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치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2-06 22:28 조회 2,253 댓글 0본문
어릴때 같이 지내는 식구들이 많고 또 항상 친구들이 이웃에 많이 있어 집에서나 밖에 나가면 언제나 쉽게 어울려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심심하면 팽이를 돌리거나 코패(딱지)를 치는데 장판지를 바른 방안에서 동생과 같이 하는 것은 이겨도 소득이 별로없어 재미가 없고 또 먼지가 난다고 꾸지람을 듣기 때문에 마당이나 동네에 나가서 친구들과 쳤다
팽이 치려면 먼저 점방에서 팽이를 사서 밑에 박을 쇠구슬을 준비했다
이 구슬은 기계 볼베어링에 들어가는 구슬로 팽이가 중심을 잘 잡고 오래 돌 수 있게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
또 팽이를 돌리려면 계속해서 부드러운 끈으로 된 채찍으로 팽이의 옆굴탱이를 떄려 주어야 했고 그 끈을 작은 막대기에 묶어 계속 팽이한테 휘둘러댓다
채찍용 끈은 헌옷 한쪽을 길게 뜯어내어 사용하였다
부드럽고 낭창낭창한 가죽채찍이 있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 .
그때는 거의 대부분 팽이를 하나씩 주머니에 가지고 있었으며 학교에 가지고 와서 쉬는시간에도 복도와 운동장에서 팽이를 돌렸다
누구것이 잘 돌고 오래 가는가가 관건이었고 시합이었다
가끔 친구들과 돌고있는 팽이끼리 서로 부딛히게 하여도 살아남아 계속 돌고있게 하는 게임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이길 수 있고 볼륨있는 큰 팽이를 선호했었고 또 중심이 잘 잡히게 만들은 팽이를 찾았다
팽이가 혼자 돌고있는 동안에는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이 조용하게 서있으며 가끔 작은 진동을 내며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을 지긋히 바라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혼자서 즐기고 행복해 하였었다
혼자 돌다가 힘이 지쳐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며 넘어지려고 하면 그때 다시 채찍을 가하여 가속을 하여 세우고 고요한 가운데 다시 열심히 돌게하는 모습을 연출하게 했다
팽이는 방바닥이나 마당, 약간 얼은 눈길, 학교 복도나 유리 위, 운동장에서도 잘 도는데 나무로 된 마루나 복도 위에서는 '또르르르 . . ' 구슬이 마루를 구르는 소리를 내면서 돌았었다
겨울방죽 매끄럽게 얼은 얼음 위에서는 조용하게 더할나위 없이 쌩쌩 잘 돌았다. 한겨울 추위속에 참기가 힘들기도 했지만 . .
나중에 쇠로 만든 감아서 돌리는 팽이같은 것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냥 일회용으로 계속 더 돌릴 수 없기 떄문에 인기가 별로 없었다
설이 가까운데 이맘때 쯤 제기차기도 많이 했었다
서로 누가 오래 많이 차는지 경쟁을 했다
제기는 반드시 구멍이 있는 엽전 같은 것으로 만들었고 엽전은 기계에 볼트를 박을때 끼우는 큰 와샤 모양과 같았다
그땐 구멍이 있는 엽전같은 것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우리집에 일제시대에 사용하던 구멍이 뚤린 쓸모없는 몇전짜리 동전이 한무더기 있어 그놈을 제기 만드는데 사용하고 싶었지만 구멍이 조금 작아 늘 아쉽게만 쳐다보았다
제기는 발에 닿을 수 있는 면적이 넓을수록 발로 차기에 좋았다
제기를 만드는 종이는 창호지같은 가벼우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좋았었는데 그게 부족하여 나중에는 공책을 뜯어 만들었었다
엽전에 종이를 감아 가운데 구멍으로 집어내어 수술로 만드는데 수술은 적당한 크기와 갯수로 잘 만들어서 공중에 부드렇게 오래 뜰 수 있으며 찰 때 항상 수술은 위쪽으로 제기가 발에 닿을 때쯤 되면 엽전부분은 아래방향으로 되어야 차기에 좋았었다
찰때 복숭아씨와 엄지 발가락 사이의 틈사이 발에 맞춰 공중으로 띄우게 하는데 물론 운동신경이 잘 발달한 친구가 오래 그리고 많이 찾었다
하나, 둘 세면서 제기를 찾었는데 시골의 아이들에게는 대개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서로 상당한 경쟁이 되었었다
그때는 다른 마땅한 놀이가 없을 때로 제기는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 쉬워 서로 경쟁하며 많이 놀던 놀이였었다
