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돼지 그리고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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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1-29 12:57 조회 2,347 댓글 0본문
어렸을 때 방학때만 되면 김제 가실 외할아버지댁에 가서 놀다오곤 했다
그런데 거기서 닭과 오리한테 혼이 난 기억이 난다
빨간 벼슬을 하고 몸에 빨강 검정, 노랑깃으로 치장을 한 큰 장닭이 나를 향하여 양 날개를 펼치고 달려 오는데 . .
또 앞집 떼까오(거위)가 집앞을 지나가는데도 꽤액꽤액하고 덤비는데 . .
물론 할아버지한테 일러 바쳤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대부분 닭이나 오리 개들도 놓아 기르곤 했었지
우리 동네에서는 완병이네 친척이 되는 듯한 사진관 아랫집 마당에서 항상 떼까오 소리가 나고있어 그쪽을 지나 가거나 볼일이 있어 안에 들어 가고자 할때 다칠세라 주의를 바짝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마 장닭이나 거위한테 엉덩이를 쪼여 본적이 있는 친구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도 닭장이 있었다
그야말로 시골 토종닭을 기른 것이지
낮에는 열어놓고 먹이를 스스로 찾게 만들었으며 저녁에는 '구구구구'하며 먹이로 유인하여 닭장에 가두었다
그러나 모인 닭 숫자가 몇마리 부족하여 동네방네를 닭 찾으러 돌아 다녔었는데 알고보니 이웃집 닭장 횟대에 그집 닭과 어울려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 온 적이 있다
또한 닭을 놓아 먹여 토종닭으로 기르는데 좋기 하지만 요놈의 닭들이 지가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 알을 낳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닭이 알 낳을만한 곳을 찾으러 다니는데 주로 쌓아놓은 짚단 위 틈새에서 찾기도 하며 때로는 찾지 못하여 시간이 지나서 고른 알로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때 계란은 신작로에 내다 팔아서 학교 다니는데 공책이나 학비로 긴히 썼었다
커서 닭목아지를 비트는 것은 내 차지가 되었지만 . .
한편 우리집 워리도 나를 잘 따랐고 물속에서도 부르면 뛰어 들었지만 다른 개들한테 지지않고 당당하여 어릴때 내 자존심의 일부가 되었었다
물론 사람들한테는 위협이 되었겠지만 동냥아치나 수상한 사람들 한테서 집을 지켜주고 어린 나를 잘 따라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개도 좋아했다
그야말로 나에게는 반려동물 이었다
그때는 개집도 그냥 마루아래 망태에 짚을 깔아 놓았고 개사료라는 것이 없었으므로 항상 잔반을 주지만 가끔 뼈다귀라도 걸리면 그것을 한쪽으로 가지고 가서 게걸스럽게 핥고 부스러져 없어질 때까지 먹었다
나중에 객지생활을 하면서 갈비라도 뜯게되면 저 뼈다귀를 싸가지고 워리에게 주며는 얼마나 기뻐할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지만 . .
돼지는 그냥 돼지우리에서 키워 돼지죽을 줄때 말고는 별로 느낌이 없다
돼지같이 잘 먹는다는 표현이 있듯이 주는대로 잘 먹었다
돼지우리는 짚으로 깔아 놓았다가 질펀하여 더러워지면 갈아주곤 했는데 여름철에는 모기 온상으로 깔따귀 무리들이 들끓었었으나 아버지가 나중에 시멘트로 납작하게 블록을 여러개 만들어 깔아놓은 뒤부터 깨끗해졌다
동내에 고깃집을 하는 곳이 있어 가끔 돼지 * 따는 동네를 울리는 소리를 들었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하러 남미 페루에 간적이 있는데 목줄을 하지않은 개들이 들개 무리처럼 돌아다니며 길가는 행인을 향해 짖으며 위협을 하는데 물릴까봐 겁이 많이 났었다
거기는 보신탕이 없어 개체 조정이 필요한 듯 보였다
또 돼지는 돼지우리 없이 목과 다리 사이를 묶은 줄을 큰나무에 매어 놓고 마당에서 닭들과 함께 놀고 었었다
하기야 그나라는 나무 하나에서 한쪽은 꽃이 피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열매가 익는 곳이니 생활도 다를 수 밖에 . .
