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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으로 추억여행

신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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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65회 작성일 20-06-1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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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관악산의 안양쪽 한 줄기인 비봉산에 가는 길이 질퍽거려 요리저리 그 질펀거리는 곳을 피하여 발을 짚었다
문득 어릴적 내가 살던 부용의 신작로가 생각이 났다

구루마 자국으로 깊이 파인 길을 조심조심하며 행여 가지랭이 흙 묻을세라 폴짝 뛰기도 하고 길 가장자리로 돌아 가기도 하였지.
그 신작로란 말은 아무래도 일본말에서 나온 느낌이 든다
즉, '새로 만든 길'이라는 건데 내가 살던 부용은 역에서 우리가 다닌 국민학교(이 말도 일제잔재 청산으로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까지를 부르는 말이다

그때 장화는 필수품이었다
비가 올때도 빗물 고여있는 웅덩이도 웬만하면 거침없이 넘어갈 수 있었고 넓게 보이던 신작로도 진흙길로 깊게 파여도 옷에 흙을 묻히지 않고 갈 수 있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신작로에는 소 구루마(이건 그야말로 일젯말이다)가 다닐 수 있는 길이었고 우리들은 볏나락 또는 짚다발 등을 잔뜩 실은 구루마 뒤에 달려가서 매달려 타곤 했었지

초등학교때  말구루마도 본 적이 있을 때인 만큼 그 구루마도 옛날에는 바퀴가 나무로 만들어져 철판을 덧댄 것이었고 그것을 올라타고 가면 덜거럭 덜거럭 엉덩이가 진동에 의해 상당히 편치 않았었지
그러다가 고무타이어로 된 바퀴가 설치되고 나서 그런 구루마를 올라타면 상당히 고소하고 타는 맛이 있었지

요즘 중국영화에 임금, 고관대작과 사모님이 구루마 비스므레한 것을 타고가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 승차감을 알고있는 나로서는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한다
높으신 분의 엉덩이가 드르륵 드르륵하는 진동에 얼마나 편하게 느낄까 하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지위가 있는데 상놈처럼 힘들게 걸어 갈 수는 없을테니까 . .

신작로는 부용의 메인 도로이며 우리동창들도 신작로 주위에 많이 살았었다
떡집 경덕, 병원집 재희, 그옆에 성모, 자전거포 호야, 가까이 삼묵. 철물점 현애, 점방네 연석, 이발소집 명숙, 기름집 재영, 역전 중렬 등이다
어릴적 그 신작로에는 병원, 비단집, 한약방, 세탁소, 만화가게 빵집, 석유기름 담배집, 철물점, 약국, 이발소, 떡집, 방앗간, 자전거포, 양조장, 사진관, 늘어선 술집 등이 번창했었는데 어느샌가 하나 둘씩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미 부용중학교는 폐소된지 오래이며 부용국민학교도 썰렁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한번 그 옛날의 신작로를 부용역에서 부터 더듬어 걸어가 볼까 . .

역에서 오다보면 오른쪽에 중렬이 집이 있었는데 안채인지라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고 아버지가 역에 근무하셨던 것으로만 알고 있으며
그쪽 옆으로 우체국이 있고(그 자리는 원래 빈터이었으며 엤날에 가설 영화극장으로 많이 사용되었었지),
조금 더 오면 양쪽에 점방이 있던 곳에서 부터 길이 좁아졌으며
더 오면 왼쪽에 영단(커다란 정미소와 함께 무얼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이란 곳에 우리동창 여자애가 살고 있었는데 나중에 전학간것으로 알고 있고
더 올라오면 오른쪽 높은 곳에 경로당이 있었고
그 다음 파출소가 있고 (그자리도 공터일 때 약장시들이 심청전, 장화홍련전등과 함께 창을 공연하던 우리 동네를 좀 시끄럽게 만들던 곳이었었지 !)

그 다음이 재영이네 기름집이 있었고
그옆이 최명숙 아버지가 운영하던 이발소가 있어 우리아버지와 내가 머리를 많이 깍았었지, 이발소 이름이 잘 생각이 안나네 !
조금 더 오면 그 옛날에 중국집이 있어 우리 큰 누나가 가끔 시켜먹고 내가 심부름하던게 생각이 난다
조금 더 올라오면 길 모퉁이에 사진관이 있었고 거기서 기차타고 올 때 우리 집으로 꺽어져 내려오는 곳이었었지       

조금 더 오면 정미소가 있었고
그 앞쪽에는 양조장이 있어 아버지 심부름으로 대도병을 가지고 막걸리 심부름을 많이도 다녔었지
더 올라오면 오른쪽에 옴팍집(주점)이 있었으며
그 앞집에는 고깃집이 있어 이따금 돼지고기를 사서 국끌여먹던 기억이 난다
그쪽으로 조금 더 오면 점방이 있고
그앞에 오래전 과일가게가 있었으며
그집 옆 수룡구지로 가는 길 모퉁이에 약국이 있었지(나중에 자리를 옮겼지만..) 

