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역
페이지 정보
본문
○ 고향역
며칠전 나훈아의 화려한 원맨 특별쇼를 TV로 보았다
또한 '머나먼 남쪽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 ♪' 내 십팔번지도 나훈아가 만들고 노래 불렀단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 ♬
그게 곧 우리 추억속의 부용역이 이겠지요
그곳은 가을이면 역 주변 화물취급소 주변과 철로옆 화단에 코스모스가 흩날렸었다
또 월현대 쪽 역관사 옆 길에는 노오란 예쁜 이름이 금계국인 꽃들도 반겨 줬었다
코스모스란 말의 뜻은 '우주' 이고 곧 '질서정연한 우주' 를 의미한다고 한다
훈아씨 말대로 '정든 고향역' 부용역에 추억으로 여행 가볼까 한다
단선으로 된 호남선의 작은 역 부용은 기차가 교행하기 위해 들어오는 기차를 위해 열차타고 기다리거나 또 들어오던 기차는 망대앞에서 멈추어 앞에가는 차를 보내려고 기다리던 역이었다
1988년 9월 복선화되기전 까지는 . .
우리들은 역무원 아저씨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지
역 대합실 한쪽 작은 유리창구로 차단된 매표창구의 건너편에서 기차표를 파는 아저씨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열차가 오기전 개찰구에서 차표에 확인표시 해주는 딸깍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유선전신으로 이웃역과 교신을 한 다음 열차통과를 허용하기 위해 이리쪽에는 목과동 옆, 와룡쪽은 월현대 옆에 있는 망대의 신호로 바꾸기 위해 역 앞에 있는 망대조작기를 아래쪽으로 눕혀 놓았다
그리고 비바람 몰아쳐도 하나의 선로 뿐인 기찻길에서 플랫폼으로 갈라져 기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선로전환기를 조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열차가 역으로 들어오면 기관사 아저씨는 맨 먼저 열차통과 표시인 토큰링이란 둥근 링을 철로 가까이 플랫폼에 서있는 고리에 던지듯 집어넣고는 다시 꽂아져 있는 새 토큰링을 가볍게 낚아챈다
그것은 부용역을 통과하는 모든 열차에 적용되어 그냥 통과하는 특급이나 화물열차의 빠른 속도에도 반드시 토큰을 넣고 받아 가야만 했다
그 토큰링의 햔쪽 가죽지갑 같은 것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은 유선전신 신호를 보내고 받는 데에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일단 부용역에 들어온 기차 기관사는 열차에 오르는 사럄들을 보면서 열차 뒤끝에서 흔드는 차장의 파란색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기다린다
그리고 출발한다는 신호로 기적을 '삐익 ~' 한차례 이상 울리고 떠나간다
요즘 기차와는 다른 그야말로 칙칙폭폭 석탄을 기차 보일러 아궁이에 계속 삽으로 퍼넣어 발생되는 증기로 가는 증기기관차로 앞 바퀴옆에 피스톤을 볼 수 있어 '치익~ 푹' '치익~ 푹' 하고 피스톤 축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차가 출발하고 점점 빨라지다가 몇분 지나서야 제속도가 나기 시작하였다
그 시대의 기차로 말할것 같으면 전동차, 디젤기관차와는 달리 속도도 낮았지만 힘이 매우 약했다
그래서 와룡에서 김제로 들어가는 언덕을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였단다
기차가 올라가지 못하고 힘이 겨워 삼수동 고개에서 멈추면 그 기차는 다시 빠꾸하여 와룡역까지 후진하였다가 다시 가속을 하여 올라간적이 몇번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것을 아는 우리는 기차가 이미 출발하였어도 느긋하게 서 있다가 어느정도 속도가 붙은 다음에 달리는 열차를 올라 탔었다
또 기차가 이미 출발 하였는데도 늦게사 후다닥 뛰어와 달리고 있는 열차에 올라타는 친구도 많이 있었다
달리는 기차는 연통에 검정색으로 미쳐 타지않은 석탄재와 함께 검은 연기를 내뿜어 차창에 매달려 갈때면 석탄먼지가 눈속으로 들어 오기도 했었다
기차가 모두 지나가면 부용역은 철로만 덩그라니 그리고 가을 코스모스 꽃들이 한들거리고 겨울에는 부용들판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눈바람에 그저 황냥하기만 하였다
가끔 서울이나 목포에서 오는 완행열차가 사람을 태우거나 내리는 손님이 있었으며 마중 나와 눈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조그만 대합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기차는 우리들의 발 역할을 하였기에 오르내리는 여객 손님들은 대부분 손에 짐이 들려 있었고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가사처럼 이별의 부용정거장에서 눈물을 감추는 사람들이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는 기적소리도 슬피 울었을게다
고교졸업 후 서울에 시험보러 갈때, 직장원서 접수하러 갈때, 고향을 떠나 직장생활로 접어 들었을 때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었다
물론 객지에 살다 고대하고 기다리는 식구를 찾아오기 위해 대부분 목포행 완행열차로 밤늦게 도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나 또한 그랬었고 . .
