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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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1-19 20:57 조회 2,397 댓글 0본문
70년대초 서울 아파트에는 복도에 장독대를 둘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시 고유의 풍습대로 빨래는 빨랫줄에 널어 말려야 하고 장은 항아리에 담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도시에서 자리를 찾지못해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 고유 음식의 맛을 내게하는 간장, 고추장, 된장, 김치 등을 담아 보관했던 항아리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던 시골집 부엌 가까이에 있던 장독대를 생각해 본다
모든 맛의 기본이되며 중심이 되는 메주를 만들기 위해 그해 거둔 콩을 지게로 날라 마당에 널어놓고 말려 멍석 위에서 작대기나 도리깨로 쳐서 콩 알갱이를 거두었다
햇콩을 가마솥에 삶은 다음 절구통에 넣고 돌아가며 도곳대로 쿵더쿵 쿵더쿵 찧었다
삶아진 콩이 맛있게 보여 한웅큼 집어 먹어 보았지만 맛은 영 생각보다 별로였었다
시루떡을 만드는 팥콩은 달고 맛있어 떡을 만들려고 삶은 콩을 여러번 집어먹다 혼이 난 기억이 난다
잘게 짓이겨진 콩 뭉치를 상에 올려놓고 직사각형 모양의 메주를 만들었다
벽돌같이 틀에 찍어 만드는 것이 아니고 짚으로 걸어놓고 말리기 위한 것이므로 반듯하게 만들 필요가 없고 또 예쁘게 만든다고 하여 메주맛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마다 제각기 모양이 달랐다
나도식구들 틈에 끼어 메주 형상을 만드는 일을 거들었지만 모양은 그닥 . . 손이 가는대로 만들었다고나 할까 ㅎㅎ
잘 만들어도 형상으로 굳기 전에는 모습이 약간씩 바뀌고 때로는 상위에서 떨어져 일그러지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메주 맛을 내는데 지장이 없을터 그냥 그 모양대로 사용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겉에 있는 수분이 마르고 굳기 시작하는데 말리며 발효시키기 위하여 지푸락으로 네군데를 묶어 마루와 부엌사이 또는 기둥이나 방 아랫묵 쪽에 있는 횟대에 걸어 놓았다
밖에 있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추울때 방안 아랫묵 윗부분에 있는 횟대에 걸린 메주는 발효과정에서 고리타분하게 나는 냄새(꼭 썩는 냄새)는 고약스럽기가 장난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참을 수밖에 . .
나중에 청국장이 되어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데 그때 나던 고약한 냄새가 뇌리에 박혀 있어 청국장이 입에 들어가지 않았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되었다
메주는 적당히 마르면 장독대에 있는 큰 항아리에 넣기 시작하는데 그 속에는소금을 넣은 물과 함께 고추, 숯 등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알고보면 메주는 조상 대대로 간장 고추장 된장을 만드는 재료로 우리 민족을 건강하게 하는 단백질을 공급하던 중요한 요소였다고 한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에 청국장이 건강에 아주 좋은 음식이라고 주위사람들이 자꾸 권장하여 좀 부끄러운 기억을 멀리한 채 슬그머니 청국장을 맛있게 먹게 되었다
시골 우리집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물을 버리면 흘러 장독대 옆을 지나 구부러지고 도랑을 타고 내려간다
장독대는 항아리가 큰것, 작은것 모두 약 10개 정도였다
메주와 간장이 들어 있는 항아리는 제일 컸고 또 무거워 어른들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어린애 두명 들어가도 될 정도의 크기였다
예쁠 필요가 없는 장독 항아리는 대체로 투박했다
꽃병처럼 매끄럽고 여러가지 색깔로 치장을 하지 않았고 거의 다 진한 밤색, 옅은 밤색에 잔잔한 물결무늬만 그려져 있었다
