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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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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댓글 0건 조회 2,099회 작성일 22-02-0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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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겨울나기
우리들의 어린시절 겨울은 유난히 더 추웠던것 같습니다

그때는 보온성이 뛰어난 패딩이나 더운 물을 공급하는 보일러가 없었기 때문에 얼음이 꽁꽁 어는 추위에서도 어떻게든 견디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온실이나 온상이 없었던 때라 눈이 내리면 식물이 살수 없는 얼어붙은 산하에서 준비해 놓은 먹거리들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었죠

시골에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거둬서 쌓아 놓는 것 자체가 겨울나기 준비였습니다
우리는 가을에 볏가리 나락을 온식구들이 마당에서 홀태로 훑어 멍석위에 말리고 가마니에 담아 마루에 쌓아 놓았고 사거리밭 고구마는 캐내어 지게로 지고와서 작은방에 저장 울타리를 수수대로 만들고 쟁여 놓았습니다

나락은 몇 차례 나누어 방앗간으로 가져가 쌀로 찌어 밥을 지었는데 나락을 찌을 때마다 나오는 새쌀은 먹던 밥보다 밥맛이 훨씬 더 좋았지요

작은방에 보관하던 고구마는 밥만으로는 부족했던 우리들의 배를 든든하게 했습니다
생으로 깎아먹고, 밥위에 찌고, 따로 삶아 간식으로, 그리고 구워서 먹었습니다
생고구마는 텁텁하고 달큰한 맛이 입안 가득했지만 많이 먹으면 배가 살살 아팠으니 적당히 먹어야 했습니다
밥 위에 쪄서 먹을려면 껍질을 벗길 때 밥태기가 조금씩 붙어있어 약간 번거로웠지요
그땐 쌀이 귀하던 때라 밥알이 붙어있는 껍데기를 그냥 버리지 않았고 일일이 주둥이로 밥태기를 떼내어 입안에 넣었습니다
구워 먹는 것이 제일 맛있는데 아궁이 불을 때고 나서 불씨가 약해 졌을 때 잿속에 파묻으면 껍데기가 타지않고 맛있는 진짜 군고구마 맛 맛이 그만입니다
고구마 중에는 물고구마보다 밤고구마가 진짜 밤보다 양이 많고 더 포근포근한 맛이 입을 풍부하게 했으므로 맛있는 빨갛고 단단한 고구마를 잘 고르는 것도 하나의 센스였지요

집에 기르는 토끼는 우리안에만 있어 먹이를 안주면 굶을 수 밖에 없으므로 겨울이 오기 전에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야 했습니다
낙엽져서 뜯을 수 있는 풀이 없으면 배추나 무우 잎사귀 말려놓은 시래기를 주고 말린 콩깍지를 주었습니다
고구마 거둘 때 줄기를 가져와 말려서, 뽑을 때 나오는 잔챙이도 모아, 우리들이 깍아 먹은 고구마 껍질도 주면 토끼는 사각사각 소리내며 아주 맛있게 갉아 먹었습니다
하얀 토끼가 코를 벌렁이며 큰 앞 이빨로 작은 고구마를 서걱서걱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귀엽기도 하고 참 재밌었지요

우리는 몇마리 토끼를 위한 겨울 준비를 하지만 소를 기르는 친구네는 작은 토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먹어 제끼는 어마어마한 양을 보급하여야 했고 아침 저녁 작두로 지푸락을 썰고 여물을 커다란 가마솥에 끓여야 했을 것이며 많은 양의 배설물을 치우는 등 한 사람이 계속 소의 뒷바라지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입니다

