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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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중학교때 이리역에서 내려 학교 가는길은 시공관을 지나야 했다
명절 아마 추석이 다가올 때 쯤으로 보이는데 시공관 앞에 엄청 큰 선전 그림이 걸려 있는데 처음보는 이상하게 못생긴 여자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계속 그곳을 지나치면서 저렇게 잘 생기지도 못한 여자를 왜 시공관 앞에 걸어 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우리나라 최고가수 이미자였던 것이다
지금은 박세리와 같이 뛰어난 국내 의술의 덕택으로 그때에 비해 굉장히 예뻐 졌지만 . .
이미자의 유명한 히트곡이 영화로 된 동백아가씨를 어릴때 초등학교 2학년때 쯤 부용에서 본적이 있었다
부용역앞 삼거리(우체국 옆길 포함하면 사거리)에서 목과동쪽으로 몇미터 가면 영단의 뒷문, 맵재가 나오는 곳 맞은편 쪽 길에서 몇미터 들어가는 곳에 목재로 지어진 창고가 있었고 그 낡은 창고안에서 동백아가씨가 영화로 상영 되었었다
그것은 수룡구지로 시집가기전 큰 누나와 함께였으며 배려였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것이 흑백 영화였던 것 같고 내용은 섬에 살던 동백아가씨 엄앵란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 서울에 올라와 어느 아줌마한테서 몸을 팔으라고 많은 구박 받다가 그것을 보다못한 어떤 아저씨의 호의로 그 아저씨 등을 밟고 담을 넘어 도망치는 장면이다
어두운 시골 창고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백아가씨와 함께 울고 웃었었다
그러나 그 건물은 진즉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후 부용에서의 영화상영은 목과동 쪽 농협건물 앞에 있는 창고와 창고사이의 터(나중에 가마나 수매장소로 이용된 곳으로 토끼산에서 역전쪽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던 곳) 에 가설극장이 설치되었었다
나중에 풀만 잔뜩 나는 빈터로 황량하기 그지없는 장소로 변모되었지만. .
다음에 천막 영화관 명당장소로 여러번 들어섰던 곳은 나중에 부용 우체국 건물이 지어진 곳이었으며 그것도 잊어먹을만 하면 찾아와 상영을 하였고 한번에 한달 정도는 지속하다 간것으로 보인다
가설극장 영화관은 그 약간 넓은 터의 가장자리에 나무를 밖아놓고 하얀 천으로 두르고 끈으로 엮어 바닥에도 틈이없이 불청객이 들어 갈 수 없게 만들고 앞쪽 한쪽에서는 표를 팔고 마이크로 관객을 유혹하는 영화선전을 하며 표를 산 사람만 들여 보내는 전통적인 시골영화로 끝무렵에나 포장을 걷고 개방을 했다
그러나 하늘이 보이고 밝은 달도 비추어 비가 오기라도 하면 에구머니나 하고 비를 피할 수 밖에 없었고 비가 적게 올 때는 우산을 쓰고 또는 비를 맞으며 구경을 한것으로 안다
나는 누나가 보여준 동백아가씨 이후에는 영화관에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 안되었지만 시골뜨기 철부지로 가설 영화관 주위에서 맴돌기만 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그래서인지 중학교때 역에서 나와 우체국옆을 지나가면서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다시는 영화관을 만들 수 없게되고 부용에서 추억의 영화를 볼 수 없게 된것을 혼자만 속으로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건대 지금은 시골에서도 커다란 LED TV로, 컴퓨터 화면으로 혼자서 조용히 옛날 서부영화던 우리나라 서편제던 모든 영화를 감상할 수 있지만 . .
그떄는 TV, 휴대폰이 없던 시기로, 가설극장은 그당시 그 어디에서 볼 수 없었던 재밋거리를 제공하여 모처럼 동네 아는 사람과 만나 인사할 수 있고, 부부 또는 연인이 함께 다정히 손을 잡고 정이 깊어질 수 있으며 즐거움도 같이 하면 배가 될 수 있어 같이 와 하고 웃고, 같이 슬퍼하여 흐느낄 수 있는 모처럼만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 부용에는 가설극장 영화외에 연극공연이 가끔 있었다
물론 지금도 부용에는극장이 없지만 . .
그것은 가끔씩 찾아와 우리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던 약장수 공연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한 부용 경로당옆 빈터에 공연장을 만들고 무대위에 선 사람들은 남자, 여자,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로 분장을 하고 장화홍련전, 심청전, 춘향전, 흥부놀부전 등을 공연하였다
구성진 우리의 옛 창소리와 함께 다른데서 볼 수 없는 연극공연을 주로 시골 어른들 동네방네 사람들이 모여 즐거워했으며 그런 가운데 잠깐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만병통치 효과가 있는 듯 그럴듯한 입담으로 팔곤 했으며 나도 어른들 틈에 끼어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곳은 부용 파출소 뒷땅으로 재영이네 집뒤이기도 하며 우리집 쪽에서 보면 상당히 높은 위치로 선전 스피커 소리가 우리 동네를 진동하며 유혹하였고 나도 여러번 갔다
장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고 홍보하기가 좋은 부용역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 조금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당시 자가용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장장 걸어서 보러오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그래도 가까운 수룡구지나 월현대, 새절 정도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시간을 내어 와서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때 이리역에서 내려 학교 가는길은 시공관을 지나야 했다
명절 아마 추석이 다가올 때 쯤으로 보이는데 시공관 앞에 엄청 큰 선전 그림이 걸려 있는데 처음보는 이상하게 못생긴 여자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계속 그곳을 지나치면서 저렇게 잘 생기지도 못한 여자를 왜 시공관 앞에 걸어 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우리나라 최고가수 이미자였던 것이다
지금은 박세리와 같이 뛰어난 국내 의술의 덕택으로 그때에 비해 굉장히 예뻐 졌지만 . .
