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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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느질
내 양말 빵꾸 났네 !
빵구 난 내 양말 ~
빵구가 아닌 것은
내 양말 아니지 ! . . . ♪
요즘 양말은 질겨서 닳아지지 않고 빵구도 잘 안나지만 빵구 나면 그냥 버리고 있으며, 버릴수 밖에 없는 빵구난 양말을 내 양말이라고 주장하였으니 그야말로 우리들의 시대를 상징하며 그때를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릴때 우리들이 신던 양말은 쉽게 닳고 빵꾸가 났다
조그만 구멍이 나도 그냥 신고 다니기도 하였으며 벗어 놓으면 다른 사람이 잘못하여 가져 갈수 있으므로 구멍 난 것이 내것이라는 것을 자랑 내지 강조한 것이며 또한 버리지 않고 꿰매 주면 당연히 다시 신고 다니는 시대였으니 어머니의 꿰메 주는 정성이 포함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땐 새 양말도 신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발 뒤꿈치가 쉽게 잘 떨어지고 구멍 나서 발고락이 슬며시 삐져 나오기도 했는데 그러면 어머니는 의례 반지그릇(반딛고리)을 찾아 쬐그만 바늘 귀에 실을 뀌어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바늘로 양말을 꿰매 줬다
빵구난 양말을 그냥 내버리고 새 양말을 신는다는 것은 그땐 부잣집에서도 있지 않는 일이며 늘 입는 옷도 마찬가지로 쉽게 닳고 찢어졌었다
어렸던 우리들은 학교에서 신나게 미끄럼 타고, 집에 오면 책보를 던져 놓고 동네에 나가 놀다가 어둑 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 왔는데 흙바닥에서 놀며 친구들과 몸싸움 하다 보면 입었던 옷이 닳고 찢어지며 견뎌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땐 옷의 재질이 지금보다 훨씬 약했던 것 같다
밤에 어머니는 등잔 옆에 앉아 등잔 불빛으로 그런 양말과 내 옷을 꿰매어 주었는데 어머니에게 반지 그릇은 매우 유용하였다
항상 농 옆에 놔두며 얇은 대나무살 여러 개로 예쁘게 만든 반지 그릇에는 옷을 복구, 수선할 수 있는 실 감아 놓은 실패와 가위, 바늘 꽂이, 골무, 잘 모아서 감아 놓은 헝겊 등이 들어 있었다
예로 부터 여자들에게는 바느질이 필수여서 우리 어머니와 누나들도 바느질을 잘 했다
그도 그럴것이 재봉틀이란 기계가 들어 오기 전에 모래밭에 떨어 지면 찾지도 못하는 작은 바늘로 바느질하여 우리가 입고 다니는 모든 옷들과 덮는 이불까지 만들고 대대로 살아 왔으니까
어릴 때 저고리 옷고름 달기, 이불 꿰매기 등으로 바느질을 옆에서 늘 보아 왔으며 내 옷의 실밥이 타지거나 찢어진 옷을 꿰매어 주었다
팔꿈치와 바지의 무릎은 놀다 보면 쉽게 닳아서 찢어지면 겨울 내복 입은 것도 밖으로 들어나기 때문에 닳은 곳을 최대한 감추고 꿰멘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안에다 덧 대서 기워 주었다
그러나 다 닳아 구멍이 크게 난 무릎과 팔꿈치는 최대한 입고 있는 옷과 같은 색깔, 비슷한 무늬의 헝겁을 찾아서 꿰매 주면 하는 수 없이 입고 다녔으며 창피해 하고 새로 사달라고 졸랐었다
그때 동냥아치가 많기도 했고 그런 거지 모습을 그린 모습은 언제나 옷 여기 저기에 네모난 헝겊을 기운 그림으로 묘사 되어서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큰 바늘로 찢어진 내 고무신도 꿰매 주었다
그런데 언젠가 집에 재봉틀이 들어 왔다
누나가 먼저 사용하고 나중에 어머니도 점차 익숙하게 되어 바지 무릎을 꿰맬 때도 재봉틀로 드르륵 하며 밀고 있는데 그것 참 빠르고 편리한 것 같지만 옷을 단지 수선하기 위한 것으로 쉬운 바느질을 대신하지 못하였다
옆에서 보기만 하다가 나중에 나도 실패의 실을 바늘까지 차례로 꿰어 넣은 뒤 작은 실패도 넣고, 발의 페달로 돌리는 둥글채 줄을 감고 두 발로 앞뒤로 누루면 재봉틀이 달달 돌아가며 빠르게 내옷이 꿰매진다
드르륵 하며 잘 꿰매지긴 하지만 아무래도 마무리는 손으로 해야 하고 찬찬하게 정성이 들어가며 꿰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는 옷이 귀하여 떨어지면 꿰매서 입었으며 옷이 다 닳아서 너덜너덜할 때까지 입었고, 다 입고 나서도 옷을 버리지 못하고 보들보들한 속옷과 내복은 깨끗하게 빨아 행주로 사용하고 조금 뻣뻣했던 바지도 마루를 닦는 걸레로 이용하였다
조금 커서는 어렸을 때와 같이 무릎 꿇고 심한 장난하는 것이 점차 줄어 들었으며 무릎에 닳는 표시가 잘 나는 주름 많은 고랫동 바지를 입으면 되도록 놀 때도 조심 조심하며 얌전히 놀아야 했다
그런데 팔꿈치 자리를 헝겊으로 겉에 드러나게 덧대어 나오는 신사복 옷을 보고서 속으로 혼자 깜짝 놀랐다
다림질하며 주름도 없이 깔끔하게 넥타이까지 차는 신사가 그런 모습을 . .
