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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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작성일 21-07-27 19:12 조회 2,334 댓글 0본문
○ 부용방죽
어린시절 부용방죽은 근방에서 제일 큰 방죽으로 부용 들녁에 물을 공급하는 큰 역활을 했었다
극심한 가뭄에 메말라 타들어가는 논에 오아시스같은 물줄기를 공급하던 방죽이 세월 따라 변모하는 것을 바라보며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 진다
여느곳 처럼 부용 방죽도 물이 가득 차 있으며 고요하고 비가 많이 내리면 주위 논까지 삼켜 버렸다.
맑은 방죽에 수련, 마람(마름), 수초들이 자라고 잠자리가 물위에 맴돌며 제비들이 낮게 물을 스치며 날아 다녔다
이따금 가물치가 물위에 있는 벌레를 잡으려고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으며 물가에 고기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선풍기도 없던 그시절 여름,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방죽에서 친구들과 함께 멱감는 것이야말로 큰 즐거움이었다
부모들은 위험하다고 수영을 못하게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면 방죽에서 수영하는 것이 최고였고 다른 곳에서 그런 즐거움을 찾을 수 없었다
수룡귀지쪽 수문 근처가 물이 깨끗하고 수초가 적으며 바닥이 깊지않고 완만 평평하여 주로 그곳을 이용했다
그때는 수영복이란게 없었으니 어린 우리들은 벗은 옷을 한쪽 풀위에 놓아두고 홀딱 벗은채로 방죽안으로 뛰어들어 물장구 치고 헤엄치며 노느라 마냥 정신 없었다
그머리(거머리)도 물에 떠서 움직여 헤엄칠 때 달라 붙기도 하지만 떼어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끝나고 옷입기 전에는 혹시나 하여 온몸을 샅샅히 다시 살펴보곤 했었다
수영하고 난 뒤에는 머리를 완벽히 말리고 살갗을 여러번 문질러 수영 흔적이 전혀 남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썼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 이불에서 나오는데 사타구니 사이에 큰 말그머리가 아직도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질겁을 한적도 있었다
이녀석이 밤새도록 내 피를 . .
물위에 자라는 물풀 열매인 뾰족한 마람을 따다가 쪄 먹은적도 있었는데 맛있고 밤처럼 포근포근 했으나 양이 적은게 흠이었지만. . .
더 어릴땐 부용쪽 수문을 열면 깨끗한 물이 콸콸 흘러 나오는 매우 얕은 곳에서 땅집고 발로 물장구 치며 놀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빨래하지만 반대쪽에서 우리는 소리치며 시간 가는줄 모트고 마냥 즐거워하면서 . .
크면서는 물이 무릎까지 오르는 또랑가 풀있는 곳을 손으로 더듬어 또는 체나 소쿠리로 고기잡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송사리, 예쁜 각시붕어를 잡으면 신고있던 검정 고무신에 물과 함께 채워넣어 맨발로 걸어오고 집에 있는 수대(양동이)에 넣고 그놈들이 헤엄치는 것을 관찰했다
물가 수초사이를 더듬다가 "푸드득"하며 어린애 손바닥만한 붕어를 잡으면 그건 엄청난 횡재였지 ㅎ ㅎ
수로에서 바지를 접어 올려 가랭이가 물이 젖지않게 조심스레 고기도 잡곤 했으나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바지 가랭이가 물에 젖는 바람에 바지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거나 옆 토끼산에 올라가 바지를 벗어 땡볕에 말리고 난후 집으로 갔다
흐르는 수로에 논의 물꼬만 열어 놓으면 물이 저절로 들어오는 논도 있지만 물을 퍼올려야 하는 논이 더 많다
방죽 바로 옆에 논이 있어도 물은 위로 올라오지 않는 법 !
지금은 자취를 감춘 길다란 원통펌프를 방죽에 박아놓고 논에 물을 퍼 올린다
모내기철이 되면 "텅텅텅텅" 밤새도록 시끄럽게 들판에서 물을 품어댔다
큰 바가지에 끈을 달아 양쪽에서 2명이 조를 짜 방죽에서 퍼올리기도 하고 물자세(무자위)를 사용하기도 했다
두마지기 우리 논도 수로에 물자세를 설치하고 아버지가 올라가서 돌리는데 어린 나도 호기심에 물자세에 올라서서 물자세를 힘껏 밟아 본다
몸무게가 적어서인지 물자세는 끄덕도 않고 그냥 그대로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러면서 밟는 나무판이 물힘에 의하여 움직이며 위험할 것 같아 냉큼 포기하고 말았다
모심는 계절에 봄가뭄이 계속되면 농부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바짝 마른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를 심을 수도 없으며 그나마 심은 모가 바짝 말라 타들어 가고 농부들 마음도 타들어 가고 . .
