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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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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작성일 22-09-18 11:37 조회 1,88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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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푸라기
추석에 고향 생각하면서 그 옛날 벼 알갱이를 다 떼어내고 나서 별 쓸모없던 지푸라기를 이용하고 만들어 사용한 것들에 대한 기억들을 주욱 끄집어내 본다
지푸라기는 지푸락 또는 짚으로도 불렀다

그때 우리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홀테를 설치한 뒤 나락을 한 웅큼 붙잡고 홀테 밑으로 넣어 위로 힘껏 잡아 당겼는데 밑으로 떨어지는 나락은 먹는 쌀이 되니 귀한 취급을 받았지만 훑고 나서 뒷쪽에 놓여지는 지푸라기는 홀대를 받았었다 

지푸라기 몇개를 묶는 끈으로 하여 다른 지푸라기들을 다발로 묶은 뒤 집 뒷켠 한쪽에 쌓아 놓았는데, 마당에서 놀던 암닭이 가끔 그 짚눌로 올라가 틈바귀에 몰래 알을 낳아서 오래된 고른 알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푸라기는 '사악 - 삭' 작은 소리를 내며 쉽게 잘 탔기 때문에 밥 짓는 부엌 아궁이에서 많이 소진 되었었다

지푸라기로 2 년 정도에 한번씩 초가지붕을 이었다
초가지붕을 이을 때마다 아버지는 마당에 앉아 지푸라기 몇개를 잡아 다른 지푸라기를 한 웅큼씩 잡고 묶으며 짚나래를 엮었다
마치 펼친 치마처럼 길다랗게 만들어지면 돌돌 말아 세워 놓고 다시금 같은 일을 반복하곤 하였다

다음 지푸라기로 용마루를 짜는데 엮인 부위가 잘 짜놓은 공예품처럼 예쁘면서 볏짚 고유의 누르스름한 고운 빛이 드러나며 윗부위가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지고 그게 길게 늘어지면 마치 용이 땅에서 구부리면서 기어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이제 지붕에 올라가서 그동안 지붕위에 있던 혹한 추위와 여름 한낮 땡볕, 비바람에도 견디면서 희무끄레하고 색깔이 거무스럽게 변한 낡은 지푸락을 걷어냈다
그리고 지붕의 가장자리부터 엮어 놓은 새 나래(이엉)를 길게 펼치고 계속하여 그 위에 조금 겹치게 삥 돌려 깔은 후 맨위에 용마루를 얹었다
용머리는 초가집 지붕 꼭대기에 삼각 모습으로 놓이고, 높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뜨이며 뒷담 위에도 얹혔다
지붕 위를 사내끼(새끼)로 대각선으로 묶고 가장자리 부위도 꼭꼭 동여 매어 처마밑에 고정시키며 다듬어 마감했다
나중에 헛간, 칫간, 돼지막 지붕도 이엉했다

지붕을 새로 이엉하며 걷어낸 지푸락이 우리 것은 비교적 깨끗했지만 어떤 집은 오래되어 지붕에 골이 깊게 파지는 곳도 있었고, 풀이 길다랗게 난 곳도 있었으며, 어떤 곳은 속이 썩어 그 지푸락을 걷어내면 그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굼벵이들이 득실득실한 곳도 있었는데 나중에 그게 보약이 된다고 난리를 피우기도 했었지 ㅎㅎ

지푸라기로 가마니를 짰다
지푸락을 잘 골라 놓고 먼저 가마니 틀과 내려치는 나무공이 구멍에 가느다란 새끼줄로 연결하여 베짜기처럼 세로 줄로 엮어 준비했다
두사람이 한조로 칙 - , 쿵 - 소리를 계속 내며 가마니를 짰었는데 아버지가 주도적으로 내려치는 공이의 손잡이를 잡았고 어머니, 누나, 나중에 나도 교대로 지푸락을 찔러 넣어주는 길다란 잣대를 잡았었다
공이로 내리쳐 누르고 다시 올리면 또 지푸락을 집어 넣고를 반복하면서 가마니를 짰다

오래전부터 시골이나 도시에서도 가마니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우리도 가마니에 쌀이나 나락을 담아서 보관하였고, 다들 가마니에 넣어야 지게로 지거나 구루마로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마니는 쌀, 나락의 수확량을 세는 계산 도구, 쌀 거래의 기본으로 이용 되었으며 그때는 한가마니가 80 kg 였으나 지금은 다양하며 20 kg 단위로 하기도 하지만 . .

