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 부용으로 추억여행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부용으로 추억여행

놀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09회 작성일 20-07-18 16:55

본문

<놀자>
어릴때 TV, 게임기 등 가전기기가 없어 이를 이용하는 시간이 소요되지 않기 때문에 그 많은 남는 시간을 심심하게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친구들과 함께하는 각종 놀이에 열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혼자 놀 수있는 게임이란 별로 없었고 또 설사 있다 하여도 무슨 재미로 혼자하지 ? !!
결국 그러한 놀이를 통하여 누군가와 부디치고 비교하고 실갱이하며 때로는 잘 한것을 뻐기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는 지기도 하고 잃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 않겠는가 ?

생각해보면 어릴때의 놀이 종류가 상당히 많았었다고 생각한다
자치기, 제기차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연날리기, 숨바꼭질, 술래잡기, 말 * 박기, 팽이치기, 망우리, 얼음지치기, 헤엄치기. 땅따먹기, 쌈치기, 굴렁쇠 돌리기, 새잡기(새총으로) 잠자리 잡기, 개구리잡기, 삐비뽑기 등

여자들은 소꿉놀이,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오재미 등이 있었는데 그게 다 우리들의 옛 추억으로 아직 남아 있으나 조금 지나면 잊혀진 채 그냥 사라져 없어져 버릴것 같아 몹시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음세대인 60, 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아마 우리 어렸을 적 놀이와 모습이 변하고 80년대 이후 우리 아들 딸세대에는 새로운 정보통신 매체에 파뭍혀 옛날 그런게 있었느냐 그게 무엇 이었느냐고 질문하고 있으며 전혀 다른 세계 삶을 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곧 우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추억이란 것이며 이를 우리가 느꼈던 느낌 만큼을 체계적으로 서술해 놓은 책 같은게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자치기가 떠 오른다
자치기는 나무를 잘라놓은 직경 3~4cm 길이 30~40cm 작은 몽둥이를 잡고 땅에 있는 작은 막대기 한쪽을 쳐서 튀어 오르는 찰라 야구공 치듯이 멀리 때려 보내는 게임이지 !

땅에 있던 약 15cm 크기의 봉은 양쪽 다 끝부분을 비스듬하게 깍아 놓았기 때문에 자로 비스듬히 깍힌 곳 위를 치면 튀어 오르게 되어있고 그 순간을 센스있게 쳐야 멀리 나가게 되어있고 그것을 상대편이 잡으러 가는 사이에 루를 향해 달렸으며 생각해 보니 야구와 거의 같은 원리였였다

제기차기는 한발로 제기를 차는 일종의 묘기자랑인데 제기를 차며 숫자를 세었었고 많이 잘 찬다고 서로들 자랑하는데 열을 올리고 제기를 따고 잃기도 했었다

제기를 잘 차려면 신발도 좋아야 하고 체기가 발가락과 복상씨 사이에 정확히 수평하게 맞혀야 하는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않으면 안되었었으며 그것을 위해 부단히 노력들을 했었지

제기를 만들려면 종이와 구멍이 뚫린 동전(지금의 볼트 너트에 넣는 넙적한 와샤와 똑같다) 이 필요하여 어린 나이에 그런 것을 찾으려는 생각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돈에 구멍을 뚤기도 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나는 우리집에 있던 일제시대 사용하던 작은 구멍뚫린 1전짜리 동전을 저것이 구멍이 조금만 컸으면 하고 쓸데없는 생각에 젖기도 하였었다

구슬놀이는 여러가지가 있었으며
하나는 땅바닥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구멍을 파고 왼손 껭끼손가락은 시작점에 집고 오른손 껭끼 손가락을 왼손 엄지와 깍지낀 채 구슬을 검지와 중지에 넣어 튕기어 구슬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구멍에 넣는 것이다.
못 넣으면 다른사람 한테 차례가 넘어갔다

두번째는 동그라미를 그려 구슬을 넣고 조금 먼곳에 금을 그은 위치에서 구슬을 맞추어 금 바끄로 내보내어 따먹는 것으로
구슬은 점방에서 파는 유리 구슬이었으며 그밖에 큰 구슬이나 쇠구슬은 힘이 있어 유리하고 인기가 있었다

쇠구슬은 보통 기계의 볼베어링 분해시 나오는 것이나 다들 어떻게 입수했는지 알수가 없으며 자전거포를 가봐도 큰 쇠구슬은 볼수가 없었다
쇠구슬 만 있으면 구슬을 맞춰서 따먹는 것은 쉬웠었지요