나중에 구멍을 뚫지않고 종이로 동전을 감싸고 윗부분을 묶어 수술로 만든 제기가 나왔었는데 그것은 본래의 제기와 많이 다르며 만들때의 편의성만 추구하는 모습으로 보기에도 민망하고 좋지 않았던것 같다
그리고 코패치기를 많이 했다
다 쓴 공책이나 다 배운 불필요한 책을 뜯어 차곡차곡 접어서 네모지게 정성들여 만들었다
네모진 코패를 '탁'하고 있는 힘을 다해 힘주어 내려치면 그바람과 진동에 의하여 상대편 코패가 훌러덩 뒤집혀지고 그것은 딴 것으로 주머니에 집어 넣으면 곧 내것이 되었다
코패는 그냥 쉽게 뒤집혀지는게 아니었다
놓는 위치에 따라 뒤집혀질 가능성이 많이 달라지므로 먼저 가벼운 종이로 만든것이나 바닥과의 틈이 있거나 약간 떠있는 허점이 있는 놈이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처음 자리에 놓을 때 위치를 잘 골라서 잡도록 주의를 기울였으며 한번 놓거나 치고나면 코패는 그대로 두고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때로는 한쪽 발을 대거나 벽같은 곳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상대방 것을 뒤집히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코패를 잃으면 그날은 집에 가서 다시 코패를 열심히 만들었다
많은 공책과 사용하던 교과서가 뜯겨져서 코패로 만들어졌다
또 코패를 많이 따면 그날은 친구들한테 자랑을 하며 의기양양해서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쌓아놨다
그때는 딱지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며 코패라고 불렀었다
그리고 내가 딴 많은 코페는 집에서 풀어 헤쳐서 치깐에서 뒤를 닦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부드러운 공책이나 교과서 등은 사용하는데 별 지장이 없으나 두꺼운 책 겉표지는 뒤를 닦는데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두꺼운 책 겉표지로 만든 코패로 칠때는 항상 힘이 있어 바람을 세차게 불러 일으켜 항상 많은 코패들을 뒤집는 선수였지만 그것을 못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심심하면 팽이를 돌리거나 코패(딱지)를 치는데 장판지를 바른 방안에서 동생과 같이 하는 것은 이겨도 소득이 별로없어 재미가 없고 또 먼지가 난다고 꾸지람을 듣기 때문에 마당이나 동네에 나가서 친구들과 쳤다
팽이 치려면 먼저 점방에서 팽이를 사서 밑에 박을 쇠구슬을 준비했다
이 구슬은 기계 볼베어링에 들어가는 구슬로 팽이가 중심을 잘 잡고 오래 돌 수 있게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
또 팽이를 돌리려면 계속해서 부드러운 끈으로 된 채찍으로 팽이의 옆굴탱이를 떄려 주어야 했고 그 끈을 작은 막대기에 묶어 계속 팽이한테 휘둘러댓다
채찍용 끈은 헌옷 한쪽을 길게 뜯어내어 사용하였다
부드럽고 낭창낭창한 가죽채찍이 있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 .
그때는 거의 대부분 팽이를 하나씩 주머니에 가지고 있었으며 학교에 가지고 와서 쉬는시간에도 복도와 운동장에서 팽이를 돌렸다
누구것이 잘 돌고 오래 가는가가 관건이었고 시합이었다
가끔 친구들과 돌고있는 팽이끼리 서로 부딛히게 하여도 살아남아 계속 돌고있게 하는 게임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이길 수 있고 볼륨있는 큰 팽이를 선호했었고 또 중심이 잘 잡히게 만들은 팽이를 찾았다
팽이가 혼자 돌고있는 동안에는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이 조용하게 서있으며 가끔 작은 진동을 내며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을 지긋히 바라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혼자서 즐기고 행복해 하였었다
혼자 돌다가 힘이 지쳐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며 넘어지려고 하면 그때 다시 채찍을 가하여 가속을 하여 세우고 고요한 가운데 다시 열심히 돌게하는 모습을 연출하게 했다
팽이는 방바닥이나 마당, 약간 얼은 눈길, 학교 복도나 유리 위, 운동장에서도 잘 도는데 나무로 된 마루나 복도 위에서는 '또르르르 . . ' 구슬이 마루를 구르는 소리를 내면서 돌았었다
겨울방죽 매끄럽게 얼은 얼음 위에서는 조용하게 더할나위 없이 쌩쌩 잘 돌았다. 한겨울 추위속에 참기가 힘들기도 했지만 . .
