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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 신작로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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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댓글 0건 조회 1,377회 작성일 23-05-2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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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용 신작로'란 내글을 받아 본, 용지 죽신리 살았으며 KBS 스포츠국장을 지낸 친구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신작로는 부용국민학교까지가 아니라 용지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고 하며 그때의 부용 신작로를 잘 표현해 주어 감동했다고 하면서 몇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부용은 그때 대부분 용지 사람들이 왕래하던 텃밭이었다고 . .
용지에는 국민학교 부근에 아무것도 없었고 교회도 몇명 어느 집에 모여 예배 드리는 시작 단계여서 부용 교회를 다녔는데 나랑 5학년 때쯤 만났다

용지 사람들이 부용역을 이용하였고 그래서 부용 술집들을 그쪽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 하며, 또한 부용 신작로에서 장사하던 많은 사람들은 용지와 관련되었다고 주욱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용지 황씨로 승렬 아버지를 잘 알고 있으며, 미미이발관 앞 벽돌/기와를 만들던 곳, 사진관 아저씨와 그집 딸, 최완병 어머니와 살던 용지 외가집 그리고 주장집과의 관계, 그리고 일찍 문 닫은 주장집앞에 방앗간하던 조하수씨, 건장하던 옴팍집 주인 및 여주인, 한약방집 및 고교 선배, 원수(영수)네 쌀가게, 오래전 없어진 비단집 아주머니와 그 가족 등을 훤히 알고 있었고, 부용병원 이야기할 때는 '재희 아버지로 표현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하였다

또 최훈식씨 방앗간, 윤자빙네 가게와 사거리 방앗간은 주로 용지 사람들이 이용했었고 용지사람이 운영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정규 어머니의 용지 외가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 .

그 시절에는 지금과는 달리 빠른 교통수단이 없어 왕래하기 불편하였고 우리 모두 그냥 발로 걸어 다녔었지

생각해 보니 그래도 부용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막걸리는 공술, 평고 할것 없이 멀리까지 배달 되었으며 재희 아버지가 의사이던 부용병원은 근방 역골, 임상리 할것없이 아프면 멀리서도 찾아 왔던 것이다

다만 용지에 국민학교가 있었고 석담리에 분교가 생겨서 나중에는 학생들이 부용으로 올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몇 사람은 부용 중학교를 멀리서 찾아 왔다

내가 공고 다닐때, 공고 선생님과 예쁘장한 여학생 따님이 눈비 내리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세절과 봉살리를 거쳐 역골 그 먼곳에서도 부용역으로 항상 걸어 다니며 출퇴근, 통학을 했었다
지금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일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닐때는 우리 친구들은
학동리, 석담리, 세절은 뒷쪽 울타리 샛길로 해서 부용중학교 앞길로,
반월리, 농원은 교문에서 꺾어져 과수원 사잇길로,
월현대는 용지가는 길이나 경덕이네 떡방앗간 옆길로 해서 부용교회 옆길로 다녔고,
가전리, 성자동, 수룡구지, 목가동 만 신작로 연석이네 가게 옆쪽으로 다녔을 것이니 신작로 길을 제대로 걸어 다녀 본 친구는 일부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졸업하고도 대부분 부용 사람들은 부용역을 가기 위하여 또는 신작로에 물건 사러 가면서 봤었던 신작로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을 것이나,
학동리, 석담리, 반월리는 전군도로를 이용하며 또 멀어서 일부러 부용으로 올 필요가 없었으니 그쪽에 사는 사람들은 신작로에 대하여 거의 아니 전혀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신작로 근방에 살던 우리 동창들 호야, 연석, 승렬과 종길이는 먼저 가 버렸고 완병, 병훈 등은 나타나지 않으며 그밖의 몇 친구들은 별 말이 없는 것들에 반하여, 1년 후배 동네 친구는 글을 환영하며 동기들과 공유하였고, 훨씬 멀었던 용지 친구가 더 좋아 하는 것 같다

부용 미인 크네기점빵 삼거리에 있던 서울미장원 딸 혜실이는 그때 기억을 되살리는 도움을 주었는데 고운 얼굴 지금쯤은 주름지고 흰머리로 덮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부용역, 우체국, 농협, 파출소가 진즉 폐쇄되고 영단도 없어져 넓은 자리만 뎅그라니 폐허가 되었지만, 신작로 가는 길에 한잔하며 북적이며 창문으로 소리가 새어 나와 눈팅하던 통통하고 혈색이 좋던 영식 엄마의 술집과 대주전자를 들고 막걸리 받으러 가서 두리번 거리며 구경하다가 현금 박스가 열리는 땡그렁 소리를 들어 보았던 주장집, 아버지 봉초 심부름 가서 창문에 난 작은 문으로 담배를 건네 받던 담배집 생각 등등 . .
가지 못하면서 그시절 그때를 먼 안양에서 혼자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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