또 구슬은 쌈치기의 도구이기도 하여 눈치 채지 못하게 주먹에 한웅큼 쥐면 아찌, 니, 쌈의 현재 갯수의 배수로 맞추면 걸은 만큼 가져가는 것으로 어떤 애들은 학교에서도 주머니가 구슬로 가득하여 공부시간에도 주머니에서 땡그렁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다음은 딱지치기로 두가지 종류를 들 수있다
우리들은 꼬빼치기라고 부른 즉 책, 공책을 뜯어 접어서 오른손으로 땅에 힘껏 내리쳣을 때 땅에 있던 상대방의 딱지가 뒤집히면 먹는 방식이다
즉 내리칠 때 힘있는 바람을 잃키고 놓여진 상대방 패가 바닥부분에 틈이 있는 쪽을 공격하면 쉽게 그 패를 딸 수 있었다

그땐 화장지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책이나 공책을 뜯어 항문을 닦았었는데 꼬페를 많이 따서 변소에 갔다놓고 이용하기도 했었지
그러나 책표지로 만든 코페는 딱지 치는데 매우 유리하기는 하나 변소에서는 두꺼워 밑 닦는데 쓸모가 없었다

또 하나의 혼동이 되는 꼬페는 점방에서 파는 일종의 퍼즐 그림으로 그것을 오려 위에 언급한 것 같이 내려 쳐 뒤집히는 패를 따거나 대포가 이기냐 아냐 탱크가 이긴다 등 입씨름한 적이 있으며 그때 병장, 소위, 준위 등 군대 계급에 익숙하게 되었었다

연날리기는 주로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에 했었지
그래야 바람을 타고 멀리 올라갈 수 있으며 논, 밭농사로 인한 연놀이 방해요소가 없어지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다른 놀이와 달리 혼자 할 수 있었으며 하늘 높이 올라간 연을 다른 사람한테 자랑할 수도 있었다
추운 겨울에는 연을 띄워놓고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연을  햇볕이 있는 따뜻한 양지에서 뒷벽이 있어 부는 찬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 기대어 즐기는 연날리기이다

방패연은 만들기 쉽지않고 주로 수리미(오징어) 연을 만들었는데 수리미연은 꼬랑지를 붙여야 중심을 잡고 연이 잘 올라가며 꼬리 길이를 알맞게 조정했었다
연은 가벼운 종이 주로 방문에 바르는 창호지 같은 한지에 대나무 겉부위를 얇게하여 자른것을 팽팽하게 배치하고 중심을 잘 잡게끔 실 거는 위치를 조정하여 달았었다

연실은 어머니 바느질 그릇에서 가져다 사용하였는데 그에 대한 어머니의 불평을 잘 설득하는 것도 문제였었다
그때는 연실이 두껍고 가벼우면서도 질겨서 절대로 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늘 높이 올라간 연이 바람을 받아 연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다가 끊어져 버리면 그 연을 찾으려고 이옷 동네까지 가는 때도 있었고
연은 바람 부는대로 움직여 높은 나무나 전선줄에 걸리면 다시 연 만들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연실을 감고 푸는 연자세가 있으면 좋으련만 없으면 그냥 어머니가 쓰던 실타래를 그냥 쓰기도 했었지

방패연은 꼬리를 붇히지 않는게 기본이었으며 더 높이 올라가기 때문에 좋았었다
어릴때 딱 한번 아버지가 방패연을 만들어 줬었는데 그때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으며 그연을 바로 학교 가는 쪽 작은 부대의 바람이 잘 타는 곳에 높이 띄웠었지
그런데 연이 중심을 잘 못잡아 꼬리를 붙히려고 하고 있는데 집에 키우던 강아지가 밟아 연에 구멍을 내버렸지 뭐야 !
어찌나 속상하던지 철없는 강아지를 때릴 수도 없고 그냥 나무라기만 . . 참 . .

