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농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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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들 가운데 실제 본격적인 농삿일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시절 농사라는 것은 지게를 지어 필요한 충분한 짐을 나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논농사, 밭농사이던 수확물은 전부 집으로 가져와야만 했었고 농사에 필요한 씨를 포함 거름(퇴비) 등은 모두 지게를 이용하여 나르지 않으면 안되는 게 그 당시 농촌상황 이었었지 !
물론 소구루마가 있으면 조금 느리지만 오늘의 자동차 한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맞먹는다고 생각되나 그런 집은 많지 않았고, 또 소를 보유하려면 꼴을 베고 여물을 위해 소죽을 끓이고 소를 부리는 등의 일이 많아 전담사가 있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우리집도 작은 논과 밭의 일을 모두 아버지의 어깨로 지어 날랐다
나도 원래 약골이었지만 커가며 역할을 해야해서 지게를 지기 시작했다
처음 짐을 실은 지게를 짐을 지고서 일어서지 못했었다
다음에는 무릎에 힘을 불끈주고 포도시 일어 났으나 한 두발자국을 옮기다 지게와 함께 자빠져 버렸다
그 다음 단계는 남들이 쉽게 지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나락지게가 그렇게 어깨뼈를 바수듯이 아프게하고 힘이 들줄은 미쳐 몰랐었다
짐지게를 지면 처음에는 가볍게 느껴지지만 점점 갈수록 어깨가 아프기도 하지만 힘이 들었고 물컹한 논바닥에서 부터 좁고 단단하지 못하여 무너질 수 있는 기다란 논둑을 밟으며 가다가 작은 철교를 거쳐 자갈이 깔린 도로를 따라가다 부용방죽 수문옆을 지나 오르막이길인 신작로를 가로질러 집까지 벤 나락을 짊어지고 가다가 쉬고 조금 더 가다가 쉬고 몇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작은 수로에 있는 철다리였었지만 건너 갈 때는 철로의 침목을 하나 둘씩 밟으며 밑에 흐르는 개울을 보면서 한발한발 떼어 놓기가 무척 아려웠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혼자서 하던 일을 고3 무렵 나도 쬐금 도움이 되기 위해 논에 베어놓은 나락을 지게로 지어 집으로 날랐다
볏가리로 일단 쌓아놓으면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마당에 멍석을 깔고 홀테를 설치한다
남자들은 볏가리에서 볏단을 내려 홀테옆에 쌓아 놓으면 어머니와 누나들은 마치 머리빗처럼 생긴 홀테 아랫부위에 볏나락 윗부분 알갱이 있는 부분을 집어넣고 힘차게 잡아당겨 훓터서 벼 낫알만 떨어 뜨리고 남은 짚풀을 옆에 내려 놓으면 우리는 그 짚을 다발로 묶어 한쪽에 쌓고 볏알곡 위에 있는 검불을 갈퀴로 긁어 모으고 다시 나락을 홀테옆에 쌓아주고 . .
그러면 멍석위에는 벼 알갱이만 모이게 되고 그것을 가마니에 담아 한쪽에 놓으면 된다
나중에 햇볕 좋은 날 멍석을 깔고 나락을 말려 습기를 제거하고 작은 방에 보관하다가 다음 언제든지 필요할 때 방앗간에 내다 찌으면 맛있는 햇밥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한해의 논농사는 수확이 끝나고 마무리 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라는 말이 있듯이 그야말로 지푸라기는 쉽게 끊어져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약하고 별볼일 없는 끈같은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쓸모없게 보이는 지푸라기를 이용하여 많은 것을 만들어 사용했었다
집풀로 만드는 것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마니는 쌀, 보리, 밀, 고구마, 콩도 담아 보관하고 이동하는데 사용하였으며 만능, 다용도였다
그리고 구루마에 짐 실을때, 지붕 엮을 때, 콩, 깻대를 묶을때 묶는 끈 등으로 여러곳에 사용되던 사내끼를 만들고
2~3년마다 이엉하는 초가집 지붕의 용머리부터 담, 닭장, 헛간 지붕을 이는 재료로 이용되고
부억 칸막이 및 흑벽 비바람 막이, 울타리 등에 사용되는 거적대기를 만들고
여름철 더울 때 마당에 깔고 수제비를 먹을 수 있고 또 나락을 훓을때 바닥에 까는 멍석을 짜고,
풀이나 꼴을 베러 다닐 때 어깨에 메고 다니며 담는 꼴망태를 만들고
쓰레기, 재를 담아내는 삼태기를 만들고
지게 끈 맬빵을 엮어 만들고
바구니를 짜고
상여 나갈때 상주들이 신는 짚신을 만들고
(옛날에는 짚신을 많이 신었다고 하나 어릴때는 고무신이 나와 짚신은 신은적이 없음)
닭이 알을 품는 둥우리, 달걀을 들고 다닐 수 있는 달걀꾸러미를 만들고
그리고 부억 아궁이 불때는 땔감으로 . .