지푸라기로 새끼를 꼬았다
짚더미에서 좋은 것을 골라 약간 물을 추긴 뒤 아버지는 마루 한쪽에 앉아서 새끼를 꼬았고 나도 그 앞에서 새끼를 꼰다
손바닥으로 지푸라기를 두줄을 각각 비틀어 꼬으면 새끼가 길게 앞으로 나아가고 새 지푸락을 넣어 꼬면서 길어지면 엉덩이 밑으로 넣어 자꾸 뒤로 보냈었다
새끼를 꼬다보면 손바닥이 말라 붙어 손에 침을 탁탁 뱉으면서 꼬기도 했었는데 나중에는 지푸라기 물이 들어서 그런지 손바닥이 시컴스렇게 물들어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만든 새끼와 가마니는 농협창고에 내어 수매했다

집에서 새끼줄이 많이 필요했다
지게에 논에서 벤 나락을 하늘 높이 실고서 새끼줄로 꼭꼭 잡아 당겨 뒤에다 묶었는데 짊어지고 갈 때 무너지지 않도록 했으며, 시골에서는 새끼가 여러모로 쓸모가 참 많았었다
새끼줄로 박, 호박 모종 옆에 달아 놓으면 자라서 넝쿨손이 새끼줄 감아 잡고 올라 가면서 꽃을 피우고 담에, 탱자나무 위에 둥그런 열매를 만들어 놓았고, 꽃밭에서는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감고 올라가면서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지푸라기로 멍석을 만들었다
아버지 혼자서 마당에 앉아서 짰고 멍석 짜는 것을 그냥 토방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멍석 만들기는 새끼 줄에 지푸락을 힘과 정성을 들여 하나 하나 꼬아 넣어야 하는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였다
학교에 갔다 왔는데도 짜고 있었으며 며칠을 걸렸는지 모른다

멍석은 쬐끔 무거웠지만 나중에 나락 훑을때, 고추, 콩 등 곡식을 말릴때 마당에서 흙 모레가 들어가지 않게 하며 거두기 쉽게 했고, 초상집 마당에서는 으례 깔았고, 우리는 더운 여름에 마당에서 식구들이 모여앉아 시원한 저녁을 먹을 수 있게 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멍석은 많을수록 좋았고 때로는 이웃에 빌려주기도 했으며 헛간이나 집 처마밑에 걸어 놓아 보관하는 농가의 자산이기도 했다

짚으로 삼태미(삼태기)를 짰다
쓰던 것이 오래되어 쓸어담는 바닥이 너덜너덜 해져 새로 짜는 것이다
나무를 구부려 반원의 둥그런 틀에다 지푸라기 한올 한올 돌리고 꼬아서 만들었는데 오늘날 함석이나 플라스틱 제품보다 좀 무겁지만 아궁이에 꽉찬 재를 긁어내어 뒤엄자리에 옮길때, 불때기 위한 맵재를 담아서, 감자 마늘 등을 담아서 나르는데 많이 이용하였으며 마당을 쓸 때도 쓰레받이로 이용했다

또한 짚으로 구럭을 짰다
사용하던 구럭이 구멍나고 헤져 못쓰게 되어 대신 한동안 집에서 물건 나를때 쓰는 대나무 가구를 한손으로 잡고 풀 뜯으러 다녔었는데 지푸락으로 새 구럭을 예쁘게 짜 주어 토끼풀 베러 갈 때마다 어깨에 걸치고 신이나서 다녔다
여름철 풀을 잔뜩 베어 구럭에 담아 끙끙 어깨가 무겁게 짊어지고 토끼한데 가져다 주면 그 녀석들은 풀을 '스걱스걱, 사각사각' 예쁘게 맜있게 먹는다

지푸라기로 달걀 꾸러미를 만들었다
달걀 10 개씩 한줄로 만들어 옮길 때 유용하였는데, 당시 시골에서 달걀은 영양분을 공급하는 귀한 것이나 깨지기 쉬워, 안이 약간 오돌토돌하면서 푹신한 박으로 만든 박바가지나 대나무 가구에 담아서 조심스럽게 옮겼었다
그것도 많이 담으면 위 아래 서로 부딛혀 깨지므로 멀리 이동할 때에는 지푸락으로 만든 여러개의 꾸러미를 큰 대나무 바구니에 넣어 옮기는게 제일 안전했으며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었을 때였다
계란 윗부분이 겉으로 보이게 만들고 하나하나마다 지푸라기 가닥으로 경계를 만들어 서로 부딛히지 않게 하는 지푸락 계란 꾸러미를 만들었었다