우리가 어릴떄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 모든 하찮은 풀, 새, 동물들은 먹을 수 있는 것에 집중되었었다
지금은 아파트에서 고양이한테 매일 사료를 주는 사람이 있고
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고라니, 멧돼지가 번성하여 때로는 인간에게 오히려 피해를 끼치는것을 볼 떄 새월이 많이 변한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서 닭과 오리한테 혼이 난 기억이 난다
빨간 벼슬을 하고 몸에 빨강 검정, 노랑깃으로 치장을 한 큰 장닭이 나를 향하여 양 날개를 펼치고 달려 오는데 . .
또 앞집 떼까오(거위)가 집앞을 지나가는데도 꽤액꽤액하고 덤비는데 . .
물론 할아버지한테 일러 바쳤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대부분 닭이나 오리 개들도 놓아 기르곤 했었지
우리 동네에서는 완병이네 친척이 되는 듯한 사진관 아랫집 마당에서 항상 떼까오 소리가 나고있어 그쪽을 지나 가거나 볼일이 있어 안에 들어 가고자 할때 다칠세라 주의를 바짝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마 장닭이나 거위한테 엉덩이를 쪼여 본적이 있는 친구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도 닭장이 있었다
그야말로 시골 토종닭을 기른 것이지
낮에는 열어놓고 먹이를 스스로 찾게 만들었으며 저녁에는 '구구구구'하며 먹이로 유인하여 닭장에 가두었다
그러나 모인 닭 숫자가 몇마리 부족하여 동네방네를 닭 찾으러 돌아 다녔었는데 알고보니 이웃집 닭장 횟대에 그집 닭과 어울려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 온 적이 있다
또한 닭을 놓아 먹여 토종닭으로 기르는데 좋기 하지만 요놈의 닭들이 지가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 알을 낳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닭이 알 낳을만한 곳을 찾으러 다니는데 주로 쌓아놓은 짚단 위 틈새에서 찾기도 하며 때로는 찾지 못하여 시간이 지나서 고른 알로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때 계란은 신작로에 내다 팔아서 학교 다니는데 공책이나 학비로 긴히 썼었다
커서 닭목아지를 비트는 것은 내 차지가 되었지만 . .
한편 우리집 워리도 나를 잘 따랐고 물속에서도 부르면 뛰어 들었지만 다른 개들한테 지지않고 당당하여 어릴때 내 자존심의 일부가 되었었다
물론 사람들한테는 위협이 되었겠지만 동냥아치나 수상한 사람들 한테서 집을 지켜주고 어린 나를 잘 따라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개도 좋아했다
그야말로 나에게는 반려동물 이었다
그때는 개집도 그냥 마루아래 망태에 짚을 깔아 놓았고 개사료라는 것이 없었으므로 항상 잔반을 주지만 가끔 뼈다귀라도 걸리면 그것을 한쪽으로 가지고 가서 게걸스럽게 핥고 부스러져 없어질 때까지 먹었다
나중에 객지생활을 하면서 갈비라도 뜯게되면 저 뼈다귀를 싸가지고 워리에게 주며는 얼마나 기뻐할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지만 . .
돼지는 그냥 돼지우리에서 키워 돼지죽을 줄때 말고는 별로 느낌이 없다
돼지같이 잘 먹는다는 표현이 있듯이 주는대로 잘 먹었다
돼지우리는 짚으로 깔아 놓았다가 질펀하여 더러워지면 갈아주곤 했는데 여름철에는 모기 온상으로 깔따귀 무리들이 들끓었었으나 아버지가 나중에 시멘트로 납작하게 블록을 여러개 만들어 깔아놓은 뒤부터 깨끗해졌다
동내에 고깃집을 하는 곳이 있어 가끔 돼지 * 따는 동네를 울리는 소리를 들었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하러 남미 페루에 간적이 있는데 목줄을 하지않은 개들이 들개 무리처럼 돌아다니며 길가는 행인을 향해 짖으며 위협을 하는데 물릴까봐 겁이 많이 났었다
거기는 보신탕이 없어 개체 조정이 필요한 듯 보였다
또 돼지는 돼지우리 없이 목과 다리 사이를 묶은 줄을 큰나무에 매어 놓고 마당에서 닭들과 함께 놀고 었었다
하기야 그나라는 나무 하나에서 한쪽은 꽃이 피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열매가 익는 곳이니 생활도 다를 수 밖에 . .
우리가 어릴떄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 모든 하찮은 풀, 새, 동물들은 먹을 수 있는 것에 집중되었었다
지금은 아파트에서 고양이한테 매일 사료를 주는 사람이 있고
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고라니, 멧돼지가 번성하여 때로는 인간에게 오히려 피해를 끼치는것을 볼 떄 새월이 많이 변한 것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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