그러나 아침, 학생들을 위한 통학차가 올때 쯤이면 여기 저기서 하나 둘 기어나와 구름떼처럼 역 플랫폼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때 부용역 플랫폼에 가면 함께 통학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예쁜 여학생 이쁜이 곱쁜이도 만날 수 있었으며, 동네 아저씨, 신작로 약국집 아저씨 아들도, 배우를 꼭 닮은 연상의 아가씨도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서 눈비를 맞으며 추운 겨울 꽁꽁 언 발을 동동 구르며 우리는 기차를 매일 기다렸었다
멀리 와룡역에서 기적을 울리고 출발하여 용지 근방에서 구부러져 돌아오다가 월현대 쯤에서 '내가 들어간다 기다려라' 하고 다시 기적을 울리지 . . !
맨드라미 피고지고 몇몇해던가 ~
청초 우거진 골 고향을 찾았더니
곱고 아름답던 이웃 아줌마 얼굴에 주름 시름 맺혔구나
동구밖에 놀던 친구 다 어디가고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서러워 하노라.
며칠전 나훈아의 화려한 원맨 특별쇼를 TV로 보았다
또한 '머나먼 남쪽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 ♪' 내 십팔번지도 나훈아가 만들고 노래 불렀단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 ♬
그게 곧 우리 추억속의 부용역이 이겠지요
그곳은 가을이면 역 주변 화물취급소 주변과 철로옆 화단에 코스모스가 흩날렸었다
또 월현대 쪽 역관사 옆 길에는 노오란 예쁜 이름이 금계국인 꽃들도 반겨 줬었다
코스모스란 말의 뜻은 '우주' 이고 곧 '질서정연한 우주' 를 의미한다고 한다
훈아씨 말대로 '정든 고향역' 부용역에 추억으로 여행 가볼까 한다
단선으로 된 호남선의 작은 역 부용은 기차가 교행하기 위해 들어오는 기차를 위해 열차타고 기다리거나 또 들어오던 기차는 망대앞에서 멈추어 앞에가는 차를 보내려고 기다리던 역이었다
1988년 9월 복선화되기전 까지는 . .
