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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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작성일 21-12-14 18:44 조회 1,970 댓글 0본문
○ 할아버지 댁
영만 친구의 고향 광할에서의 어린시절 추억 이야기를 읽으며 잊혀져 가는 그 근방에 있던 할아버지댁에서의 기억들이 새록 새록 떠 오른다
친구 글 내용중 성덕면 가실이 나오는데 가실은 진봉 가실이라 불렸으니 거기는 진봉면이며 우리 외할아버지댁이 있던 곳이다
초등학교, 그 때는 방학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 .
다들 학교 가지않는 날을 기다렸겠지만 방학이 되면 나는 가실 외할아버지 댁에 갈 수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외할아버지 댁 가는 길은 기차타고 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언제나 우리를 반가워 하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하는 새로운 세상은 작은 행복이었다
거기 가면 우리 또래의 외삼촌댁 식구들과 만날 수 있고 오랫만에 함께 놀 수 있기에 더욱 기다려졌다
지나 다니는 기차를 늘 바라만 보며 타보지 못한 촌놈이 누나를 따라 드디어 열차타고 김제를 가며 가슴 설레였었다
김제역 앞에 있는 외삼촌과 이모댁을 들러 인사도 잠시 부랴 부랴 읍내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가실가는 버스에 올랐다
정류장에는 갈 때마다 "광활", "광활"하고 큰소리로 외치는데 도대체 거기가 어디지, 광활해서 광활이라 했나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가실로 직접가는 버스가 없을때는 중간의 양수장에 내려서 한참 걸어가기도 했는데 양수장은 친구가 말한 성덕면으로 진봉면 옆이었다
외할아버지 댁은 진봉 가실교회가 있는 동네 버스길 바로 옆 코너였다
그래선지 집 뒷켠에 버스 지나가는 소리가 늘 부르릉하고 들려왔다
도착하면 김제 외삼촌댁 식구들이 벌써 와 있다
곰방대를 물고 별로 말이 없으시며 연세가 지긋하신 외할아버지, 두분만 계시다가 여러 손자들이 와서 북적이니 약간 귀찮은 듯한 외할머니, 가실이란 동네는 외할아버지의 성이 해주 오씨로 오씨 친척들이 그 근방에 모여 살고있는 지역 같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닭장 앞 마당에서 한가이 놀던 커다란 장닭이 어린 나를 보더니 빨간벼슬을 치켜 세우고 날개를 활작핀채 '꼭꼭'거리고 쪼으러 나한테 달려 들어 무서워 도망치던 일과 앞집 대문을 지나가는 데도 조금 열린 문 사이로 오리 여러마리가 꽥꽥거리며 무섭게 우리를 위협하던 것이다
방학 때마다 외할아버지가 사는 가실 근방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만나는 외가 친척을 찾아 인사 드리고 조금 멀리있는 떡방앗간에도 함께 다녀오는 등 모르는 세계를 여기저기 구경하는 것은 참 재미있었다
그곳도 평야 지대로 길 건너 멀리 만경평야의 중심인 만경이 보였으며 길 따라서 논들이 이어지고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평평바다를 보았다
나중에 보니 그쪽 널다란 벌판 넘어 영만친구가 살던 광할이다
그러나 한번은 꼭 누나와 외삼촌 댁의 식구들과 티격태격 트러블이 생겨 더 있고 싶으나 중간에 할수 없이 누나따라 돌아와야 했다
다시 짐을 챙겨 집 뒤에 있는 버스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저멀리 길 끝에 작고 희미하게 보이는 심포에서 꽁무니에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그쪽을 계속 응시하곤 했었다
그러다 그곳 심포라는 데가 궁금해졌고 한번은 버스타고 들어갔다가 그대로 돌아 나오는데 겉으로는 그냥 시골 동네로서 별 특징이 없는것 같았다
얼마전 새만금 지도를 보다가 만경강과 칠보발전소에서 내려오는 동진강 물이 합쳐지는 하구 삼각지 부근에 가실이며 심포, 광할이 있는 것을 알았다
심포는 서해바다와 면하는 항구였으며 만경강 제일 끝자락 하구에 위치하였고 거기에서 왼쪽으로 꺽어서 쭈-욱 들어가면 거기가 광활이었다
가실과 광활은 직선상으로는 가깝게 보였다
나중에 하얀 먼지가 전혀 나지않는 도로로 자가용타고 창밖을 보며 가실을 지나 심포, 광활을 찾아 갔었다
거기는 멀리 지평선이 보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 글자 그대로 광할한 벌판이었다
그곳에 살았던 영만 친구의 구성지고 감성이 풍부한 내용과 섬세한 표현들의 글들을 공감하면서 그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칠보발전소 물이 흘러 지나가는 수로 둑에서 소와 달리기 시합을 했었다는데 그 낭만이 서려있는 뚝방에도 한번 가 보고 싶다
