손으로 이발기를 들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머리카락을 사각 사각 소리내며 잘랐었다
지금은 모두 "웅"소리가 나는 전동식을 사용하며 사뿐 사뿐 깍이나 진동이 조금씩 전달되는 약간 기분 나쁜듯 하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둘째, 그때 이발용 면도칼은 접을 수 있는 칼을 펼쳐 길다란 가죽띠에 '쓱싹쓱싹' 문질러 갈아서 사용했었다
지금은 같은 칼을 사용하면 피부병 옮긴다고 일회용 으로 바뀌고 면도도 더 깨끗하게 잘 되는 것 같다

셋째, 남자는 국민학교를 제외하고는 고등학교까지 모두 머리를 박박 깍았어야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 .
66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덜렁 받은 한장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비슷하게 박박 깍은 머리와 같이 깍은 나를 볼 수 있으며 그 옆에 스포츠 머리를 한 친구인 김동규를 찾을 수 있다

넷째, 옛날 머리같이 긴머리를 따서 머리에 올린 여자들을 전혀 볼 수 없다
대신 젊은여자들의 길고 윤기난 치렁치렁한 머리를 자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른들은 파마나 짧고 알맞게 머리 모습을 한 사람들이 많지만 . .

다섯째,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에 가는 공식이 깨졌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사람들이 이발소에 가지 않는다
자신만의 머리 스타일을 해줄 수 있는 미장원이 좋단다
나이 든 사람만 이발소에 모인다

여섯째, 가장 중요한 변화는 머리가 많이 청결해젔다
머리에서 사는 머릿니, 머리가 움푹 파이는 기계독, 비듬 등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요새 젊은 사람들은 질겁하겠지만
그 시절에 특히 긴머리를 한 여자들 머리에 이가 기생하였다
누나가 셋이 있는 나는 가끔씩 머릿니를 잡아 주는 것을 보았다

지금도 동물의 세계에서 원숭이의 친한 친구들 머리나 털에 있는 이를 잡아주는 것을 상상해보면 된다
그것들은 남자한테도 옮는데 남자는 대체로 짧게 깍기 때문에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는 참빗을 많이 이용하였었다
보통 빗으로 할 수 없는 참빗은 머리에 있는 이를 스크린하여 밖으로 노출 시킬 수 있기에
그렇게 잡은 이를 손톱으로 눌러 죽인적이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런 참빗을 구경할 수도 없지만 . .
그때는 방에 통통뛰는 벼룩과 벽지 틈사이에 빈대가 때로는 우글우글 나오던 시대인 만큼 굳이 요새 젊은 세대들에 이해를 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초교 다닐때 주위에 머리 가운데가 기계독 자리로 움퍽짐퍽하던 친구가 여럿 있었다
고교시절에도 머리는 박박 깍아야 되기 때문에 그런것이 드러난 친구들이 있었다
나중 사회에 나와 그러한 핸디캡은 머리가 길어짐에 따라 자연히 감출 수 있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공기업 최고자리에 오른 친구를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더 얼음이 두껍게 얼었었다고 생각되는 겨울의 바깥 추위를 격자 무늬로 된 방문의 창호지 한장이 막아주는 그시절에 자고 일어나면 웃묵에 있던 숭늉이 꽁꽁 얼어있는 상황에 부엌에 짚으로 불을 때서 물을 끓여 간신히 세숫물을 얻을 수 있었던 시대에
남녀 모두 머리를 제대로 감을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목욕하기도 무척 어려웠던 머나먼 옛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머리는 자란다
지금도 자란다
요새도 머리를 감으면 한웅큼씩 배수구에 나와있다

그만큼 머리깍기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어릴때부터 모두가 계속 부딛혀 온 문제중 하나이다

그때는 이발소에 가지않고 동네에서 손이발기로 여기저기서 해결했다
성자동 희구네 동네에까지 가서 머리깍은 적이 있으며 우리집에서 다른 애들 머리를 깍아 준적도 있다
그 이유는 물론 경제적 사정에서였지

그러나 이발기가 안 좋거나 깍는 사람이 서투르면 머리가 띵켜 많이 아팠었다
물론 이발소 전문 이발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 .

나도 계속 자라는 머리때문에 이발소도 계속하여 이리저리 옮겨 다녔었다
나중에 아버지와 함께 미미 이발소에 주로 갔었다

코흘리게 때는 이발소 의자가 너무 커서 양쪽 손잡이 위에 나무판을 걸쳐놓고 앉아서 깍은 기억이 난다
점점 크면서 어른이 앉는 의자에 앉게 되었었고 바로 그곳이 신작로 삼거리에 있는 이발소였었다

그때 부용에 있던 이발소는 네군데 였었다
머리 깍으라고 돈을 주면 마음 내키는 대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깍았다

또한 여자들은 긴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이나 동백기름을 발라 번드르하게 치장도 했었다
(그떄는 피마자를 많이 재배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게 되었었지)
오래전 여수에 살고 있을때 누나가 찾아와 동백꽃이 피는 오동도에 와보니 푸른 바다와 발 아래 넘실대는 바닷물이 투명하게 맑고 깨끗한 것을 보고 감탄하면서
그 바닷물에 머리를 감았는데 글쎄 머릿결이 그만 뿌등뿌등해져서 혼이 났었단다

그렇지만 나는 동네 이발소에서 그때와 같은 방법으로 이발하고 비록 앞쪽에 '코로나때문에 대면 얼굴면도는 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얼굴 면도와 머리 감김을 써비스까지 받고 기분좋게 이발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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