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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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살도 안된 귀여운 아이를 업어주려 하는데 싫다고 하는군요
등에 업으면 억지로 잠을 재우려는 줄 안다고 아이 엄마가 그러긴 하지만 . .
그뒤로 아이를 업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어렸을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땐 애들을 대부분 등에 업어서 키웠지요
잠이 들때까지 함께 놀아 주면서 어를만한 도구나 마땅한 아이를 위한 장난감 들이 없었으니까요
아기와 함께 한참 놀다가 웅크리고 등을 내 보이며 '어부바 !'하고 유혹하면 아장 아장 한발씩 발걸음을 떼면서 다가와 등에 업히곤 하였습니다
잠 투정으로 칭얼대기 시작하면 으례 포대기를 대어 업고 이리 저리 서성댔습니다
젖을 먹여 배부른 상태에서 업고 노래를 부르면서 얼러주면 곧 잠이 들었습니다
싑사리 잠을 자지 않을 때면 노래는 길어 질 수 밖에 없었지만 . .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 . .'
등위에 편하게 업혀 폐와 등을 통해 들려오는 자장가 진동 소리에 슬며시 잠이 들게 마련이었습니다
재울 때 뿐만 아니라 아직 걷지 못하는 애기를 돌봐 주기 위해 업었습니다
구부려 뒤로 앉아 등을 보이며 '어부바' 하면 이제 바듯히 걷는 귀여운 아이는 좋아하며 걸음마로 한 발, 한 발 걸어와 업혔고 조금 더 커서는 뛰어와 업혔습니다
애기를 업고서 동네 마당으로 나가 친구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그냥 구경만 했었는데, 어떤 여자애는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도 아기를 업은 채로 뛰었고, 업고 쭈그리고 앉아 공기놀이도 하고 또 업고 설겆이 하는건 다반사였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형제 누나가 업어 주는데 가끔은 동생 보느라 학교에 가지도 못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심지어 업고 학교 오는 친구도 있었던 . .
그 때는 식구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동생이 새로 생기면 형, 누나, 언니가 의례 업어 주었고, 조금 크면 손잡고 걸음마도 시켜주고, 조금 더 크면 친구와 놀이하는데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놀기도 하였습니다
부모형제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삼촌, 숙모까지 함께 지내는 대가족은 교대로 이뻐하며 업어줄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지요
그렇게 업어줄 수 있는 누나, 오빠가 많은 식구들은 한집에서 서로 부대끼고 접촉하며 자라면서 오손도손 우애있게 더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남자 어른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업질 않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는 힘드는 일, 실례가 되는 부탁이라 생각했던 것 같고 아버지는 어려운 일을 해야하는 어른으로 생각하기도 하였지만 일반적으로 체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었고 아버지도 굉장히 이뻐할 경우 업어 주었고 손자 사랑 할아버지는 체면 불구하고 등에 업고 동네에 나가 귀여운 손자를 자랑하기도 했었지요
그때 완고하던 아버지, 할아버지가 업어 주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하였던 사람 아닐까요 ?
우리 식구 뿐만 아니라 동네의 가까운 친척 애기도 업어 주기도 했습니다
나도 어린시절 그때 큰집 조카 유진, 경진이를 무척 귀여워 하며 학교에 갔다오면 달려가 업어 주곤 했었습니다
내등에 업히기를 그렇게나 좋아하던 녀석들도 점점 크면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나중에 가서는 언제 그랬었냐는 듯한 태도 였습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도 그런 느낌을 받은 사람이 아마 더러 있을 것으로 생각 듭니다
배신의 느낌 같기도 하고 . . ㅎㅎ
개구리가 올챙이적 시절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진실인 것 같습니다 !
귀여운 어린 아기를 업고 있다보면 등짝이 조금 뜨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기저귀를 채워 조심스레 업긴 했지만 오줌을 절푸덕 많이 싸서 새어 나와 등에 입은 옷까지 젖을 때가 가끔 있었지요
조금 커서 기저귀를 안 채웠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 .
어부바 하는 일에는 그런 희생을 얼마간 감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땐 하얀 천 기저귀를 사용하였었는데 어린이 키우는 집에서는 빨아서 다시 사용해야 했으므로 빨랫줄에 하얀 기저귀가 여러개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이곳 저곳 그런 풍경을 보는 것이 일상적일 때였습니다
그 많던 기저귀 말리던 모습들도 1회용 기저귀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슬금 슬금 안보이더니 이젠 아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아기 업던 포대기도 여러가지 업기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기를 앞으로 업더군요
그렇게 하여 코 앞의 애기 모습을 볼수있고, 조금 크면 아기도 앞을 함께 바라볼 수도 있게 되는데 그것이 포대기 대거나 등으로만 업어주던 시절에 젖어있던 나로서는 세대 차이인지 한동안 불안하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보이더군요
최근에는 업어주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유모차가 다가오면 아기가 자리에서 예쁘게 평안히 자고 있겠지 하고 기대하며 바라보면 그 자리에 강아지가 앉아있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되는데 . .
'아니 ! 인간과 강아지를 동급으로 취급하는것 아닌가 ?' 생각되면서 못 마땅하지만 눈살을 찌푸릴 수도 없고 아무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세대인것 같습니다
그때 자장가 들으며 등에서 업혀서 컸던 기억을 할 수 없듯이 많이 달라진 세상에서 요새 사람들은 대부분 '어부바'라는 단어 조차 모를 것입니다
요즘에는 맛벌이 가정이 많아서 옛날과 다르게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바쁜 아빠, 엄마를 제치고 귀여운 손자들에게 사랑을 흠뻑 담아 어르면서 또 어부바를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풍진 세상에 가장 행복한 것은 안아주는 엄마의 품에서 세상 모르고 잠을 곤히 자고있는 아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등에 업으면 억지로 잠을 재우려는 줄 안다고 아이 엄마가 그러긴 하지만 . .