조금 더 크게 된 다음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입고, 입어도 옛날처럼 무릎과 엉덩이가 닳거나 떯어지지 않아 싫증나서 그냥 버리는 것 같으며 아파트 헌옷 수거함이 차고도 넘친다
그래선지 어머니의 정성이 뭍어있는 꼬매 준 양말을 심어 보고 싶다는 말도 이제 다시 나오는 것 같다
눈이 내려 미끄러지는 언덕 길을 어른들은 엉금엉금 조심스레 다니지만, 철없이 엉덩이가 닳은 옷으로 미끄럼 타다가 찢어진 동네 개구장이인 아들의 바지를 실에 입에 들은 침을 묻혀 등잔불에 가까이 비추어 가며 바늘 귀를 뀌어서 헝겊을 대어 놓고 촘촘하게 꿰매 주시던 어머니 . .
사랑하는 자식의 옷을 등잔불 옆에서 정성을 들여 손수 바느질하고 빨아 주시던 우리들의 위대한 어머니 손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다시는 그런 모습도 볼수 없게 된 세상으로 변한 것 같다
내 양말 빵꾸 났네 !
빵구 난 내 양말 ~
빵구가 아닌 것은
내 양말 아니지 ! . . . ♪
요즘 양말은 질겨서 닳아지지 않고 빵구도 잘 안나지만 빵구 나면 그냥 버리고 있으며, 버릴수 밖에 없는 빵구난 양말을 내 양말이라고 주장하였으니 그야말로 우리들의 시대를 상징하며 그때를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릴때 우리들이 신던 양말은 쉽게 닳고 빵꾸가 났다
조그만 구멍이 나도 그냥 신고 다니기도 하였으며 벗어 놓으면 다른 사람이 잘못하여 가져 갈수 있으므로 구멍 난 것이 내것이라는 것을 자랑 내지 강조한 것이며 또한 버리지 않고 꿰매 주면 당연히 다시 신고 다니는 시대였으니 어머니의 꿰메 주는 정성이 포함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땐 새 양말도 신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발 뒤꿈치가 쉽게 잘 떨어지고 구멍 나서 발고락이 슬며시 삐져 나오기도 했는데 그러면 어머니는 의례 반지그릇(반딛고리)을 찾아 쬐그만 바늘 귀에 실을 뀌어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바늘로 양말을 꿰매 줬다
빵구난 양말을 그냥 내버리고 새 양말을 신는다는 것은 그땐 부잣집에서도 있지 않는 일이며 늘 입는 옷도 마찬가지로 쉽게 닳고 찢어졌었다
어렸던 우리들은 학교에서 신나게 미끄럼 타고, 집에 오면 책보를 던져 놓고 동네에 나가 놀다가 어둑 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 왔는데 흙바닥에서 놀며 친구들과 몸싸움 하다 보면 입었던 옷이 닳고 찢어지며 견뎌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땐 옷의 재질이 지금보다 훨씬 약했던 것 같다
밤에 어머니는 등잔 옆에 앉아 등잔 불빛으로 그런 양말과 내 옷을 꿰매어 주었는데 어머니에게 반지 그릇은 매우 유용하였다
항상 농 옆에 놔두며 얇은 대나무살 여러 개로 예쁘게 만든 반지 그릇에는 옷을 복구, 수선할 수 있는 실 감아 놓은 실패와 가위, 바늘 꽂이, 골무, 잘 모아서 감아 놓은 헝겊 등이 들어 있었다
예로 부터 여자들에게는 바느질이 필수여서 우리 어머니와 누나들도 바느질을 잘 했다
그도 그럴것이 재봉틀이란 기계가 들어 오기 전에 모래밭에 떨어 지면 찾지도 못하는 작은 바늘로 바느질하여 우리가 입고 다니는 모든 옷들과 덮는 이불까지 만들고 대대로 살아 왔으니까
