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페이지 정보
본문
아침 전기밥솥에서 김 터지는 소리가 별안간 쉐 - - 나는가 싶더니 뻐꾹이 울음소리와 함께 밥이 다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저 스윗치만 눌러 놓으면 알아서 척척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밥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갔었다
보리는 확독에 갈아 물에 담가 놓고 쌀은 바가지에서 문질러 씻은 후 물을 붓고 살살 흔들어 쌀속에 숨어있는 돌들을 조심스럽게 가려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밥을 먹다가 아그작 돌을 씹어 이빨이 뿌러지는 수도 있으니까
큰 가마솥에는 밥을 지었고 작은 양은솥에는 국을 끌였다
씻은 쌀을 솥에 넣고 물을 얼마만큼 넣어야 하느냐가 항상 문제였다
쌀과 보리 혼식과 조를 섞을 때가 각각 달랐으니까
보통 쌀위에 손바닥을 얹어놓고 가운데 손가락 둘째마디에 수위가 되도록 조절 했었다
아궁이 불은 주로 벼농사 짓고난 지푸락으로 그리고 거둔 보릿대, 콩대, 깻대, 고춧대와 탱자나무 윗머리 자른 것을 말려서 넣고 태웠다
새끼 꼬고, 가마니 짜고, 지붕 이느라고 지푸락이 모자라면 정미소에서 맵재를 가져다 아궁이에 불무로 공기를 불어 넣으며 태웠다
불때기 위해 부뚜막에 있는 육각형의 남성 성냥곽의 성냥개비로 불을 붙였다
어머니 옆에서 손을 내밀고 따뜻한 불을 쪼였었는데 부지깽이로 살살 건드려 주면
지푸락은 소리없이 '사악-삭',
보릿대는 작은 소리로 '사닥사닥',
나무들은 가끔씩 큰소리가 '타악-탁',
꼬춧대와 깻대는 요란한 소리로 '따다다다닥',
맵재를 땔때면 그저 조용히 벌겋게 타오르며 불무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가끔 물과 불때기를 잘못하면 질은밥, 꼬두밥, 설된밥, 태운밥을 누룽갱이와 함께 먹을 때도 있었다
불때고 얼마 있으면 김 새는 소리가 나는데 그래도 불을 더 때다가 잠시 멈춘 뒤 다시 약한 불을 조금만 더 때면 적당히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며 맛있는 밥을 만드는 것은 항상 어머니의 노하우였지
김이 빠지면 뜨거운 솥뚜껑을 항상 손잡이 옆에 놓이는 행주로 잡고 밥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열어 보기도 했다
밥할때 위에 고구마, 옥수수를 올려놓고 찐 고구마, 따끈하고 달짝지근하며 이빨에 착착 씹히는 옥수수를 함께 먹을 수도 있었다
밥을 풀때 옆에 지켜보고 있다가 깐밥을 긁어 달라고 졸라서 맛있는 누룽지를 혼자서만 즐기기도 했다
가마솥에서 이제 막 나온 누룽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정말 맛있고 구수하여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맛이었지
역시 어릴적 가마솥 밥이 더 맛이 있었고 식구들이 둘러 앉아 밥을 먹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다복한 식구들이 김치만 있어도 서로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 하던 밥이 훨씬 더 맛이 있었다
여름철 더위속 마당에 멍석피고 바깥 시원한 바람결에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수제비를 먹던 시절도 생각난다
바로 옆에 있는 강아지가 군침을 삼키고 있으면 먹고있던 밥을 몰래 한덩이 주던 때가 그립다
밥상머리에서 밥을 먹다가 때로는 혼이 났었지
밥맛이 없을때 물 말아놓고 그것마져 먹기싫어 남길 때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밥을 입에 넣고 이야기를 한다던지
먹지도 않을 것을 젓가락으로 이것저것 건드려 본다던지
멀리 있는 것을 과도하게 손을 뻗쳐 가져 온다던지
밥그릇을 들고 왔다갔다 하거나
맛있는 반찬만 달랑 혼자서 다 먹거나
먹기 싫어 그저 께젝께젝하거나
밥그릇에 쬐금만 남기고 먹는다거나
쩝접 소리내면서 먹는다던지
밥알이 밥그릇 가상에 몇개 붙어 있는데도 다먹었다고 숟갈을 뗀다거나 하는 등등. .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어른들과 함께 식사할 때에는 항상 조심해야 했고 그게 우리들에게는 밥상머리 교육이 되었던 것 같다
밥그릇에 뭍은 밥톨 한알이라도 농사를 힘들게 지은 농사꾼의 정성이 들어있고 그게 다 우리들의 피와 살이 되는 거라고 하시면서 쌀을 귀중하게 여기는 어른들의 기본 생각이셨었다
그때는 나락을 거둔 텅빈 벌판에서 베다가 놓친 나락이 없나하고 눈을 두리번 거리며 이삭줍기를 했었고 쥐가 겨울에 먹을려고 깊숙이 구멍에 숨겨놓은 양식도 찾아내던 시대었으니까
