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마실 > 부용으로 추억여행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부용으로 추억여행

탱자나무, 마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웃음
댓글 0건 조회 2,031회 작성일 22-01-12 22:29

본문

○ 탱자나무, 마실
몇군데 해외여행에서 돌로 만든 격조있는 건물이나 기막힌 시골 전원풍경을 보았으나 어렸을 때 우리의 시골처럼 정경어린 시골풍경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부드럽고 모나지 않은 초가지붕이나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싼 풍경 때문일 것 이다
거기에 초가지붕 위에 둥근 박이 얹혀 있으면 그림 같지 않은가 ?

우리 동네도 초가집에 울타리로서 담과 탱자나무가 있었다
담은 대부분 흙을 눌러 만든 흙담이었으나 높지 않았고 일부 울타리는 기둥을 세우고 짚이나 수수대를 엮거나 판자로 가림막을 하는 정도였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그저 영역의 표시였던것 같다

어릴 때 장터라고 불리는 우리 동네 한쪽 탱자나무로 둘러 쌓여있는 텃밭에서 도진엄마가 일할 때는 그 모습이 길에서 보이고 종종 지나가던 사람들은 탱자나무 넘어 인사를 나누었었다
우리집도 옆집과 텃밭에 탱자나무 울타리로 영희야, 영식아 하고 부르기도 하고 탱자나무 사이로 음식을 건네 받기도 했었다
'이웃과 담 쌓고 지낸다' 라는 곳도 있었지만 우리동네는 서로 도우며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탱자나무는 묘목을 심어 울타리가 되려면 3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봄이면 잎이 나며 꽃을 피우고 탱자를 열며 가을에는 탱자가 익어가고 겨울이 오기전에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탱자가시에 찔리면 아플뿐만 아니라 그 자리가 곪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으나 새들과 벌레들은 그들의 놀이터였다
참새들은 아침부터 우리집 창가에서 짹쨱 재잘거렸으며 거미는거미줄을 펴고 잠자리 등 곤충이 걸리기를 기다리고 늘 날아 다니던 잠자리들도 가시옆에 앉아서 쉬는 등 농촌을 시골스럽게 했었다고 생각한다
살고있는 생물이니 잘라주는 등 관리를 해줘야 하며 우리는 탱자울타리 윗머리를 잘라서 말려고 밥 지을 떄 부엌 아궁이에 태웠다

탱자나무는 이웃과 완전히 차단하는게 아니어서 학교갔다 오는 길에 한때 함께 놀던 후배 칠성이네 집 탱자나무 옆에서 집에 있나 하고 흘깃 보기도 했었다
옆집과도 탱자나무 울타리로 경계지어 있어 소리가 차단되지 않아 이웃 할아버지 기침소리 식구들의 소리가 들려 왔었다

그 시절은 대부분 가정의 식구들이 5명 정도 이상이어서 집집마다 항상 바람잘날 없고 엉성한 탱자나무와 함께 이웃과의 교류가 많았다
TV 나 게임기 등이 없어 집안에서만 '방콕' 할거리가 거의 없었을 때이므로 심심하면 친구집에 가서 '완수야 놀자 !' 라고 대문 앞에서 불러내어 자치기나 구슬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나 깨금짓고 싸우기 등 함께 놀 수 있는 놀이가 많았으므로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했다

낮에는 마당이나 골목, 동네를 벗어나서도 놀 수 있었으나 컴컴해지고 밤이 되어 저녁밥을 먹으러 각자 자기 집으로 가버리고 밤먹고 나서는 밖은 캄캄해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보름달이 훤하면 나와 놀기도 했으나 몇친구 나오지 않아 동지를 지나 겨울 긴긴 밤은 집에서 외롭고 심심하여 그래서 친한 친구집으로 놀러 가기도 했어다

우리 누나는 밤에 동네 친구네집에 마실을 갔다
시골에는 우리집같이 대문이 없는 집이 많으며 탱자나무, 담 넘어 친구가 집에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고 마실을 가도 될만한 때인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친구네집 따뜻한 방에서 이불에 발을 넣고 여자들만의 수다를 떨었던것 같다
가끔 어머니가 누나를 찾아 오라고 하면 나는 익히 알고있는 마실을 잘가는 누나친구 동네 옥주, 영순, 선택이 누나네 집에 가면 찾을 수 있었다
때로는 새참을 먹고 오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집 숫가락이 몇개인지 등도 훤히 알 수도 있었을 때였다
그렇게 가깝게 보이던 누나의 친구들은 시집을 가버리면 온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남자인 우리들도 여름 밤에 마실 다녔다
밤에 무더위가 계속되면 마당에 멍석위에 누워 있다가 부채 하나를 가지고 나와 그곳으로 가면 동네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학교가는 길목 위치가 약간 높은 바람이 왔다가 쉬이 지나갈 수 있는 곳에 자리잡은 모종이다

가장자리 경계목에 목을 받치고 누워 부채로 모기를 탁, 탁 좇으며 밤바람를 쏘이면서 군대시절의 고생했던 일이나 재밌는 이야기거리를 항상 들을 수 었었다
꼭 이야기꾼이 한 둘 있어 심심치 않았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들으며 밤이 깊어가면서 모기에 시달리기도 하다가 조금 서늘해지면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었다

어른들도 이웃집 평상에서 또는 바람이 잘 들어올 만한 넓고 마당에 멍석을 피고 한쪽에 모기불을 피고 이웃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었지
기억나는 것은 옆집 작은 방 앞에 있는 평상에 모여 앉아서 TV 에 나오는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딛을 때였고 모였던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었다

이곳 안양에도 늘 올라가는 뒷산 길에 '마실길'이라는 길 이름이 있는 것을 보아 옛날 꽤 높은 산 등성이를 넘어 인덕원 방향 이웃동네로 마실을 많이 다녔던 것 같다
그러나 시골에서도 점점 사람수가 줄어들고 잘라주고 관리해야하는 탱자나무를 없애면서 동네 분위기도 옛날같지 않는것 같다

도시에서는 요즘 대부분이 아파트로 울타리가 전혀 필요치 않는 집의 문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의 간섭을 받을 수 없는 자기만의 세상으로 된다
옆집에 누가살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인사를 나누지 않으며 지낼 수 있으며 이웃에서 누구 한사람 죽어 나가도 알수 없는 것이다
담이 따로 없으며 마당조차도 없는 것이다
오직 윗층에 애들이 뛰어 노는 소리만 신경이 쓰일 뿐이다
참 각박한 요즘 세상 !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릴 때의 시골에서는 설날에 이웃집과 떡도 나누고 동네 아무개네 집 사정도 훤히 알 수 있을 만큼 유대관계가 많았고 대소사가 있을 때 동네사람들이 모두 함께 도와 주기도 했었는데 너무 차이가 많은 것 같지 않은가
집마다 아이들이 많아 골목은 항상 놀이터로 시끌하고 친구집 마당에서 딱지치기하며 어른들은 서로 품앗이 농사나 삯일하는 등 도움을 주고 받으며 지내던 그시절이 그립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 정보

회사명 : KwangSoo 생각 / 대표 : 최광수
주소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임곡로 123-45
사업자 등록번호 : 123-45-67890

접속자집계

오늘
995
어제
411
최대
2,779
전체
226,414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