어린시절 농사라는 것은 지게를 지어 필요한 충분한 짐을 나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논농사, 밭농사이던 수확물은 전부 집으로 가져와야만 했었고 농사에 필요한 씨를 포함 거름(퇴비) 등은 모두 지게를 이용하여 나르지 않으면 안되는 게 그 당시 농촌상황 이었었지 !
물론 소구루마가 있으면 조금 느리지만 오늘의 자동차 한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맞먹는다고 생각되나 그런 집은 많지 않았고, 또 소를 보유하려면 꼴을 베고 여물을 위해 소죽을 끓이고 소를 부리는 등의 일이 많아 전담사가 있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우리집도 작은 논과 밭의 일을 모두 아버지의 어깨로 지어 날랐다
나도 원래 약골이었지만 커가며 역할을 해야해서 지게를 지기 시작했다
처음 짐을 실은 지게를 짐을 지고서 일어서지 못했었다
다음에는 무릎에 힘을 불끈주고 포도시 일어 났으나 한 두발자국을 옮기다 지게와 함께 자빠져 버렸다
그 다음 단계는 남들이 쉽게 지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나락지게가 그렇게 어깨뼈를 바수듯이 아프게하고 힘이 들줄은 미쳐 몰랐었다
짐지게를 지면 처음에는 가볍게 느껴지지만 점점 갈수록 어깨가 아프기도 하지만 힘이 들었고 물컹한 논바닥에서 부터 좁고 단단하지 못하여 무너질 수 있는 기다란 논둑을 밟으며 가다가 작은 철교를 거쳐 자갈이 깔린 도로를 따라가다 부용방죽 수문옆을 지나 오르막이길인 신작로를 가로질러 집까지 벤 나락을 짊어지고 가다가 쉬고 조금 더 가다가 쉬고 몇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작은 수로에 있는 철다리였었지만 건너 갈 때는 철로의 침목을 하나 둘씩 밟으며 밑에 흐르는 개울을 보면서 한발한발 떼어 놓기가 무척 아려웠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혼자서 하던 일을 고3 무렵 나도 쬐금 도움이 되기 위해 논에 베어놓은 나락을 지게로 지어 집으로 날랐다
볏가리로 일단 쌓아놓으면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마당에 멍석을 깔고 홀테를 설치한다
남자들은 볏가리에서 볏단을 내려 홀테옆에 쌓아 놓으면 어머니와 누나들은 마치 머리빗처럼 생긴 홀테 아랫부위에 볏나락 윗부분 알갱이 있는 부분을 집어넣고 힘차게 잡아당겨 훓터서 벼 낫알만 떨어 뜨리고 남은 짚풀을 옆에 내려 놓으면 우리는 그 짚을 다발로 묶어 한쪽에 쌓고 볏알곡 위에 있는 검불을 갈퀴로 긁어 모으고 다시 나락을 홀테옆에 쌓아주고 . .
그러면 멍석위에는 벼 알갱이만 모이게 되고 그것을 가마니에 담아 한쪽에 놓으면 된다
나중에 햇볕 좋은 날 멍석을 깔고 나락을 말려 습기를 제거하고 작은 방에 보관하다가 다음 언제든지 필요할 때 방앗간에 내다 찌으면 맛있는 햇밥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한해의 논농사는 수확이 끝나고 마무리 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라는 말이 있듯이 그야말로 지푸라기는 쉽게 끊어져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약하고 별볼일 없는 끈같은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쓸모없게 보이는 지푸라기를 이용하여 많은 것을 만들어 사용했었다
집풀로 만드는 것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마니는 쌀, 보리, 밀, 고구마, 콩도 담아 보관하고 이동하는데 사용하였으며 만능, 다용도였다
그리고 구루마에 짐 실을때, 지붕 엮을 때, 콩, 깻대를 묶을때 묶는 끈 등으로 여러곳에 사용되던 사내끼를 만들고
2~3년마다 이엉하는 초가집 지붕의 용머리부터 담, 닭장, 헛간 지붕을 이는 재료로 이용되고
부억 칸막이 및 흑벽 비바람 막이, 울타리 등에 사용되는 거적대기를 만들고
여름철 더울 때 마당에 깔고 수제비를 먹을 수 있고 또 나락을 훓을때 바닥에 까는 멍석을 짜고,
풀이나 꼴을 베러 다닐 때 어깨에 메고 다니며 담는 꼴망태를 만들고
쓰레기, 재를 담아내는 삼태기를 만들고
지게 끈 맬빵을 엮어 만들고
바구니를 짜고
상여 나갈때 상주들이 신는 짚신을 만들고
(옛날에는 짚신을 많이 신었다고 하나 어릴때는 고무신이 나와 짚신은 신은적이 없음)
닭이 알을 품는 둥우리, 달걀을 들고 다닐 수 있는 달걀꾸러미를 만들고
그리고 부억 아궁이 불때는 땔감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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