겨울나기 먹거리 준비는 뭐니뭐니해도 김장입니다
텃밭 배추를 거둘 때면 나도 배추를 잡고 뽑으며 한 몫을 했는데 마른 잎파리를 떼어내고 꼬랑지를 잘라 우물가에 씻어 놓았습니다
떼어낸 배춧닙은 뒤엄자리에 버리는데 좀 깨끗한 것은 햇볕에 말려서 나중에 시래기국을 해 먹기도 했습니다
잘라낸 배추 꼬리는 밭에 그냥 버렸지만 그중 큰놈 몇개를 주워서 뭍은 흙을 탈탈 털어내고 깍아서 먹었는데 약간 매콤하면서 단단하고 씹히는 맛이 있었으며 그런 맛은 다른데서 찾을 수 없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배추꼬리가 더 큰놈이 없을까 하고 찾아 보면서 배추 뿌리가 더 컷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김장은 우물 옆 노깡에다 배추를 절여 놓으면서 시작되는 어머니와 누나들 일이라 시키는 심부름이나 하고 놀면서 구경만 하였습니다
버무리면서 양념이 잔뜩 뭍은 손으로 맛 보라고 조금 찢어서 참깨를 뭍혀 주는데 아직은 싱싱한 배추의 매콤 짭잘하면서 고소하고 맛있는 김치의 맛은 보기에 엄청 매울것 같은 빨간 고추장 이미지를 뭍어 버리기에 충분한 맛이었지요
지를 담아 간장 고추장이 놓인 장독대 김장독에 넣어두고 겨울내내 꺼내 먹었으며 봄이 지나갈 때까지 밥상에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눈이 잔뜩 쌓여있는 밭으로 가서 눈을 헤치고 밑을 파고 땅속에서 새파란 배추와, 무우 캐는것을 보았는데 싱싱한 가을 배추와 무우 그 모습으로 생생하게 거꾸로 묻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배추나 무우를 필요한 만큼만 꺼내고 지푸라기로 쑤셔막고 흙을 다시 덮어 겨울동안 가끔씩 꺼내 먹었습니다
김장 담으며 일부를 겨울에 먹을려고 남겨 두었던 것이며 지열을 이용하는 천연 냉장고로 농촌에서의 내려오는 겨울나기의 한 방법인 것 같았습니다

김치가 익어서 맛이 시다 싶은 참에 새로 꺼내온 싱싱한 배추 잎으로 고추장을 찍어먹고 겉절이로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그 맛 또한 별미여서 그때는 밥 한 그릇 뚝닥 해치우고 더 먹기 일쑤였습니다
또한 장독 옆 땅속에 묻어뒀던 항아리에서 살얼음이 떠 있었는 싱거운 듯 하면서 맛있는 싱근지를 겨울내내 꺼내어 먹었습니다

겨울에 따뜻한 방 구석에 시루를 항아리 뚜껑위에 받혀 놓고 콩나물도 키웠습니다
콩나물 시루에 수시로 물을 퍼 주면 전부 밑으로 흘러 내리지만 조금 있으면 싹이나고 노오랗게 자라는 콩나물을 볼 수 있었고 조금씩 뽑아 먹으면서 콩나물이 파랗게 쇨 때까지 오랫동안 온 식구들에게 맛있는 콩나물국을 제공하였습니다

탱자나무 위에서 자란 늙은 호박은 시렁 위에 올려 놓고 겨울에 달달한 호박국을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논밭 일이 끝나서 밖에 나가 할일이 없는 시기를 농한기라고 불렸는데 우리 식구는 그때 가마니를 짜고 새끼를 꼬았습니다
따뜻한 날 마루에서 아버지가 새끼를 꼬았고 어린 나도 옆에 앉아서 꼬았습니다
지푸라기 중에서 좋은 것을 추려서 물을 조금 적셔놓고 새끼를 엉덩이로 깔고 앉아 앞쪽에서 손으로 비벼 꼬면서 계속 꼬아진 새끼를 뒤로 밀어 냈습니다
 
가마니 짤 때는 어린 동생을 제외하고 온 식구가 동원 되었습니다
작은 방 가마니 틀에 새끼로 준비하고 공잇대는 아버지가 잡고 내려치는데 어머니와 누나들이 교대로 잣대를 잡았습니다
나도 크면서 교대했는데 쉬지않고 계속적으로 지푸라기를 끼워서 집어 넣어야 하는 잣대를 잡는 팔이 아파왔지만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니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겨울 동안 우리 집에서는 가마니 짜느라 공잇대 내려치는 쿵쾅- 쿵쾅- 소리가 멈추질 않았지요