어릴 때 저고리 옷고름 달기, 이불 꿰매기 등으로 바느질을 옆에서 늘 보아 왔으며 내 옷의 실밥이 타지거나 찢어진 옷을 꿰매어 주었다
팔꿈치와 바지의 무릎은 놀다 보면 쉽게 닳아서 찢어지면 겨울 내복 입은 것도 밖으로 들어나기 때문에 닳은 곳을 최대한 감추고 꿰멘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안에다 덧 대서 기워 주었다
그러나 다 닳아 구멍이 크게 난 무릎과 팔꿈치는 최대한 입고 있는 옷과 같은 색깔, 비슷한 무늬의 헝겁을 찾아서 꿰매 주면 하는 수 없이 입고 다녔으며 창피해 하고 새로 사달라고 졸랐었다
그때 동냥아치가 많기도 했고 그런 거지 모습을 그린 모습은 언제나 옷 여기 저기에 네모난 헝겊을 기운 그림으로 묘사 되어서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큰 바늘로 찢어진 내 고무신도 꿰매 주었다
그런데 언젠가 집에 재봉틀이 들어 왔다
누나가 먼저 사용하고 나중에 어머니도 점차 익숙하게 되어 바지 무릎을 꿰맬 때도 재봉틀로 드르륵 하며 밀고 있는데 그것 참 빠르고 편리한 것 같지만 옷을 단지 수선하기 위한 것으로 쉬운 바느질을 대신하지 못하였다
옆에서 보기만 하다가 나중에 나도 실패의 실을 바늘까지 차례로 꿰어 넣은 뒤 작은 실패도 넣고, 발의 페달로 돌리는 둥글채 줄을 감고 두 발로 앞뒤로 누루면 재봉틀이 달달 돌아가며 빠르게 내옷이 꿰매진다
드르륵 하며 잘 꿰매지긴 하지만 아무래도 마무리는 손으로 해야 하고 찬찬하게 정성이 들어가며 꿰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는 옷이 귀하여 떨어지면 꿰매서 입었으며 옷이 다 닳아서 너덜너덜할 때까지 입었고, 다 입고 나서도 옷을 버리지 못하고 보들보들한 속옷과 내복은 깨끗하게 빨아 행주로 사용하고 조금 뻣뻣했던 바지도 마루를 닦는 걸레로 이용하였다
조금 커서는 어렸을 때와 같이 무릎 꿇고 심한 장난하는 것이 점차 줄어 들었으며 무릎에 닳는 표시가 잘 나는 주름 많은 고랫동 바지를 입으면 되도록 놀 때도 조심 조심하며 얌전히 놀아야 했다
그런데 팔꿈치 자리를 헝겊으로 겉에 드러나게 덧대어 나오는 신사복 옷을 보고서 속으로 혼자 깜짝 놀랐다
다림질하며 주름도 없이 깔끔하게 넥타이까지 차는 신사가 그런 모습을 . .
조금 더 크게 된 다음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입고, 입어도 옛날처럼 무릎과 엉덩이가 닳거나 떯어지지 않아 싫증나서 그냥 버리는 것 같으며 아파트 헌옷 수거함이 차고도 넘친다
그래선지 어머니의 정성이 뭍어있는 꼬매 준 양말을 심어 보고 싶다는 말도 이제 다시 나오는 것 같다
눈이 내려 미끄러지는 언덕 길을 어른들은 엉금엉금 조심스레 다니지만, 철없이 엉덩이가 닳은 옷으로 미끄럼 타다가 찢어진 동네 개구장이인 아들의 바지를 실에 입에 들은 침을 묻혀 등잔불에 가까이 비추어 가며 바늘 귀를 뀌어서 헝겊을 대어 놓고 촘촘하게 꿰매 주시던 어머니 . .
사랑하는 자식의 옷을 등잔불 옆에서 정성을 들여 손수 바느질하고 빨아 주시던 우리들의 위대한 어머니 손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다시는 그런 모습도 볼수 없게 된 세상으로 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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