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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으로 추억여행

등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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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03회 작성일 20-08-0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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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굣길

OBS 방송에서 방영하는 세상에서 가장 험한 등교길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었는데
내용들은 산 넘고 물건너 때로는 계곡에서 밧줄에 몸을 매달고, 배를 혼자 저어가며, 학교에 가기위해 매일 많은 시간과 위험을 극복하고 마침내 학교에 도달하는 모습들 보았고
엊그제 TV 에 방영된 인도네시아에서 비로 물이 불어난 강을 히잡을 쓴 여학생 4명이 넘어져 물살에 휩쓸릴 수 있게되는 상태에서 위태위태하게 건너가는 것을 보았다

그에 비하면 부용국민학교는 우리 동네(월봉리)와 가까이 있어 무척 행운이었다고 여겨진다

어렸을 때에는 부용이 근방의 중심지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작로를 중심하여 상권이 형성되고 또 국민학교를 다니기 위해선 멀리 백구정, 가전리, 반월리, 학동리,석담리, 사산리, 새절에서도 왔으니 말이다

오학년때인가 가전리 사는 친구가 치문학교로 전학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즈음 석담리에 분교가 생겨 지원하러 가서 풀을 뽑고 돌을 치운 적도 있었는데
그뒤로 이년 후배부터 그 근방 사람들은 석담리 분교로 다니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도 백구정은 치문학교에 가깝고, 학동리는 난산학교에, 사산리는 용지국민학교가 더 가까왔을 것 같은데 왜 계속 부용으로 왔느냐는 생각이 든다

우리집은 학교에 아주 가까워 점심시간에는 점심 밥을 먹으러 집에 왔었다.
ㅎㅎ

밥을 오래 씹으면 단 맛이나고 건강에도 좋다는 선생닝의 말씀을 듣고나서부터 매일 점심때면 집에서 출발할 때 입에 잔뜩 밥을 쑤셔넣고 계속 씹으면서 학교 가까이에 있는 모종까지 계속 오물오물 어렸던 기억 . .
이제와 생각하니 다른 친구들은 점심때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어머니가 싸준 벤또를 가지고 다녔었겠지 ?

먼곳에서 다니는 친구들은 아마 비바람 몰아치고 태풍이 올때나, 해가 쨍쨍 내리쬐고 땀이 비오듯 하는 무더울 때나
둥둥치기나 하며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때는 학교에 가는 길이 험하였다고 생각 들었으리라 . .
학년이 올라 갈수록 점점 하교시간이 늦어져 해는 지고 어스름한 저녁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어린 나이에 캄캄한 밤길로 집으로 가는 길은 으시시한 외딴 산길, 공동묘지나 생여집을 지나갈 때 얼마나 겁이 나고 무서웠을까!

제일 먼 코스는 양재남이 살던 백구정이라 생각되고 올 때 백구정에서는 가전리, 성자동, 목과동을 거쳐야 하며

다음은 학동리로 갈때는 새절로 가는 길로 가다가 봉의산 오른쪽 끝부문에서 외딴 산속길으로 들어가야 했으며 사람들이 얼마 다니지 않아 어두워지면 좀 겁이 많이나고 으스스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곳에서 다녔던 친구들은 참 대단했었다고 생각이 든다

가전리는 앞쪽에 있는 논 사이의 길을 지나고 밭과 산을 넘고 용길이네 집앞을 통과하여 수롱구지나 목과동 친구와 합류하여 부용방죽을 옆으로 왔을 것이고

석담리는 가는 길만 알고 오는 길은 옵션이 몇개가 있어 확실히는 잘 모르겠으나
갈때는 물론 중학교옆 샛길로 부용사절 옆으로 봉의산 독판 들어가는 길을 지나서 농원 방죽으로 가는 길로 가지않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로 알고 있다

반월리도 코스가 여러개로 지름길을 선택하여 어짜피 농원과 공동묘지옆을 지나 왔을 거라고 생각되네
나도 반월리에 있는 백구면사무소에 다녀올 때는 꼭 지름길인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오느냐 돌아 올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했고 조금 나이가 든 다음에는 일부러 공동묘지 사잇길로 왔다

매일의 등굣길이 무더운 햇볕 속에, 겨울 한설 몰아치고 눈길이 미끄러울 떄, 태풍이 몰아치고 비바람 칠 떄 우산없이 비를 맞으며 찢어진 검정 고무신에 옷을 변변하게 입지 못해 추위에 떨면서 오던 시기에 일기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서고 견디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

현철이 말대로 집에 갈 때 비가 오면 목과동 옆길을 친구와 함께 옷을 홀랑벗어 책보에 싸서 등에 메고 집까지 * 나오게 뛰어갈 수 밖에.
어느 모임 고백에서 친구 둘이 함께 집을 나와 학교에 가지않고 무덤 잔듸 밭 등에서 이틀을 놀았다던가

가까이 사는 나도 개근상을 받아 본적이 4학년 때인가 한차례 밖에 없다
그렇게 먼 곳에서 다닌 친구들 중 그래도 개근상을 받았은 친구가 있었는지 ?

험한 등굣길은 다들 어린시절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꼭 배워야 했으며, 6년간이란 한 시절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야만 하는 했던 것은 우리 어른들의 선견지명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내일의 희망이란 없을 수 밖에 없으니까
등굣길이 짧았던 나에게는 어쩌면 행운이라고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멀고 힘들었던 어린시절 등하굣길과 같이 친구들과 함께 이겨내면서 가질 수 있었던 그 여러가지 사연에 겻들은 에피소드나 희노애락 같은 것들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기도 하다.

비슷한 이야기일련지 모르지만 나도 하교길 기차에서 내려, 때로는 반월리에서 시내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 가면서 친구 몇명과 함께 이야기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여러 이야기 나눔 속에 생각을 하게되고 때로는 서로 경쟁하면서 더 성숙해졌었다는 생각된다
그때 상준이가 국민교육헌장을 다 외웠다고 자랑을 하길래 나도 질쎄라 그날 집에가서 다 외워 버렸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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