또한 지푸락으로 메주를 달아 널때, 생선, 시레기 등을 말릴때 매는 끈으로 사용했는데, 특히 메주는 지푸락으로 달아 매는 것이 효모형성에 유효하다는 것이 증명되어 과학적이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에 그렇게 깊은 뜻이 . .    놀랄만하다

텃밭에 배추, 무우 씨를 뿌리고, 마늘과 파를 심고 햇볕 가리개로 지푸라기를 덮어 놓았고, 겨울에는 무우 배추를 묻어 놓고 눈이 앉지 못하게 하며 보온을 위해 덮개로 이용했다
배추가 포기차라고 지푸락으로 배춧잎 둘레를 묶어 두기도 했다
지푸라기는 재질이 부드러워 농촌에서 몇가닥을 잡아서 보리, 콩다발 등을 묶었었는데 보리나 밀대는 몸체가 뻣뻣하여 쉽게 부러지므로 지푸락을 대신할 수 없었다

지푸라기로 엮어서 달아 부엌의 벽으로 삼고 눈과 비바람을 막았다
겨울에 조금 춥기는 했지만 많은 집에서 지푸락 나래를 엮어 바람막이용 울타리로 하거나 흙벽에 비바람이 맞지 않게 만들어 놓았었다

지푸라기를 꼬아서 대문에 금줄을 설치한 적이 있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고추를, 여자아이는 솔잎이나 숯을 새끼줄에 끼어 넣고 매달아 놓으며 집에 들어오는 것을 삼가하게 했었으나 우리집은 고추와 솔잎, 숯을 모두 달아 놓았으며 그것은 남녀 쌍둥이를 출산하여서 였다

지푸라기는 겨울에 소 키우는 집에서 썰어서 여물에 섞어 주었다
일을 못하는 겨울철에도 엄청 먹어 제끼는 소를 기르기 위해서 소죽을 만드는 가마솥에 지푸라기를 작두로 잘께 썰어 넣었는데 소에게 주는 많은 양의 지푸라기와 함께 소죽을 끓이고 소의 수발을 드는 것이 상당히 많은 일이었던 것 같다

지푸라기 한 가닥은 한손으로도 쉽게 잘 끊어지니 가볍게 생각하나 어려운 극한 상황에 부닥치면 그런 지푸라기라도 희망으로서 붙잡는다는 속담이지만, 지푸라기는 여러가닥으로 꼬며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매번 들어 올려 손에서 닳는 새끼로 만든 두레박 끈이며, 지푸라기로 꼬아만든 지게의 멜빵, 줄다리기 시합을 하는 밧줄이 그 예이다

시골에서 늘 사용하는 지게는 예상보다 튼튼하여 100 kg 이상의 쌀가마 무게를 실을수 있었으며 그것은 결국 지푸라기로 꼬아 만든 끈에 의하여 그 무게가 어른 어깨에 전달되게 되어 있는데 그런 힘을 지푸라기로 짠 멜빵이 감당하는 것이다
또한 지푸라기로 만든 밧줄은 초교 운동회 때나 시골 면 대항 줄다리기 할 때 장정 30 명 이상이 양쪽으로 달라 붙어서 젖먹던 힘을 다해 잡아 다녀도 거뜬하게 견디어 냈었다
나중에 삼 재질이나 다른 것을 섞은 것도 있는 밧줄도 나온것 같은데 그때 사용하던 줄다리기 밧줄은 순수하게 지푸라기로 만들었었다는 잘 아는 아저씨의 증언이다

지푸라기로 여자들이 광주리나 무거운 물동이를 머리에 일때 쓰는 또아리로 만들어 사용하였고, 그때만 해도 상갓집의 상주는 짚으로 꼰 밧줄같은 것을 허리와 머리에 동여 매고, 짚신을 심는 등  그 외에도 농촌에서 지푸라기로 만들어 사용하던 것들을 얼마든지 더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옛날 농촌인 우리 동네에서 요모조모 이용하였던 지푸락 세상이었던 같다

이제 벼를 베면서 탈곡하는 콤바인 뒤로 나오는 지푸라기는 귀찮고 처리가 곤란하여 그냥 팔아 버리거나 사료를 위해 감아 놓거나 논에서 태워 버리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이용하여 왔으며 모두 자연의 산물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지푸라기 제품을 사용하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은 우리세대가 마지막이며 이제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라 생각되어 그 기록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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