나중에 쇠로 만든 감아서 돌리는 팽이같은 것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냥 일회용으로 계속 더 돌릴 수 없기 떄문에 인기가 별로 없었다
설이 가까운데 이맘때 쯤 제기차기도 많이 했었다
서로 누가 오래 많이 차는지 경쟁을 했다
제기는 반드시 구멍이 있는 엽전 같은 것으로 만들었고 엽전은 기계에 볼트를 박을때 끼우는 큰 와샤 모양과 같았다
그땐 구멍이 있는 엽전같은 것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우리집에 일제시대에 사용하던 구멍이 뚤린 쓸모없는 몇전짜리 동전이 한무더기 있어 그놈을 제기 만드는데 사용하고 싶었지만 구멍이 조금 작아 늘 아쉽게만 쳐다보았다
제기는 발에 닿을 수 있는 면적이 넓을수록 발로 차기에 좋았다
제기를 만드는 종이는 창호지같은 가벼우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좋았었는데 그게 부족하여 나중에는 공책을 뜯어 만들었었다
엽전에 종이를 감아 가운데 구멍으로 집어내어 수술로 만드는데 수술은 적당한 크기와 갯수로 잘 만들어서 공중에 부드렇게 오래 뜰 수 있으며 찰 때 항상 수술은 위쪽으로 제기가 발에 닿을 때쯤 되면 엽전부분은 아래방향으로 되어야 차기에 좋았었다
찰때 복숭아씨와 엄지 발가락 사이의 틈사이 발에 맞춰 공중으로 띄우게 하는데 물론 운동신경이 잘 발달한 친구가 오래 그리고 많이 찾었다
하나, 둘 세면서 제기를 찾었는데 시골의 아이들에게는 대개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서로 상당한 경쟁이 되었었다
그때는 다른 마땅한 놀이가 없을 때로 제기는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 쉬워 서로 경쟁하며 많이 놀던 놀이였었다
나중에 구멍을 뚫지않고 종이로 동전을 감싸고 윗부분을 묶어 수술로 만든 제기가 나왔었는데 그것은 본래의 제기와 많이 다르며 만들때의 편의성만 추구하는 모습으로 보기에도 민망하고 좋지 않았던것 같다
그리고 코패치기를 많이 했다
다 쓴 공책이나 다 배운 불필요한 책을 뜯어 차곡차곡 접어서 네모지게 정성들여 만들었다
네모진 코패를 '탁'하고 있는 힘을 다해 힘주어 내려치면 그바람과 진동에 의하여 상대편 코패가 훌러덩 뒤집혀지고 그것은 딴 것으로 주머니에 집어 넣으면 곧 내것이 되었다
코패는 그냥 쉽게 뒤집혀지는게 아니었다
놓는 위치에 따라 뒤집혀질 가능성이 많이 달라지므로 먼저 가벼운 종이로 만든것이나 바닥과의 틈이 있거나 약간 떠있는 허점이 있는 놈이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처음 자리에 놓을 때 위치를 잘 골라서 잡도록 주의를 기울였으며 한번 놓거나 치고나면 코패는 그대로 두고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때로는 한쪽 발을 대거나 벽같은 곳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상대방 것을 뒤집히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코패를 잃으면 그날은 집에 가서 다시 코패를 열심히 만들었다
많은 공책과 사용하던 교과서가 뜯겨져서 코패로 만들어졌다
또 코패를 많이 따면 그날은 친구들한테 자랑을 하며 의기양양해서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쌓아놨다
그때는 딱지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며 코패라고 불렀었다
그리고 내가 딴 많은 코페는 집에서 풀어 헤쳐서 치깐에서 뒤를 닦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부드러운 공책이나 교과서 등은 사용하는데 별 지장이 없으나 두꺼운 책 겉표지는 뒤를 닦는데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두꺼운 책 겉표지로 만든 코패로 칠때는 항상 힘이 있어 바람을 세차게 불러 일으켜 항상 많은 코패들을 뒤집는 선수였지만 그것을 못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