그 나이 쯤 나는 구럭을 짊어지고 토끼풀 뜯으러 논둑, 밭둑으로 토끼가 좋아하는 풀들을 찾아 돌아 다녔었다
풀을 뜯다가 방죽 둑에 한가하게 풀을 먹으며 놀고있는 소를 보며는 우리 토끼도 저렇게 놓아 먹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 영만 아버지같이 사랑하는 자식한테 일을 맡기면서 용기를 불러 넣어 줄 수 있는 시대는 어느샌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제 안 계시며 어느샌가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우리 손자들도 어릴적 나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을 굉장히 기다리고 있다
물론 할머니가 손자들이 오면 이뻐해 주고 동화책도 읽어주고 함께 놀아주니 좋아 하겠지
그래선지 아들집을 찾으면 큰 손자녀석은 헤어질 때마다 할머니 손을 붙잡고 엉엉 울음보를 터트렸다
네살 어린 나이에도 엄마 아빠를 떠나 혼자서 용감하게 우리집에 와서 며칠씩 지내다 가기도 했다
다섯살 이제는 조금 성숙해서인지 헤어질 때 이제 '10밤 자고 또 올께' 하면 '안돼요, 두밤만 자고 오세요' 그러면 '그래, 그러면 세밤만 자고 올께 ' 하고 달랬다
가까이 사는 둘째네 손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 오면 맛있는 것 주면서 녀석 기분을 잘 맞춰 주기도 하지만 거기다 우리 집에서는 커다란 TV 로 유튜브 등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제 마음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다들 애들에게 TV 보는 것을 제한해서 더욱 그러는것 같다
요즘 들어 작은아들 손자녀석이 우리집에 무척 오고싶어 하는데 오늘도 영상통화를 했다
이유인 즉슨 산타 할아버지와 전화하고 싶어서 이다
크리스마스 전 우리집에 왔을 때 작은 방에 전화가 따르릉 걸려 와 작은 아들의 손자가 받았는데 산타 할아버지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물론 아들이 다른 방에서 휴대폰으로 걸어 산타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내어 이야기를 진지하게 손자와 주고 받은 것이다
아직 기저귀를 차는 세살된 손자는 산타 할아버지와 통화한 것을 매우 기뻐하였으며 정말로 받아 들이고 다음에 우리집에 올때 또 산타 할아버지와 전화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고 기대가 부풀어 있는것 같은데 어찌해야 옳을까요 ?
영만 친구의 고향 광할에서의 어린시절 추억 이야기를 읽으며 잊혀져 가는 그 근방에 있던 할아버지댁에서의 기억들이 새록 새록 떠 오른다
친구 글 내용중 성덕면 가실이 나오는데 가실은 진봉 가실이라 불렸으니 거기는 진봉면이며 우리 외할아버지댁이 있던 곳이다
초등학교, 그 때는 방학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 .
다들 학교 가지않는 날을 기다렸겠지만 방학이 되면 나는 가실 외할아버지 댁에 갈 수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외할아버지 댁 가는 길은 기차타고 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언제나 우리를 반가워 하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하는 새로운 세상은 작은 행복이었다
거기 가면 우리 또래의 외삼촌댁 식구들과 만날 수 있고 오랫만에 함께 놀 수 있기에 더욱 기다려졌다
지나 다니는 기차를 늘 바라만 보며 타보지 못한 촌놈이 누나를 따라 드디어 열차타고 김제를 가며 가슴 설레였었다
김제역 앞에 있는 외삼촌과 이모댁을 들러 인사도 잠시 부랴 부랴 읍내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가실가는 버스에 올랐다
정류장에는 갈 때마다 "광활", "광활"하고 큰소리로 외치는데 도대체 거기가 어디지, 광활해서 광활이라 했나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가실로 직접가는 버스가 없을때는 중간의 양수장에 내려서 한참 걸어가기도 했는데 양수장은 친구가 말한 성덕면으로 진봉면 옆이었다
외할아버지 댁은 진봉 가실교회가 있는 동네 버스길 바로 옆 코너였다
그래선지 집 뒷켠에 버스 지나가는 소리가 늘 부르릉하고 들려왔다
도착하면 김제 외삼촌댁 식구들이 벌써 와 있다
곰방대를 물고 별로 말이 없으시며 연세가 지긋하신 외할아버지, 두분만 계시다가 여러 손자들이 와서 북적이니 약간 귀찮은 듯한 외할머니, 가실이란 동네는 외할아버지의 성이 해주 오씨로 오씨 친척들이 그 근방에 모여 살고있는 지역 같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닭장 앞 마당에서 한가이 놀던 커다란 장닭이 어린 나를 보더니 빨간벼슬을 치켜 세우고 날개를 활작핀채 '꼭꼭'거리고 쪼으러 나한테 달려 들어 무서워 도망치던 일과 앞집 대문을 지나가는 데도 조금 열린 문 사이로 오리 여러마리가 꽥꽥거리며 무섭게 우리를 위협하던 것이다