가마니가 많이 짜여지면 역전에 있는 농협창고에 가지고 가서 수매를 했는데 나도 따라가서 구경했습니다
그때 커다란 창고안에 있는 산더미 비료푸대 위에도 올라가고 잔뜩 쌓여있는 쌀가마니 위에도 올라가 보곤 하였습니다
다른 지역 먼 곳에서도 구루마로 가마니를 싣고 와서 창고 앞마당에 가마니들이 수북하게 쌓였는데 검사를 해서 잘 된 것은 등급을 좋게 받았고 우리 가마니도 터럭이 거의 없이 깨끗하게 짰기 때문에 우수한 등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새끼와 가마니를 짰는데 그러다가 가끔 아버지도 마실을 다니곤 했습니다
겨울에도 가마니를 짜던 아버지는 일년 내내 힘들게 일만 하셨던 성실한 농사꾼이었으나 때로는 동네 한쪽 따뜻한 방에서 화투를 치면서 노는 노름방에 가신 것입니다
만나기 힘든 동네 친구들과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긴 겨울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휴식이 필요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나도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서야 그때의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깥일을 할 수 없는 겨울동안에 봄을 기다리면서 농사짓기 전 까지만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2~3년 만에 하는 초가집 지붕을 가을에 새로 이고 나서 겨울되기 전에 방문을 다시 바르는데 문구녁 나고 때운 곳이 여기저기 덕지덕지한 것을 뜯어내고 창호지로 말끔하게 새로 발랐습니다
문종이 바를 때 중간 쯤 작은 유리를 넣었는데 밖에서 누가 찾을 때나 바깥의 일이 궁금할 때 문을 열지 않고 밖을 내다 볼 수 있어서 겨울에 참 편리했습니다
방문을 여닫을 때는 아무리 조심하여도 문종이가 쉽게 찢어지고 구멍이 났으며 찬바람이 솔솔 들어와 밥풀로 종이를 다시 붙이기도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방걸레로 구멍을 쑤셔 막곤 했습니다
매서운 겨울바람 소리가 요란할 즈음 문풍지 떠는 소리가 파르르르 하고 귓가를 간지럽히지만 불을 따뜻하게 때놓은 온돌 방 이불속에만 있으면 하나도 춥지가 않았습니다

추운 겨울을 나는 데는 무엇보다 따뜻한 방이 최고입니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서 어른들은 허리 지진다고 하는데 우리들도 잘 때가 되면 식구들 모두가 따뜻한 아랫묵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을 했었지요
새벽쯤 방바닥이 식어서 잠을 깨기도 하는데 어머니나 누나가 일어나 부엌에 나가 군불을 때면 이내 따뜻해지고 금방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철에 비하여 겨울에는 아궁이 불을 더 많이 때서 구들장을 뜨겁게 달궈 놓아야 했었습니다
낮 동안 열심히 놀아서인지 따뜻한 이불 속에서 몸이 나근나근하여 깊은 잠에 들었다가 그만 요에 지도를 그려서 혼이나고 아침에 두꺼운 요대기를 빨랫줄에 걸어놓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이 혹독한 겨울 날씨에 온돌방이 없었다면 기나 긴 겨울 밤을 어떻게 지낼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기까지 합니다       

우리집에서는 무르익어 가는 겨울밤 따뜻한 방에서 누나들과 함께 호박씨와 해바라기 씨를 까서 먹곤 하였습니다
다른 주전부리 할만한 것이 없어 작고 납작한 씨를 하나씩 손톱으로 깠는데 손에 잘 잡히지 않고 손톱으로 씨 끝을 갈라야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또 까서 하나씩 입에 넣으면 맛이 있기는 하나 알이 작아 먹는 것 같지도 않았으며 그땟말로 먹다 허천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노력하여 까가지고 한주먹 되었을 때 한입에 탁 털어 넣고 자근자근 씹어 먹으면 호박씨, 해바라기씨의 옅은 향과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밖은 눈보라 몰아치는 시베리아 같은 늦은 겨울밤에 식구들이 모여 오손도손 옛 이야기 들으며 호박씨, 해바라기씨를 까 먹으면서 따뜻한 방에서 한 겨울을 나는 것이 행복한 시간이었지 않았나 생각해보며 이제 머지않아 봄이 찾아 올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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