밥을 다 먹은 뒤에는 후루루 먹기좋은 맛있는 누룬밥을 여분으로 얻어 먹을 수 있었고 구수한 숭늉은 늘 맛이 있었지
내가 누룽지를 얼마나 긁어다 먹었는지에 따라 누룬밥 양이 달라지긴 했다
혼자 있을 때 간혹 먹을 수 있는 식은밥이 쬐금 밖에 남아있지 않는데 뱃속에서는 더 들여 보내라고 조르는 것을 참기가 힘드는 허천나는 경우도 있었다
밥은 항상 넉넉히 해놓고 때로는 찬밥을 이웃집에 빌려 주기도 하며 거지가 찾아오면 깡통에 담아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밥을 작은 그릇에 일부러 조금 남겨 놓았는데 그것은 책이나 공책이 찢어지면 밥태기를 이용하기 위해서 였다
밥알을 이겨 밥풀로 만듫어 찢어진 책이나 공책을 붙혔는데 그때는 밥풀이 떨어진 종이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혹 이불 홑청에 메길려고 만들어 놓은, 문풍지 바를 때도 쓰는 두부같았던 풀 한조각을 떼어다 붙힐수도 있었다
그시절에는 밥을 다 먹었는데도 볼테기에 밥태기나 이겨진 밥풀이 뭍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사 그것을 떼어먹는 밥풀떼기가 있었고 또 밥을 너무 먹어 배가 나오면서 공부도 되게 못하는 친구를 밥통이라고 놀려 먹었었다
아주 어렸을 때 놋그릇을 밥그릇으로 이용했었다
놋그릇은 손으로 들기가 무거웠으며 시간이 가면 색깔이 변하면서 파란 녹이 슬고 지전분하게 보여 놋쇠그릇을 주기적으로 닦았었다
따뜻한 날 햇볕이 드는 토방에 앉아 기왓장을 깨서 만든 가루를 지푸라기 뭉치에 묻혀 가마니 위에서 열심히 여러차례 문질러 누런색으로 빛이 나올 때까지 광을 냈다
그러나 얼마 후 사기그릇으로 바뀌더니 그 다음에는 깨지지 않는 스텐레스 그릇으로 바뀌었으며 얼마전 부터 다시 현재의 사기그릇으로 바뀌어 졌다
불때던 아궁이가 언젠가 연탄불로 바뀌더니, 가스렌지로 바뀌고, 전기밥솥으로 바뀌면서 부엌 아궁이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밥 먹을 때 돌을 씹을 염려도 없어지고 밥 짓는 기술도 그저 밥솥에 써져 있는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는 시골에서 아궁이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아궁이에 태우던 깻대, 콩대, 고추대, 수수대 등을 밭에서 그냥 태워 없애 버린다고 그러네요
그저 스윗치만 눌러 놓으면 알아서 척척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밥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갔었다
보리는 확독에 갈아 물에 담가 놓고 쌀은 바가지에서 문질러 씻은 후 물을 붓고 살살 흔들어 쌀속에 숨어있는 돌들을 조심스럽게 가려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밥을 먹다가 아그작 돌을 씹어 이빨이 뿌러지는 수도 있으니까
큰 가마솥에는 밥을 지었고 작은 양은솥에는 국을 끌였다
씻은 쌀을 솥에 넣고 물을 얼마만큼 넣어야 하느냐가 항상 문제였다
쌀과 보리 혼식과 조를 섞을 때가 각각 달랐으니까
보통 쌀위에 손바닥을 얹어놓고 가운데 손가락 둘째마디에 수위가 되도록 조절 했었다
아궁이 불은 주로 벼농사 짓고난 지푸락으로 그리고 거둔 보릿대, 콩대, 깻대, 고춧대와 탱자나무 윗머리 자른 것을 말려서 넣고 태웠다
새끼 꼬고, 가마니 짜고, 지붕 이느라고 지푸락이 모자라면 정미소에서 맵재를 가져다 아궁이에 불무로 공기를 불어 넣으며 태웠다
불때기 위해 부뚜막에 있는 육각형의 남성 성냥곽의 성냥개비로 불을 붙였다
어머니 옆에서 손을 내밀고 따뜻한 불을 쪼였었는데 부지깽이로 살살 건드려 주면
지푸락은 소리없이 '사악-삭',
보릿대는 작은 소리로 '사닥사닥',
나무들은 가끔씩 큰소리가 '타악-탁',
꼬춧대와 깻대는 요란한 소리로 '따다다다닥',
맵재를 땔때면 그저 조용히 벌겋게 타오르며 불무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가끔 물과 불때기를 잘못하면 질은밥, 꼬두밥, 설된밥, 태운밥을 누룽갱이와 함께 먹을 때도 있었다
불때고 얼마 있으면 김 새는 소리가 나는데 그래도 불을 더 때다가 잠시 멈춘 뒤 다시 약한 불을 조금만 더 때면 적당히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며 맛있는 밥을 만드는 것은 항상 어머니의 노하우였지
김이 빠지면 뜨거운 솥뚜껑을 항상 손잡이 옆에 놓이는 행주로 잡고 밥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열어 보기도 했다
밥할때 위에 고구마, 옥수수를 올려놓고 찐 고구마, 따끈하고 달짝지근하며 이빨에 착착 씹히는 옥수수를 함께 먹을 수도 있었다