우리들은 역무원 아저씨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지
역 대합실 한쪽 작은 유리창구로 차단된 매표창구의 건너편에서 기차표를 파는 아저씨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열차가 오기전 개찰구에서 차표에 확인표시 해주는 딸깍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유선전신으로 이웃역과 교신을 한 다음 열차통과를 허용하기 위해 이리쪽에는 목과동 옆, 와룡쪽은 월현대 옆에 있는 망대의 신호로 바꾸기 위해 역 앞에 있는 망대조작기를 아래쪽으로 눕혀 놓았다
그리고 비바람 몰아쳐도 하나의 선로 뿐인 기찻길에서 플랫폼으로 갈라져 기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선로전환기를 조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열차가 역으로 들어오면 기관사 아저씨는 맨 먼저 열차통과 표시인 토큰링이란 둥근 링을 철로 가까이 플랫폼에 서있는 고리에 던지듯 집어넣고는 다시 꽂아져 있는 새 토큰링을 가볍게 낚아챈다
그것은 부용역을 통과하는 모든 열차에 적용되어 그냥 통과하는 특급이나 화물열차의 빠른 속도에도 반드시 토큰을 넣고 받아 가야만 했다
그 토큰링의 햔쪽 가죽지갑 같은 것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은 유선전신 신호를 보내고 받는 데에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일단 부용역에 들어온 기차 기관사는 열차에 오르는 사럄들을 보면서 열차 뒤끝에서 흔드는 차장의 파란색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기다린다
그리고 출발한다는 신호로 기적을 '삐익 ~' 한차례 이상 울리고 떠나간다
요즘 기차와는 다른 그야말로 칙칙폭폭 석탄을 기차 보일러 아궁이에 계속 삽으로 퍼넣어 발생되는 증기로 가는 증기기관차로 앞 바퀴옆에 피스톤을 볼 수 있어 '치익~ 푹' '치익~ 푹' 하고 피스톤 축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차가 출발하고 점점 빨라지다가 몇분 지나서야 제속도가 나기 시작하였다
그 시대의 기차로 말할것 같으면 전동차, 디젤기관차와는 달리 속도도 낮았지만 힘이 매우 약했다
그래서 와룡에서 김제로 들어가는 언덕을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였단다
기차가 올라가지 못하고 힘이 겨워 삼수동 고개에서 멈추면 그 기차는 다시 빠꾸하여 와룡역까지 후진하였다가 다시 가속을 하여 올라간적이 몇번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것을 아는 우리는 기차가 이미 출발하였어도 느긋하게 서 있다가 어느정도 속도가 붙은 다음에 달리는 열차를 올라 탔었다
또 기차가 이미 출발 하였는데도 늦게사 후다닥 뛰어와 달리고 있는 열차에 올라타는 친구도 많이 있었다
달리는 기차는 연통에 검정색으로 미쳐 타지않은 석탄재와 함께 검은 연기를 내뿜어 차창에 매달려 갈때면 석탄먼지가 눈속으로 들어 오기도 했었다
기차가 모두 지나가면 부용역은 철로만 덩그라니 그리고 가을 코스모스 꽃들이 한들거리고 겨울에는 부용들판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눈바람에 그저 황냥하기만 하였다
가끔 서울이나 목포에서 오는 완행열차가 사람을 태우거나 내리는 손님이 있었으며 마중 나와 눈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조그만 대합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기차는 우리들의 발 역할을 하였기에 오르내리는 여객 손님들은 대부분 손에 짐이 들려 있었고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가사처럼 이별의 부용정거장에서 눈물을 감추는 사람들이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는 기적소리도 슬피 울었을게다
고교졸업 후 서울에 시험보러 갈때, 직장원서 접수하러 갈때, 고향을 떠나 직장생활로 접어 들었을 때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었다
물론 객지에 살다 고대하고 기다리는 식구를 찾아오기 위해 대부분 목포행 완행열차로 밤늦게 도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나 또한 그랬었고 . .
그러나 아침, 학생들을 위한 통학차가 올때 쯤이면 여기 저기서 하나 둘 기어나와 구름떼처럼 역 플랫폼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때 부용역 플랫폼에 가면 함께 통학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예쁜 여학생 이쁜이 곱쁜이도 만날 수 있었으며, 동네 아저씨, 신작로 약국집 아저씨 아들도, 배우를 꼭 닮은 연상의 아가씨도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서 눈비를 맞으며 추운 겨울 꽁꽁 언 발을 동동 구르며 우리는 기차를 매일 기다렸었다
멀리 와룡역에서 기적을 울리고 출발하여 용지 근방에서 구부러져 돌아오다가 월현대 쯤에서 '내가 들어간다 기다려라' 하고 다시 기적을 울리지 . . !
맨드라미 피고지고 몇몇해던가 ~
청초 우거진 골 고향을 찾았더니
곱고 아름답던 이웃 아줌마 얼굴에 주름 시름 맺혔구나
동구밖에 놀던 친구 다 어디가고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서러워 하노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