숨바꼭질은 요즘에도 모습이 유사하다
다만 어렸을 때 숨기 위한 시간을 열, 스물 등 숫자를 세었었는데 얼마 후부터 말도 안되게 그냥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로 대신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라는 생각이다
숨은 사람을 못찾아 찾고 있는 사이에 숨은 사람이 나와 원래 있던 곳을 터치하면 이미 들켜서 죽은 사람을 살리곤 했지

술래잡기는 숨바꼭질을 일컫기도하나 내생각은 둥글게 여러명이 앉아있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극 돌다가 오재미나 수건 같은 것을 살짝놓고 지나가면 자기 뒤에 놓여진 것을 눈치채고 그것을 잡고 술래가 되어 이어 돌게 되는데  원래의 술래가 한바퀴 돌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앉아 있으면 걸리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말타기 같이 주인한테 여러명이 이어 엎드려 달려 있다가 술래가 잡으려고 하면 잡히지 않을려고 이리저리 달린 채로 피하는 놀이인데
그 이름이나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는 잘 기억이 안나고 희미하기도 하다

말 * 박기는 주로 남자들만 하던 것으로 벽에 기대선 주인 다리사이로 계속 머리를 이어박아 말형태를 만들면 조금 멀리서 뛰어 올라타서 주인 있는 곳까지 가서 가위 바위 보로 올라타는 사람과 말이 서로 교대하게 된다
여자들은 그 모습이 우수꽝스러워 낄낄대며 구경을 하였었지

팽이돌리기 또한 혼자서 할 수있는 놀이로 팽이는 아래에 박히는 쇠구슬과 팽이 자체와 함께 채찍질 하는 기술에 따라 잘 돌고 오래 돌며 서로의 도는 팽이를 부딛혀 튕겨나가던지 나가 떨어지는게 자랑으로 여겼었지
또한 겨울철 얼음 위에는 미끄럽기 떄문에 잘 돌기는 하나 춥고 미끄러워 중심을 잘 잡고 오래 도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었다

혼자는 재미없어 친구들과 돌리는 즐거움을 친구들과 공유했었다고 생각난다

겨울철 설이 지난뒤 대보름 근방에 다들 논 엉턱(언덕)에서 파여진 곳에 나무들을 가져다 불을 피우기도 하고 집에서 깡통에 줄을 매달아 아예 나무를 넣어와 솔방을 등에 불을 붙여 깡통을 돌리먼 깡통에 불이 붙으며 이때 '망우리야' 하면서 뜻도 모르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즉 불장난이면서 논두렁에 난 마른 풀에 불을 붙이고 따뜻해지라고 손을 쬐면서 친구들과 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떤 친구는 바지 가랭이에 불이 붙어  후다닥 뒹글기도 하고 또는 불똥이 튀어 비싼 옷에 작은 구멍이 나기도 해서 집에서 혼나기도 하고 . .

오늘날은 얼음지치기라고 하나 우리들은 그냥 스케이트 타기로 불렀다
겨울이 되어 방죽이 꽁꽁 얼면 너도나도 나와 달려와 발로 미그럼을 타기도 하고
발 크기의 나무판 아래에 'T' 자로 만들고 거기에 철사를 길이 방향으로 고정시겨 마치 오늘날 가죽신이  붙어있는 스케이트와 같이 만들어 한발로 얼마나 중심을 잘 잡고 멀리 갈 수 있냐를 자량하는 놀이이었다

다른 하나는 조금 더 넓은 나무판 아래 양쪽에 'ㅠ'자 모양에 미끌어질 수 있게  두꺼운 철사를 길이 방향으로 고정하여  앉아서 타며 양쪽에 나무봉에 못을 뾰쪽하게 박아 얼음을 뒷방향을 찍으며 앞으로 나가는 스케이트가 있었다

스케이트는 얼음과 맞닫는 부위 철사의 성질에 의하여 미끄러짐의 성능이 달라져 굵고 반듯한 것을 사용하여야 하며 어떤 친구는 학교 유리창문 아래 궤도에 있는 구부리기도 어려운 철제를 사용한 친구도 있었다

집에서는 물놀이 즉 헤엄치기를 못하게 하였다
이유인즉슨 위험하다는 것인데 여름철에 날도 더운데 친구들과 물장구치고 헤엄치는 그 재미를 막을 수는 없었지

물론 물놀이 후에 집에가서 혼나지 않으려고 얼굴이며 살들을 문질르고 머리를 털어 표시가 나지않게 했지만
지름 생각하면 아마 어머니 아버지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해 주신것 같다

정리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는데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더 기억하여 올리려고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 정보

회사명 : KwangSoo 생각 / 대표 : 최광수
주소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임곡로 123-45
사업자 등록번호 : 123-45-67890

접속자집계

오늘
1,069
어제
411
최대
2,779
전체
226,488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