밥을 풀때 옆에 지켜보고 있다가 깐밥을 긁어 달라고 졸라서 맛있는 누룽지를 혼자서만 즐기기도 했다
가마솥에서 이제 막 나온 누룽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정말 맛있고 구수하여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맛이었지
역시 어릴적 가마솥 밥이 더 맛이 있었고 식구들이 둘러 앉아 밥을 먹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다복한 식구들이 김치만 있어도 서로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 하던 밥이 훨씬 더 맛이 있었다
여름철 더위속 마당에 멍석피고 바깥 시원한 바람결에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수제비를 먹던 시절도 생각난다
바로 옆에 있는 강아지가 군침을 삼키고 있으면 먹고있던 밥을 몰래 한덩이 주던 때가 그립다
밥상머리에서 밥을 먹다가 때로는 혼이 났었지
밥맛이 없을때 물 말아놓고 그것마져 먹기싫어 남길 때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밥을 입에 넣고 이야기를 한다던지
먹지도 않을 것을 젓가락으로 이것저것 건드려 본다던지
멀리 있는 것을 과도하게 손을 뻗쳐 가져 온다던지
밥그릇을 들고 왔다갔다 하거나
맛있는 반찬만 달랑 혼자서 다 먹거나
먹기 싫어 그저 께젝께젝하거나
밥그릇에 쬐금만 남기고 먹는다거나
쩝접 소리내면서 먹는다던지
밥알이 밥그릇 가상에 몇개 붙어 있는데도 다먹었다고 숟갈을 뗀다거나 하는 등등. .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어른들과 함께 식사할 때에는 항상 조심해야 했고 그게 우리들에게는 밥상머리 교육이 되었던 것 같다
밥그릇에 뭍은 밥톨 한알이라도 농사를 힘들게 지은 농사꾼의 정성이 들어있고 그게 다 우리들의 피와 살이 되는 거라고 하시면서 쌀을 귀중하게 여기는 어른들의 기본 생각이셨었다
그때는 나락을 거둔 텅빈 벌판에서 베다가 놓친 나락이 없나하고 눈을 두리번 거리며 이삭줍기를 했었고 쥐가 겨울에 먹을려고 깊숙이 구멍에 숨겨놓은 양식도 찾아내던 시대었으니까
밥을 다 먹은 뒤에는 후루루 먹기좋은 맛있는 누룬밥을 여분으로 얻어 먹을 수 있었고 구수한 숭늉은 늘 맛이 있었지
내가 누룽지를 얼마나 긁어다 먹었는지에 따라 누룬밥 양이 달라지긴 했다
혼자 있을 때 간혹 먹을 수 있는 식은밥이 쬐금 밖에 남아있지 않는데 뱃속에서는 더 들여 보내라고 조르는 것을 참기가 힘드는 허천나는 경우도 있었다
밥은 항상 넉넉히 해놓고 때로는 찬밥을 이웃집에 빌려 주기도 하며 거지가 찾아오면 깡통에 담아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밥을 작은 그릇에 일부러 조금 남겨 놓았는데 그것은 책이나 공책이 찢어지면 밥태기를 이용하기 위해서 였다
밥알을 이겨 밥풀로 만듫어 찢어진 책이나 공책을 붙혔는데 그때는 밥풀이 떨어진 종이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혹 이불 홑청에 메길려고 만들어 놓은, 문풍지 바를 때도 쓰는 두부같았던 풀 한조각을 떼어다 붙힐수도 있었다
그시절에는 밥을 다 먹었는데도 볼테기에 밥태기나 이겨진 밥풀이 뭍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사 그것을 떼어먹는 밥풀떼기가 있었고 또 밥을 너무 먹어 배가 나오면서 공부도 되게 못하는 친구를 밥통이라고 놀려 먹었었다
아주 어렸을 때 놋그릇을 밥그릇으로 이용했었다
놋그릇은 손으로 들기가 무거웠으며 시간이 가면 색깔이 변하면서 파란 녹이 슬고 지전분하게 보여 놋쇠그릇을 주기적으로 닦았었다
따뜻한 날 햇볕이 드는 토방에 앉아 기왓장을 깨서 만든 가루를 지푸라기 뭉치에 묻혀 가마니 위에서 열심히 여러차례 문질러 누런색으로 빛이 나올 때까지 광을 냈다
그러나 얼마 후 사기그릇으로 바뀌더니 그 다음에는 깨지지 않는 스텐레스 그릇으로 바뀌었으며 얼마전 부터 다시 현재의 사기그릇으로 바뀌어 졌다
불때던 아궁이가 언젠가 연탄불로 바뀌더니, 가스렌지로 바뀌고, 전기밥솥으로 바뀌면서 부엌 아궁이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밥 먹을 때 돌을 씹을 염려도 없어지고 밥 짓는 기술도 그저 밥솥에 써져 있는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는 시골에서 아궁이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아궁이에 태우던 깻대, 콩대, 고추대, 수수대 등을 밭에서 그냥 태워 없애 버린다고 그러네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