방학 때마다 외할아버지가 사는 가실 근방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만나는 외가 친척을 찾아 인사 드리고 조금 멀리있는 떡방앗간에도 함께 다녀오는 등 모르는 세계를 여기저기 구경하는 것은 참 재미있었다
그곳도 평야 지대로 길 건너 멀리 만경평야의 중심인 만경이 보였으며 길 따라서 논들이 이어지고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평평바다를 보았다
나중에 보니 그쪽 널다란 벌판 넘어 영만친구가 살던 광할이다
그러나 한번은 꼭 누나와 외삼촌 댁의 식구들과 티격태격 트러블이 생겨 더 있고 싶으나 중간에 할수 없이 누나따라 돌아와야 했다
다시 짐을 챙겨 집 뒤에 있는 버스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저멀리 길 끝에 작고 희미하게 보이는 심포에서 꽁무니에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그쪽을 계속 응시하곤 했었다
그러다 그곳 심포라는 데가 궁금해졌고 한번은 버스타고 들어갔다가 그대로 돌아 나오는데 겉으로는 그냥 시골 동네로서 별 특징이 없는것 같았다
얼마전 새만금 지도를 보다가 만경강과 칠보발전소에서 내려오는 동진강 물이 합쳐지는 하구 삼각지 부근에 가실이며 심포, 광할이 있는 것을 알았다
심포는 서해바다와 면하는 항구였으며 만경강 제일 끝자락 하구에 위치하였고 거기에서 왼쪽으로 꺽어서 쭈-욱 들어가면 거기가 광활이었다
가실과 광활은 직선상으로는 가깝게 보였다
나중에 하얀 먼지가 전혀 나지않는 도로로 자가용타고 창밖을 보며 가실을 지나 심포, 광활을 찾아 갔었다
거기는 멀리 지평선이 보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 글자 그대로 광할한 벌판이었다
그곳에 살았던 영만 친구의 구성지고 감성이 풍부한 내용과 섬세한 표현들의 글들을 공감하면서 그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칠보발전소 물이 흘러 지나가는 수로 둑에서 소와 달리기 시합을 했었다는데 그 낭만이 서려있는 뚝방에도 한번 가 보고 싶다
그 나이 쯤 나는 구럭을 짊어지고 토끼풀 뜯으러 논둑, 밭둑으로 토끼가 좋아하는 풀들을 찾아 돌아 다녔었다
풀을 뜯다가 방죽 둑에 한가하게 풀을 먹으며 놀고있는 소를 보며는 우리 토끼도 저렇게 놓아 먹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 영만 아버지같이 사랑하는 자식한테 일을 맡기면서 용기를 불러 넣어 줄 수 있는 시대는 어느샌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제 안 계시며 어느샌가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우리 손자들도 어릴적 나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을 굉장히 기다리고 있다
물론 할머니가 손자들이 오면 이뻐해 주고 동화책도 읽어주고 함께 놀아주니 좋아 하겠지
그래선지 아들집을 찾으면 큰 손자녀석은 헤어질 때마다 할머니 손을 붙잡고 엉엉 울음보를 터트렸다
네살 어린 나이에도 엄마 아빠를 떠나 혼자서 용감하게 우리집에 와서 며칠씩 지내다 가기도 했다
다섯살 이제는 조금 성숙해서인지 헤어질 때 이제 '10밤 자고 또 올께' 하면 '안돼요, 두밤만 자고 오세요' 그러면 '그래, 그러면 세밤만 자고 올께 ' 하고 달랬다
가까이 사는 둘째네 손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 오면 맛있는 것 주면서 녀석 기분을 잘 맞춰 주기도 하지만 거기다 우리 집에서는 커다란 TV 로 유튜브 등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제 마음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다들 애들에게 TV 보는 것을 제한해서 더욱 그러는것 같다
요즘 들어 작은아들 손자녀석이 우리집에 무척 오고싶어 하는데 오늘도 영상통화를 했다
이유인 즉슨 산타 할아버지와 전화하고 싶어서 이다
크리스마스 전 우리집에 왔을 때 작은 방에 전화가 따르릉 걸려 와 작은 아들의 손자가 받았는데 산타 할아버지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물론 아들이 다른 방에서 휴대폰으로 걸어 산타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내어 이야기를 진지하게 손자와 주고 받은 것이다
아직 기저귀를 차는 세살된 손자는 산타 할아버지와 통화한 것을 매우 기뻐하였으며 정말로 받아 들이고 다음에 우리집에 올때 또 산타 할아버지와 전화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고 기대가 부풀어 있는것 같은데 어찌해야 옳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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