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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으로 추억여행

통학차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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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댓글 0건 조회 95회 작성일 25-02-2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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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학차 시간
60년대말, 70년대초 시골 부용에 살면서 한 정거장 간격 이리(익산)에 있는 학교에 가서 저녁 기차로 다시 집으로 돌아 오곤 했던 기차통학 시절의 일이다
 
물론 이리역에서 삼사십분 거리 학교는 걸어 다녔다
지방 도시인 이리로 향하는 많은 학생과 출퇴근하는 사람 등을 위한 통학차 시간은 아침, 저녁으로 정해져 있어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이나 반공일 토요일은 대부분 그전에 출발하는 다른 기차가 있으면 그걸 타고 집으로 간다
그러나 내가 타는 정읍선은 저녁 통학차 시간보다 먼저 출발하는 차가 없고, 또 그 기차를 놓치면 집에 돌아 갈 방법도 없던 통학생들의 고달펐던 시절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차를 타기 위해 일단 이리역까지 걸어서 온다
거기서 저녁 통학차가 출발하는 6시경 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며 남는 시간 동안 이리역 광장, 대합실, 옆 학생회관 등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사춘기를 맞는 우리들에겐 무척 길게 느껴지는 지루한 시간이고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일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내에 사는 친구네 집이나 친구 자췻집에 가기도 하고 길목에 있는 중앙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볼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면 모두 역으로 모이기 마련이다

역에서는 대합실 한쪽에 일반인과 함께 앉아 기다리기도 하고 맑은 날은 넓은 이리역 광장에서 친구들과 놀기도 하지만 광장 한쪽에 있는 학생회관으로 간다
그곳 1층은 역 대합실과 같은 의자가 있어 친구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데 기차 출발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은 매우 지루하다
그곳에 친구가 없거나 앉을 자리도 없으면 그땐 이층으로 올라 갔다
학생회관은 2층에는 남녀 나누어 공부를 할수 있는 칸막이 책상이 여러개가 있어 다들 조용히 공부하고 있는데 평소에도 자리 잡기 힘들지만 특히 시험때가 가까워지면 남는 자리가 아예 없다

다행히 빈 자리가 있으면 얼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조용히 공부하는 척하며 시간을 때웠다
조용한 분위기여서 바시락 소리를 내기도 힘들며 오래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시지만 어쩔 수가 없고 궁둥이가 아무리 아파와도 기차시간까지 긴 시간을 그곳에서 버텨야만 했다

공부할 자리가 없으면 다시 역으로 가는데 역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김제 쪽으로 가는 오후 1시경 특급열차를 바라 보며 내가 사는 부용에는 정차를 안하니 특급으로 몰래 김제까지 가서 다시 올라오는 차로 돌아 올 생각도 해보고, 화물열차가 있는지 알아 보기도 하며 화물열차는 역을 지나면서 조금 천천히 달리므로 뛰어 내리는 것도 생각하여 보는 등 집에 빨리 갈 궁리를 한다

더 멀리 사는 김제나 신태인, 정읍 친구들은 아마 오후 1시경 출발하는 특급을 타고 가기도 했을 것이며, 화물열차를 타기도 하고, 김제역 가기 전 삼수동 오르막을 오를 때 기차는 힘이 부쳐 천천히 가므로 그 근방 친구는 뛰어 내리기도 했을 것이다

부용은 그래도 가까워서 어떤 날은 부용사는 친구들과 역앞 광장에 있다가 상의하여 함께 철로를 타고 그냥 걸어 오기로 했다
기찻길 7.2km 거리를 철로로 걸어 오면서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걸어 오는데 두시간 정도 걸리고 집에 도착하여 얼마 있으면 멀리 통학차가 지나 가는 것도 볼수 있다
걸어 오는 길목에 지역 텃새 부리는 녀석도 있고 다리도 아파서 딱 두번 걸어서 왔다

평소 이리역 부근에서 기다리다 저녁기차 시간이 다 되면 늘 타던 3번 플랫폼으로 나가는데 정읍으로 가는 통학차는 거기서 또 기다려야만 한다
그땐 늘 그랬지만 기차 사정이 열악해서 어째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 방송도 없고 플랫폼에서 서서 마냥 기다려야 하는데 보통 2시간 내지 3시간을 그냥 친구들하고 기차가 들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어떤 때는 정시에 출발하기도 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코리안 타임이란 말보다 더 심했다

여름이나 따뜻할 때 바깥에서 기다리는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찬바람 부는 겨울, 눈이 오면 플랫폼에 쌓인 눈 위에서 덜덜 떨면서 발이 시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누나가 털실로 짜준 두꺼운 양말을 신었으나 검정 운동화를 통하여 들어오는 차거운 냉기는 발이 몹시 시려워 저절로 동동 구르게 만든다
나중에 만난 초강에서 다니던 동창은 그때 발에 동상 걸렸다고 한다