이미자의 유명한 히트곡이 영화로 된 동백아가씨를 어릴때 초등학교 2학년때 쯤 부용에서 본적이 있었다
부용역앞 삼거리(우체국 옆길 포함하면 사거리)에서 목과동쪽으로 몇미터 가면 영단의 뒷문, 맵재가 나오는 곳 맞은편 쪽 길에서 몇미터 들어가는 곳에 목재로 지어진 창고가 있었고 그 낡은 창고안에서 동백아가씨가 영화로 상영 되었었다
그것은 수룡구지로 시집가기전 큰 누나와 함께였으며 배려였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것이 흑백 영화였던 것 같고 내용은 섬에 살던 동백아가씨 엄앵란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 서울에 올라와 어느 아줌마한테서 몸을 팔으라고 많은 구박 받다가 그것을 보다못한 어떤 아저씨의 호의로 그 아저씨 등을 밟고 담을 넘어 도망치는 장면이다
어두운 시골 창고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백아가씨와 함께 울고 웃었었다
그러나 그 건물은 진즉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후 부용에서의 영화상영은 목과동 쪽 농협건물 앞에 있는 창고와 창고사이의 터(나중에 가마나 수매장소로 이용된 곳으로 토끼산에서 역전쪽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던 곳) 에 가설극장이 설치되었었다
나중에 풀만 잔뜩 나는 빈터로 황량하기 그지없는 장소로 변모되었지만. .
다음에 천막 영화관 명당장소로 여러번 들어섰던 곳은 나중에 부용 우체국 건물이 지어진 곳이었으며 그것도 잊어먹을만 하면 찾아와 상영을 하였고 한번에 한달 정도는 지속하다 간것으로 보인다
가설극장 영화관은 그 약간 넓은 터의 가장자리에 나무를 밖아놓고 하얀 천으로 두르고 끈으로 엮어 바닥에도 틈이없이 불청객이 들어 갈 수 없게 만들고 앞쪽 한쪽에서는 표를 팔고 마이크로 관객을 유혹하는 영화선전을 하며 표를 산 사람만 들여 보내는 전통적인 시골영화로 끝무렵에나 포장을 걷고 개방을 했다
그러나 하늘이 보이고 밝은 달도 비추어 비가 오기라도 하면 에구머니나 하고 비를 피할 수 밖에 없었고 비가 적게 올 때는 우산을 쓰고 또는 비를 맞으며 구경을 한것으로 안다
나는 누나가 보여준 동백아가씨 이후에는 영화관에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 안되었지만 시골뜨기 철부지로 가설 영화관 주위에서 맴돌기만 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그래서인지 중학교때 역에서 나와 우체국옆을 지나가면서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다시는 영화관을 만들 수 없게되고 부용에서 추억의 영화를 볼 수 없게 된것을 혼자만 속으로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건대 지금은 시골에서도 커다란 LED TV로, 컴퓨터 화면으로 혼자서 조용히 옛날 서부영화던 우리나라 서편제던 모든 영화를 감상할 수 있지만 . .
그떄는 TV, 휴대폰이 없던 시기로, 가설극장은 그당시 그 어디에서 볼 수 없었던 재밋거리를 제공하여 모처럼 동네 아는 사람과 만나 인사할 수 있고, 부부 또는 연인이 함께 다정히 손을 잡고 정이 깊어질 수 있으며 즐거움도 같이 하면 배가 될 수 있어 같이 와 하고 웃고, 같이 슬퍼하여 흐느낄 수 있는 모처럼만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 부용에는 가설극장 영화외에 연극공연이 가끔 있었다
물론 지금도 부용에는극장이 없지만 . .
그것은 가끔씩 찾아와 우리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던 약장수 공연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한 부용 경로당옆 빈터에 공연장을 만들고 무대위에 선 사람들은 남자, 여자,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로 분장을 하고 장화홍련전, 심청전, 춘향전, 흥부놀부전 등을 공연하였다
구성진 우리의 옛 창소리와 함께 다른데서 볼 수 없는 연극공연을 주로 시골 어른들 동네방네 사람들이 모여 즐거워했으며 그런 가운데 잠깐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만병통치 효과가 있는 듯 그럴듯한 입담으로 팔곤 했으며 나도 어른들 틈에 끼어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곳은 부용 파출소 뒷땅으로 재영이네 집뒤이기도 하며 우리집 쪽에서 보면 상당히 높은 위치로 선전 스피커 소리가 우리 동네를 진동하며 유혹하였고 나도 여러번 갔다
장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고 홍보하기가 좋은 부용역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 조금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당시 자가용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장장 걸어서 보러오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그래도 가까운 수룡구지나 월현대, 새절 정도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시간을 내어 와서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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