가을이 되려는 계절이 되면 유달리 빨간 고추잠자리며 된장색의 된장잠자리가 계속 쉬지않고 마당을 맴돌다가 장독대 위에서 머물고 쉬어가곤 했었다
장독대 자리는 밑에 넓적한 독들로 받혀있어 간장이 잔뜩 들어있는 장독무게에 견뎠고 그 돌 틈사이로 풀이나 심지않은 봉숭아 꽃들이 자라는데 그중 인상이 남는것은 해년마다 피는 장록이었다
장록은 키가 멀대같이 항아리 사이에서 자라고 꽃은 별로 예쁘지 않지만 꽃이 지고 열매로 된 진한 빨강 몽우리들은 따다가 꽃물로 손톱에 빨갛게 물 들이며 놀았다
봉숭아도 이쁘지만 부엌 수채와 장독대 사이 도랑 사이에는 해마다 채송화가 자라나 나의 이쁨을 독차지 하였다
매년 심지않은 채송화는 저절로 자라며 몸체에 비해 꽃의 크기가 크고 예쁘며 또 잘라서 심어도 곧 새로운 채송화가 자라나고 며칠동안 아침에 한꺼번에 화사하게 만발 때문에 내가 좋아하였고 가지를 잘라 이식을 하여 마당 한구석 작은 도랑옆에 점점 넓게 자리를 잡았다
예쁜 채송화를 고향 떠난 후에도 잊지 못하여 깨알보다 더 작은 채송화씨를 받기도 하고 또 가게에서 사다가 몇번이나 화분에 심어 봤건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랄까 . .
장독은 심부름으로 고추장이나 김치를 가지러 다닌 적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남자들보다는 음식을 만드는 여자들이 더 장독대에 친근하리라 생각한다
집집마다 있던 조상들이 애용하던 장독대는 아파트 문화로 자리잡게 된 뒤부터는 일부 개인건물 옥상 한쪽 구석탱이로 밀려나고 말았다
대신 대규모 기업용 장독과 현대적 인공적으로 만든 장독대가 없는 간장 고추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릴때 조선간장, 왜간장으로만 구분되던 것이 집간장(국간장) 진간장, 양조간장, 맛간장, 어간장 등으로 세분 되어지고 사용법도 각가 다르게 다양하다고 하니 세월이 많이 변한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시 고유의 풍습대로 빨래는 빨랫줄에 널어 말려야 하고 장은 항아리에 담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도시에서 자리를 찾지못해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 고유 음식의 맛을 내게하는 간장, 고추장, 된장, 김치 등을 담아 보관했던 항아리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던 시골집 부엌 가까이에 있던 장독대를 생각해 본다
모든 맛의 기본이되며 중심이 되는 메주를 만들기 위해 그해 거둔 콩을 지게로 날라 마당에 널어놓고 말려 멍석 위에서 작대기나 도리깨로 쳐서 콩 알갱이를 거두었다
햇콩을 가마솥에 삶은 다음 절구통에 넣고 돌아가며 도곳대로 쿵더쿵 쿵더쿵 찧었다
삶아진 콩이 맛있게 보여 한웅큼 집어 먹어 보았지만 맛은 영 생각보다 별로였었다
시루떡을 만드는 팥콩은 달고 맛있어 떡을 만들려고 삶은 콩을 여러번 집어먹다 혼이 난 기억이 난다
잘게 짓이겨진 콩 뭉치를 상에 올려놓고 직사각형 모양의 메주를 만들었다
벽돌같이 틀에 찍어 만드는 것이 아니고 짚으로 걸어놓고 말리기 위한 것이므로 반듯하게 만들 필요가 없고 또 예쁘게 만든다고 하여 메주맛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마다 제각기 모양이 달랐다
나도식구들 틈에 끼어 메주 형상을 만드는 일을 거들었지만 모양은 그닥 . . 손이 가는대로 만들었다고나 할까 ㅎㅎ
잘 만들어도 형상으로 굳기 전에는 모습이 약간씩 바뀌고 때로는 상위에서 떨어져 일그러지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메주 맛을 내는데 지장이 없을터 그냥 그 모양대로 사용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겉에 있는 수분이 마르고 굳기 시작하는데 말리며 발효시키기 위하여 지푸락으로 네군데를 묶어 마루와 부엌사이 또는 기둥이나 방 아랫묵 쪽에 있는 횟대에 걸어 놓았다
밖에 있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추울때 방안 아랫묵 윗부분에 있는 횟대에 걸린 메주는 발효과정에서 고리타분하게 나는 냄새(꼭 썩는 냄새)는 고약스럽기가 장난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참을 수밖에 . .