초기엔 다른 데로 출발하는 친구 따라 일찍 나와 플랫폼에서 기다리다가 이리역 구석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안 보이는 차량을 찾아 철로 여러개를 넘어 가서 미리 올라 타기도 했다
또한 그곳 플랫폼에는 지붕이 없어 비가 오기라도 하면 가져 온 우산을 쓰거나 지하 통로에 가서 피하거나 다시 대합실로 돌아 와서 비를 피하여야 한다
나중에 대전, 군산선 4, 5번 플랫폼 지붕을 윗 설치하는 것을 보고서 은근히 기대했지만 우리 정읍선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플랫폼 지붕이 설치되지 않았다
그때 다른 선 통학생(전주선, 군산선, 대전선)들도 많았고 그들은  통학차 이전에 갈수 있는 열차가 있는데 유독 우리가 타는 정읍선이 그런 괴로움을 더 겪었던 것 같다

출발이 늦어지는 여러 이유 중 대전 출발 여수행 완행열차를 꼭 기다렸다가 그 차가 도착하면 뒷부분에 여수행 객차 두칸을 떼어 우리쪽에 연결하여 가곤 하는데 그 차가 늦어져도 마냥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플랫폼에 서서 황등쪽 직선 선로 끝 꺽어진 곳에서 조그맣게 모습을 드러내고 점점 커저오는 그 기차를 늘 기다렸는데 어느날 먼 그곳을 뚫어지게 바라 보다가 아예 그쪽을 향해서 출발하는 열차로 올라 타 버렸다
그렇게 황등에 가서 내려 그곳에 기다리는 차를 갈아 타고 다시 내려 온 적이 있는데 가고 오면서 차창 밖으로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을 바라 보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혹시 우리 통학차가 나를 떼어 놓고 먼저 가 버리지 않았을까 . .

상급 학년으로 올라 가서도 일찍 끝나는 날에는 여전히 기다리지만 이제는 공부 시간이 길어져서 늦게 끝나는 것도 문제다
기차 시간이 다 됐는데도 선생님이 끝내 주지 않으면 시계 찬 친구에게 시간을 물어 보며 기차를 놓칠까봐 애간장을 태웠고 끝나자 마자 무거운 가방을 옆구리에 메고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역으로 달리기 선수처럼 헐레벌떡 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 날이 꽤 많다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달려 와도 어떤 때는 늦어서 이미 출발하여 가고 있는 차를 아슬아슬 올라 탔다
출발을 하였지만 그때 기차는 처음부터 속력을 내지 못해서 가고 있는 차를 올라 타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나중에 디젤 기관차로 바뀐 다음부터는 출발하면 곧 바로 속도가 빨라져서 가는 차를 잡고 뛰어 오르는 것은 어려웠고 또 위험하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거의 그랬는데 그래도 고교때는 조금 상황이 나아졌다
임시 열차도 생기기도 하지만 저녁 열차 전 다른 열차도 생겼다
그리고 학교에 들키면 안되는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 머리를 짜내는 사람도 생기고 여러가지로 그 시간을 유용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시내버스의 종점이 부용 근처로 옮겨지며 가까워지면서 나는 버스를 타고 일찍 집으로 올수 있었다

그러나 정읍 등 먼곳에 살며 학교가 늦게 끝나 저녁 통학차를 타야만 하는 친구들의 기다림은 그대로였는데 그것은 철로가 단선이어서 특급 등 빨리 가야 하는 차들에게 선로를 양보하느라 김제나 신태인에서 통학차가 정차하면 그곳에서 또 상당시간 기다려야만 했단다
나중에 들으니 초강에 사는 친구는 밤 10시 넘어, 정읍은 11시 쯤 한밤 중 집에 도착하곤 했다고 한다

부용에 도착하면 내려 나는 집으로 향하느라 바쁘면서 뒷차를 먼저 보내려고 그냥 서있는 기차를 가끔 보았다
부용역에서 차에 타고 있던 학생들은 역 창고에 반출하려 쌓아 놓은 고구마가를 가져다가 생 고구마로 먹는 것을 보기도 했는데, 집에 가면 나는 아랫목 이불 속에 놓인 따수운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원거리 통학생들은 기다림에 더한 허기진 배고픔으로 한 밤중 도착하면 식은 밥을 먹을 것이며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밥 먹고 다시 차를 타러 다시 나와야 하는 것을 그땐 미처 몰랐다
졸업 후 1985년 복선화 되고 그런 일들은 당연 없어졌겠지만 . .

우리가 정읍선이라고 부르는 통학차는 목포까지 가는 열차였고 고등학교 중반까지는 석탄을 태우면서 칙칙폭폭 검은 연기를 품으며 가는 기차였는데 그 뒤에 디젤기관차로 바뀌고 나중엔 부용역, 와룡역도 폐지되었으며 그런 기억도 모두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통학생들은 통학하면서 경험한 씁슬한 기억들은 뇌리 한쪽에 아직 남아 있을 것이며, 특히 이리역 3번 플랫폼에서 그때 함께 기다리던 많은 정읍선 통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다시 떠 오를 것이며 내 말에 증언하여 줄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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