방죽에 물이 다 빠져 버리면 바닥이 드러나고 평평하던 넓은 곳 여기저기에 웅덩이가 생기고 살던 고기들은 작은 웅덩이에 갇혀 버리고 만다
그때는 동네 사람들이 방죽으로 고기를 잡으러 많이 몰려 들었다
수대로 웅덩이 물을 퍼내고 물이 많이 차있는 곳에서는 가래치기로 텀벙 텀벙 휘저어 다니며 고기를 잡았다
붕어, 미꾸라지, 메기, 빠가사리, 가물치 등 다양한 고기들을 왁자지끌 하면서 전부 잡아갔다
완전히 마르고 고기들을 모두 잡아가버려 씨가 말랐을 것으로 생각되어도 비가오면 방죽엔 다시 물이 차오르고 다음 해에도 많은 고기들이 여전히 넘실대고 있는 것을 보면 어린 내 눈에는 참 신기하게만 보였다
낚시꾼들이 방죽의 논둑에 자리잡고 낚시를 하고 있으면 그옆에 숨죽이며 앉아 고기가 잡히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었다
또한 도로이면서 방죽 둑이기도 한 둑의 한쪽 경사진 비교적 넓은 곳에 나있는 풀들은 늘 토끼풀을 뜯기 참 좋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미 소를 메어 놓아 먹이고 있으면 어쩔수 없이 좁다란 논둑으로 풀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늦가을의 넓은 방죽 사람이 잘 가지않는 안쪽에 철새들이 푸른 하늘가로 무리지어 날기도 하며 물위에 떠서 떼지어 놀았다
부용방죽은 기러기, 청둥오리 들의 놀이터로 매년 많이들 찾아와 놀고가는 장소였다
비행기 착륙하듯 사뿐히 내려 않거나 한꺼번에 이륙하는 장관을 먼 발치에서 감탄하며 볼 수 있었다
눈이 펑펑 오는 겨울이 되며는 많은 사람들이 꽁꽁 얼어있는 방죽으로 나와 얼음타기를 즐겼다
누구보다 어린애들이 즐겨워하는 놀이터 였었다
신발 크기정도의 나무판 밑에 직각으로 막대를 대고 철사를 박아 만든 외발 스케이트를 즐겼다
한번 굴러서 누가 더 오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서로 시합을 하며 자랑하기도 했다
두발로 앉아서 타는 스케이트는 두개의 막대기 밑에 못을 박아 양손으로 콕콕 찍어 가속을 하며 얼음판에서 미끌어져 멀리까지 "스르르" 나가는 것을 고소해 하며 즐겼다
겨울내내 얼음이 녹을 때까지 . .
부용 뜨락은 1970년 무렵 경지정리공사를 하여 제각각 다르던 논의 크기와 높낮이를 평평하게 하고 한필지 여섯마지기 크기로 같게 나누고 농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부터 방죽물에 의존하던 논들이 다른 곳 아마 칠보발전소에서 흘러 나오는 동진강 물로 대신하면서 중요도가 없어져 버렸다
부용방죽은 고향에 갈 때마다 물 수량이 줄어들은 채 풀만 무성하게 자라있어 보기 안타까웠었는데 최근 그곳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북과 김제시가 대규모 스마트팜 밸리를 짓고 있으며 올 10월 완공한다고 한다
군산→전주 산업도로를 타고 익산-김제로 갈라지는 길을 지나 오른쪽을 바라보면 길 바로 옆에 위치하여 차를 타고 가면서 볼 수 있다
스마트 팜이란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등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최적 생육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할 수 있는 지능화된 농장을 짓는단다
전북에서 640억을 들여하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 같다
창고같은 온실을 여러개 설치하여 그 안에 요즘 뉴스에 나오는 수경재배 등 최신기술을 적용하여 작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엄청 큰 대규모 시설을 활용하자면 훈련을 받은 많은 젊은 청년들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는데 농작물을 많이 생산하여 타산을 맞출 수 있는 시대를 앞서가는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물이 가득 가득 넘실대며 평화롭기만 하던 부용방죽 !
세월의 흐름속에 그 큰 방죽은 서서히 변모하더니 사라져 버리고 말았으니 . .
어짜피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어린 그 시절의 가득한 추억들 이제는 기억의 책장속에 고이 고이 담아 간직 하렵니다.