그쪽 왼쪽 수룡구지로 가는 길 건너편에  연석이 엄마가 하던 가계가 있었으며(연석어머니의 항상 수심에 차있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
신작로 오른쪽에는 우리가 애용하던 정미소가 있었고
그 옆에 생선가게가 있어 가끔 꽁치, 고등어를 사다 먹었었는데 꽁치국 맛이 참 맛이 있었지
그 이웃 코너에 주점이 있었으며 신작로에서 우리집으로 오는 골목길로서 국민학교로 가는 길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다니던 길목이다

길 반대편에 1년선배 창희네 점방이 있었고
바로 옆에 나중에 생겼지만 만화가게와 앙꼬빵 장사(우리 옆집 낙희형이 운영)가 있었으며
그 옆집에 시계포가 있었고 나중에 쌀집이 되었지만 . .
 
우리집으로 오는 길목에는 앞에 말한 주점과 그 건너편 그러니까 신작로 오른 쪽 코네에는 경성고무신 가게가 있었으며
같은 집에 석유/기름/소금집이 있어 우리집의 어둔 밤을 밝게하는 등잔에 넣을 기름과 나중에 석유곤로용 기름을 내가 부지런히 조달하던 곳이었단다
그 옆에는 오래전에 문을 닫은 비단집이 있었으며
길 건너편(왼쪽)에는 무슨 한약방이었었는데 나중에 슬그머니 없어졌었다

그 근방이 삼거리로 말하자면 신작로 중심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즉 반월리, 과수원으로 가는 길과 학교로 가는 갈라지는 길이었고
양 길목의 중심에 철물점(현애아버지가 운영)이 있었고 그쪽에 미장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작로 학교가는 방향의 오른쪽에 세탁소가 있었는데 자리를 옮긴 것으로 기억이 희미하며
왼쪽에 세탁소와 자전거포가 있었다
그리고 그옆에는 삼묵이네 집이 있었지

건너편에는 성결교회가 있었고 거기서 종화네 집으로 가는 갈라지는 길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길이 폐쇄 되어 버렸다
조금 더 오면 호야네 자전거포가 있었고 우리들이 가끔 자전거 바람을 넣고 고치기도 했었지
길 건너편에는 병원(재희네)이 길가에 있었다 (나중에 건물을 지어 안쪽으로 들어 갔지만) 
성모네집은 그옆 안집으로 기억하고 있다

조금 더 오면 그쪽 신작로 왼쪽방향으로 정미소(귀자네 시아버지가 운영하던 곳)가 있었고
길 건너편에도 정미소가 서로 경쟁을 했었지
조금 더 오면 중학교 가는 갈라지는 길이 나오고

오른쪽에는 부용교회로 접어드는 길목에 점방이 있었고
건너편에 이발소가 있었지
오른쪽으로 더 오면 점방(지금도 있는 것 같더만)이 있고
그 앞집에 엤날에 불무를 피우던 대장장이집이 있었는데 이것을 아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 것이리라 생각한다

학교앞에는 학교에 다니던 길목으로 정덕이네 떡집이 있었으며
학교앞 코너에 소사를 하던 아저씨네 가게가 있었고
즉 학교며 삼거리였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으며 길 건너편에도 가계가 있다 없어졌었지 

아 !  그립다 . .
예쁘장한 비단장수 아주머니, 좀 무뚝뚝하게 보이던 한약방 할아버지, 그리 친절하게 보이지 않던 연석 어머니, 철물점 아저씨, 열심히 일하던 호야네 아버지, 세탁소 아저씨, 내가 잘 다니던 이발소 아저씨(명숙아빠) 웃음. . .

지금은 아스팔트로 되었지만 비가오면 질턱발탁하게 깊게 파이던 진흙탕밭 길은 오래전 옛 추억으로 되어 버렸지만 내가 어릴 떄 그때가 부용의 피크였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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