그뒤로 아이를 업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어렸을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땐 애들을 대부분 등에 업어서 키웠지요
잠이 들때까지 함께 놀아 주면서 어를만한 도구나 마땅한 아이를 위한 장난감 들이 없었으니까요
아기와 함께 한참 놀다가 웅크리고 등을 내 보이며 '어부바 !'하고 유혹하면 아장 아장 한발씩 발걸음을 떼면서 다가와 등에 업히곤 하였습니다
잠 투정으로 칭얼대기 시작하면 으례 포대기를 대어 업고 이리 저리 서성댔습니다
젖을 먹여 배부른 상태에서 업고 노래를 부르면서 얼러주면 곧 잠이 들었습니다
싑사리 잠을 자지 않을 때면 노래는 길어 질 수 밖에 없었지만 . .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 . .'
등위에 편하게 업혀 폐와 등을 통해 들려오는 자장가 진동 소리에 슬며시 잠이 들게 마련이었습니다
재울 때 뿐만 아니라 아직 걷지 못하는 애기를 돌봐 주기 위해 업었습니다
구부려 뒤로 앉아 등을 보이며 '어부바' 하면 이제 바듯히 걷는 귀여운 아이는 좋아하며 걸음마로 한 발, 한 발 걸어와 업혔고 조금 더 커서는 뛰어와 업혔습니다
애기를 업고서 동네 마당으로 나가 친구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그냥 구경만 했었는데, 어떤 여자애는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도 아기를 업은 채로 뛰었고, 업고 쭈그리고 앉아 공기놀이도 하고 또 업고 설겆이 하는건 다반사였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형제 누나가 업어 주는데 가끔은 동생 보느라 학교에 가지도 못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심지어 업고 학교 오는 친구도 있었던 . .
그 때는 식구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동생이 새로 생기면 형, 누나, 언니가 의례 업어 주었고, 조금 크면 손잡고 걸음마도 시켜주고, 조금 더 크면 친구와 놀이하는데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놀기도 하였습니다
부모형제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삼촌, 숙모까지 함께 지내는 대가족은 교대로 이뻐하며 업어줄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지요
그렇게 업어줄 수 있는 누나, 오빠가 많은 식구들은 한집에서 서로 부대끼고 접촉하며 자라면서 오손도손 우애있게 더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남자 어른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업질 않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는 힘드는 일, 실례가 되는 부탁이라 생각했던 것 같고 아버지는 어려운 일을 해야하는 어른으로 생각하기도 하였지만 일반적으로 체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었고 아버지도 굉장히 이뻐할 경우 업어 주었고 손자 사랑 할아버지는 체면 불구하고 등에 업고 동네에 나가 귀여운 손자를 자랑하기도 했었지요
그때 완고하던 아버지, 할아버지가 업어 주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하였던 사람 아닐까요 ?
우리 식구 뿐만 아니라 동네의 가까운 친척 애기도 업어 주기도 했습니다
나도 어린시절 그때 큰집 조카 유진, 경진이를 무척 귀여워 하며 학교에 갔다오면 달려가 업어 주곤 했었습니다
내등에 업히기를 그렇게나 좋아하던 녀석들도 점점 크면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나중에 가서는 언제 그랬었냐는 듯한 태도 였습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도 그런 느낌을 받은 사람이 아마 더러 있을 것으로 생각 듭니다
배신의 느낌 같기도 하고 . . ㅎㅎ
개구리가 올챙이적 시절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진실인 것 같습니다 !
귀여운 어린 아기를 업고 있다보면 등짝이 조금 뜨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기저귀를 채워 조심스레 업긴 했지만 오줌을 절푸덕 많이 싸서 새어 나와 등에 입은 옷까지 젖을 때가 가끔 있었지요
조금 커서 기저귀를 안 채웠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 .
어부바 하는 일에는 그런 희생을 얼마간 감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땐 하얀 천 기저귀를 사용하였었는데 어린이 키우는 집에서는 빨아서 다시 사용해야 했으므로 빨랫줄에 하얀 기저귀가 여러개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이곳 저곳 그런 풍경을 보는 것이 일상적일 때였습니다
그 많던 기저귀 말리던 모습들도 1회용 기저귀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슬금 슬금 안보이더니 이젠 아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아기 업던 포대기도 여러가지 업기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기를 앞으로 업더군요
그렇게 하여 코 앞의 애기 모습을 볼수있고, 조금 크면 아기도 앞을 함께 바라볼 수도 있게 되는데 그것이 포대기 대거나 등으로만 업어주던 시절에 젖어있던 나로서는 세대 차이인지 한동안 불안하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보이더군요
최근에는 업어주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유모차가 다가오면 아기가 자리에서 예쁘게 평안히 자고 있겠지 하고 기대하며 바라보면 그 자리에 강아지가 앉아있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되는데 . .
'아니 ! 인간과 강아지를 동급으로 취급하는것 아닌가 ?' 생각되면서 못 마땅하지만 눈살을 찌푸릴 수도 없고 아무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세대인것 같습니다
그때 자장가 들으며 등에서 업혀서 컸던 기억을 할 수 없듯이 많이 달라진 세상에서 요새 사람들은 대부분 '어부바'라는 단어 조차 모를 것입니다
요즘에는 맛벌이 가정이 많아서 옛날과 다르게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바쁜 아빠, 엄마를 제치고 귀여운 손자들에게 사랑을 흠뻑 담아 어르면서 또 어부바를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풍진 세상에 가장 행복한 것은 안아주는 엄마의 품에서 세상 모르고 잠을 곤히 자고있는 아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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