어린시절 부용방죽은 근방에서 제일 큰 방죽으로 부용 들녁에 물을 공급하는 큰 역활을 했었다
극심한 가뭄에 메말라 타들어가는 논에 오아시스같은 물줄기를 공급하던 방죽이 세월 따라 변모하는 것을 바라보며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 진다
여느곳 처럼 부용 방죽도 물이 가득 차 있으며 고요하고 비가 많이 내리면 주위 논까지 삼켜 버렸다.
맑은 방죽에 수련, 마람(마름), 수초들이 자라고 잠자리가 물위에 맴돌며 제비들이 낮게 물을 스치며 날아 다녔다
이따금 가물치가 물위에 있는 벌레를 잡으려고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으며 물가에 고기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선풍기도 없던 그시절 여름,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방죽에서 친구들과 함께 멱감는 것이야말로 큰 즐거움이었다
부모들은 위험하다고 수영을 못하게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면 방죽에서 수영하는 것이 최고였고 다른 곳에서 그런 즐거움을 찾을 수 없었다
수룡귀지쪽 수문 근처가 물이 깨끗하고 수초가 적으며 바닥이 깊지않고 완만 평평하여 주로 그곳을 이용했다
그때는 수영복이란게 없었으니 어린 우리들은 벗은 옷을 한쪽 풀위에 놓아두고 홀딱 벗은채로 방죽안으로 뛰어들어 물장구 치고 헤엄치며 노느라 마냥 정신 없었다
그머리(거머리)도 물에 떠서 움직여 헤엄칠 때 달라 붙기도 하지만 떼어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끝나고 옷입기 전에는 혹시나 하여 온몸을 샅샅히 다시 살펴보곤 했었다
수영하고 난 뒤에는 머리를 완벽히 말리고 살갗을 여러번 문질러 수영 흔적이 전혀 남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썼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 이불에서 나오는데 사타구니 사이에 큰 말그머리가 아직도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질겁을 한적도 있었다
이녀석이 밤새도록 내 피를 . .
물위에 자라는 물풀 열매인 뾰족한 마람을 따다가 쪄 먹은적도 있었는데 맛있고 밤처럼 포근포근 했으나 양이 적은게 흠이었지만. . .
더 어릴땐 부용쪽 수문을 열면 깨끗한 물이 콸콸 흘러 나오는 매우 얕은 곳에서 땅집고 발로 물장구 치며 놀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빨래하지만 반대쪽에서 우리는 소리치며 시간 가는줄 모트고 마냥 즐거워하면서 . .
크면서는 물이 무릎까지 오르는 또랑가 풀있는 곳을 손으로 더듬어 또는 체나 소쿠리로 고기잡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송사리, 예쁜 각시붕어를 잡으면 신고있던 검정 고무신에 물과 함께 채워넣어 맨발로 걸어오고 집에 있는 수대(양동이)에 넣고 그놈들이 헤엄치는 것을 관찰했다
물가 수초사이를 더듬다가 "푸드득"하며 어린애 손바닥만한 붕어를 잡으면 그건 엄청난 횡재였지 ㅎ ㅎ
수로에서 바지를 접어 올려 가랭이가 물이 젖지않게 조심스레 고기도 잡곤 했으나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바지 가랭이가 물에 젖는 바람에 바지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거나 옆 토끼산에 올라가 바지를 벗어 땡볕에 말리고 난후 집으로 갔다
흐르는 수로에 논의 물꼬만 열어 놓으면 물이 저절로 들어오는 논도 있지만 물을 퍼올려야 하는 논이 더 많다
방죽 바로 옆에 논이 있어도 물은 위로 올라오지 않는 법 !
지금은 자취를 감춘 길다란 원통펌프를 방죽에 박아놓고 논에 물을 퍼 올린다
모내기철이 되면 "텅텅텅텅" 밤새도록 시끄럽게 들판에서 물을 품어댔다
큰 바가지에 끈을 달아 양쪽에서 2명이 조를 짜 방죽에서 퍼올리기도 하고 물자세(무자위)를 사용하기도 했다
두마지기 우리 논도 수로에 물자세를 설치하고 아버지가 올라가서 돌리는데 어린 나도 호기심에 물자세에 올라서서 물자세를 힘껏 밟아 본다
몸무게가 적어서인지 물자세는 끄덕도 않고 그냥 그대로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러면서 밟는 나무판이 물힘에 의하여 움직이며 위험할 것 같아 냉큼 포기하고 말았다
모심는 계절에 봄가뭄이 계속되면 농부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바짝 마른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를 심을 수도 없으며 그나마 심은 모가 바짝 말라 타들어 가고 농부들 마음도 타들어 가고 . .