나중에 청국장이 되어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데 그때 나던 고약한 냄새가 뇌리에 박혀 있어 청국장이 입에 들어가지 않았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되었다
메주는 적당히 마르면 장독대에 있는 큰 항아리에 넣기 시작하는데 그 속에는소금을 넣은 물과 함께 고추, 숯 등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알고보면 메주는 조상 대대로 간장 고추장 된장을 만드는 재료로 우리 민족을 건강하게 하는 단백질을 공급하던 중요한 요소였다고 한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에 청국장이 건강에 아주 좋은 음식이라고 주위사람들이 자꾸 권장하여 좀 부끄러운 기억을 멀리한 채 슬그머니 청국장을 맛있게 먹게 되었다
시골 우리집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물을 버리면 흘러 장독대 옆을 지나 구부러지고 도랑을 타고 내려간다
장독대는 항아리가 큰것, 작은것 모두 약 10개 정도였다
메주와 간장이 들어 있는 항아리는 제일 컸고 또 무거워 어른들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어린애 두명 들어가도 될 정도의 크기였다
예쁠 필요가 없는 장독 항아리는 대체로 투박했다
꽃병처럼 매끄럽고 여러가지 색깔로 치장을 하지 않았고 거의 다 진한 밤색, 옅은 밤색에 잔잔한 물결무늬만 그려져 있었다
가을이 되려는 계절이 되면 유달리 빨간 고추잠자리며 된장색의 된장잠자리가 계속 쉬지않고 마당을 맴돌다가 장독대 위에서 머물고 쉬어가곤 했었다
장독대 자리는 밑에 넓적한 독들로 받혀있어 간장이 잔뜩 들어있는 장독무게에 견뎠고 그 돌 틈사이로 풀이나 심지않은 봉숭아 꽃들이 자라는데 그중 인상이 남는것은 해년마다 피는 장록이었다
장록은 키가 멀대같이 항아리 사이에서 자라고 꽃은 별로 예쁘지 않지만 꽃이 지고 열매로 된 진한 빨강 몽우리들은 따다가 꽃물로 손톱에 빨갛게 물 들이며 놀았다
봉숭아도 이쁘지만 부엌 수채와 장독대 사이 도랑 사이에는 해마다 채송화가 자라나 나의 이쁨을 독차지 하였다
매년 심지않은 채송화는 저절로 자라며 몸체에 비해 꽃의 크기가 크고 예쁘며 또 잘라서 심어도 곧 새로운 채송화가 자라나고 며칠동안 아침에 한꺼번에 화사하게 만발 때문에 내가 좋아하였고 가지를 잘라 이식을 하여 마당 한구석 작은 도랑옆에 점점 넓게 자리를 잡았다
예쁜 채송화를 고향 떠난 후에도 잊지 못하여 깨알보다 더 작은 채송화씨를 받기도 하고 또 가게에서 사다가 몇번이나 화분에 심어 봤건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랄까 . .
장독은 심부름으로 고추장이나 김치를 가지러 다닌 적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남자들보다는 음식을 만드는 여자들이 더 장독대에 친근하리라 생각한다
집집마다 있던 조상들이 애용하던 장독대는 아파트 문화로 자리잡게 된 뒤부터는 일부 개인건물 옥상 한쪽 구석탱이로 밀려나고 말았다
대신 대규모 기업용 장독과 현대적 인공적으로 만든 장독대가 없는 간장 고추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릴때 조선간장, 왜간장으로만 구분되던 것이 집간장(국간장) 진간장, 양조간장, 맛간장, 어간장 등으로 세분 되어지고 사용법도 각가 다르게 다양하다고 하니 세월이 많이 변한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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