방죽에 물이 다 빠져 버리면 바닥이 드러나고 평평하던 넓은 곳 여기저기에 웅덩이가 생기고 살던 고기들은 작은 웅덩이에 갇혀 버리고 만다
그때는 동네 사람들이 방죽으로 고기를 잡으러 많이 몰려 들었다
수대로 웅덩이 물을 퍼내고 물이 많이 차있는 곳에서는 가래치기로 텀벙 텀벙 휘저어 다니며 고기를 잡았다
붕어, 미꾸라지, 메기, 빠가사리, 가물치 등 다양한 고기들을 왁자지끌 하면서 전부 잡아갔다
완전히 마르고 고기들을 모두 잡아가버려 씨가 말랐을 것으로 생각되어도 비가오면 방죽엔 다시 물이 차오르고 다음 해에도 많은 고기들이 여전히 넘실대고 있는 것을 보면 어린 내 눈에는 참 신기하게만 보였다
낚시꾼들이 방죽의 논둑에 자리잡고 낚시를 하고 있으면 그옆에 숨죽이며 앉아 고기가 잡히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었다
또한 도로이면서 방죽 둑이기도 한 둑의 한쪽 경사진 비교적 넓은 곳에 나있는 풀들은 늘 토끼풀을 뜯기 참 좋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미 소를 메어 놓아 먹이고 있으면 어쩔수 없이 좁다란 논둑으로 풀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늦가을의 넓은 방죽 사람이 잘 가지않는 안쪽에 철새들이 푸른 하늘가로 무리지어 날기도 하며 물위에 떠서 떼지어 놀았다
부용방죽은 기러기, 청둥오리 들의 놀이터로 매년 많이들 찾아와 놀고가는 장소였다
비행기 착륙하듯 사뿐히 내려 않거나 한꺼번에 이륙하는 장관을 먼 발치에서 감탄하며 볼 수 있었다
눈이 펑펑 오는 겨울이 되며는 많은 사람들이 꽁꽁 얼어있는 방죽으로 나와 얼음타기를 즐겼다
누구보다 어린애들이 즐겨워하는 놀이터 였었다
신발 크기정도의 나무판 밑에 직각으로 막대를 대고 철사를 박아 만든 외발 스케이트를 즐겼다
한번 굴러서 누가 더 오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서로 시합을 하며 자랑하기도 했다
두발로 앉아서 타는 스케이트는 두개의 막대기 밑에 못을 박아 양손으로 콕콕 찍어 가속을 하며 얼음판에서 미끌어져 멀리까지 "스르르" 나가는 것을 고소해 하며 즐겼다
겨울내내 얼음이 녹을 때까지 . .
부용 뜨락은 1970년 무렵 경지정리공사를 하여 제각각 다르던 논의 크기와 높낮이를 평평하게 하고 한필지 여섯마지기 크기로 같게 나누고 농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부터 방죽물에 의존하던 논들이 다른 곳 아마 칠보발전소에서 흘러 나오는 동진강 물로 대신하면서 중요도가 없어져 버렸다
부용방죽은 고향에 갈 때마다 물 수량이 줄어들은 채 풀만 무성하게 자라있어 보기 안타까웠었는데 최근 그곳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북과 김제시가 대규모 스마트팜 밸리를 짓고 있으며 올 10월 완공한다고 한다
군산→전주 산업도로를 타고 익산-김제로 갈라지는 길을 지나 오른쪽을 바라보면 길 바로 옆에 위치하여 차를 타고 가면서 볼 수 있다
스마트 팜이란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등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최적 생육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할 수 있는 지능화된 농장을 짓는단다
전북에서 640억을 들여하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 같다
창고같은 온실을 여러개 설치하여 그 안에 요즘 뉴스에 나오는 수경재배 등 최신기술을 적용하여 작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엄청 큰 대규모 시설을 활용하자면 훈련을 받은 많은 젊은 청년들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는데 농작물을 많이 생산하여 타산을 맞출 수 있는 시대를 앞서가는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물이 가득 가득 넘실대며 평화롭기만 하던 부용방죽 !
세월의 흐름속에 그 큰 방죽은 서서히 변모하더니 사라져 버리고 말았으니 . .
어짜피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어린 그 시절의 가득한 추억들 이제는 기억의 책장속에 고이 고이 담아 간직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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