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쓰와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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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12-04 19:04 조회 2,647 댓글 0본문
○ 계샤쓰와 고무신
아파트 수거함에 깨끗한 신발, 예쁜 옷가지들이 수북히 버려져 있고 그것을 외국인 노동자가 트럭으로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땐 옷은 귀해서 아까워 버릴 수 없고 찢어지면 꿰메고 닳으면 표시가 나지 않게끔 비슷한 천을 덧대어 꿰메 입었으며 추울떄는 두텁게 여러겹으로 껴 입었었다
그때도 눈은 많이 와서 집앞 길의 눈에 발이 쑥쑥 빠지기도 하였고 매우 추웠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추웠고 발이 시렸는데 쉬는 시간에는 교실 바깥 양지쪽 벽에 다들 나란히 기대어 서서 따뜻한 햇볕을 쐬기도 했다
내복이나 겉옷도 마찬가지로 찢어지거나 오래 입어서 닳아 헤어지면 바늘로 꿰메어 입었고 정 안되다 싶으면 대개 명절이 다가 올 무렵 새옷을 사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여자들이 시집올 때는 바느질은 기본이고 옷을 꿰메기 위하여 반짓고리가 있었고 집집마다 발로 구르는 재봉틀이 혼수품으로 자리를 잡았었다
초등학교 6학년쯤 겨울 겉옷은 모자가 달린 잠바 같은 것을 입었다
그옷은 단추로 잠그며 속에 스폰지가 들어있고 겉은 곤색의 엷은 나일론 계열의 얇은 천으로 불똥이 닿으면 구멍이 쉽게 났었으나 겉옷으로는 좀 따뜻했다
안쪽에 조금 터진 곳이 있으면 스폰지가 보였으며 심심하면 그 스폰지를 그냥 조금씩 뜯어 낼 수 있었고 그러다 보면 훵하니 빈 껍데기만 남게되고 . .
주로 초등학교 시절에만 입었었고 옷이름을 모르나 아마 남자애들은 무슨 옷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중학생부터는 추운 날에 교복위에 보통 지퍼로 잠그는 잠바를 덧 입었다
좀 따뜻하게 보이는 잠바를 나도 입었으면 좋으련만 . . 하고 생각을 했지만 중학교 들어가서도 사주지 않고 추운 날이면 좀 어리게 보이는 스폰지가 든 그런 옷을 입으라고 해서 할 수없이 입고 다녔다
그시절 안목에서 보면 요새 코트같이 긴 오리파카는 옛날 누비이불을 연상케하며 그때는 거지같이 누비이불을 겉에 걸치고 다닌다고 모두 쳐다보며 속으로 웃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같은 맥락으로 등산을 하지 않으면서 배낭을 많이 메고 다니는데 그때 그랬다면 그것도 또한 등산을 가나하고 비아냥 거리며 수상하게 쳐다 봤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시절 계샤쓰(스웨터)를 많이 입었다
계샤쓰만큼 따뜻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었다고 할까
팔기도 하였지만 주로 여자들이 손으로 짰었고 지금은 그것을 뜨게질이라고 한다
나도 누나들이 짜준 투박한 계샤쓰를 입었는데 사실 계샤쓰는 긴 한올의 털실로 오랜시간에 걸쳐 손으로 짜야하고 잘못하여 한 올이 풀리기 시작하면 도미노같이 전체 옷이 돌아가며 옷 자체가 해체되기도 했었다
신작로에 털실가게에 가서 누나들 털실 심부름을 한적이 있다
스웨터 짜는 기계가 들어와 신작로 비단집옆 등에 스웨터로 옷을 짜는 데가 두곳 있었다
대부분 내복위 바깥에 입는 윗도리를 짰고 아래내복, 털모자, 털실양말, 털실목도리, 털장갑 등을 짜서 입고 끼었었다
털실양말은 두꺼워 고무신 신을 때 중심잡기가 어렵고 좀 불편하나 그래도 많이 신고 다녔다
털실로 짠 옷들은 구멍이 송송하여 바람이 쉽게 들어오기 때문에 속에 내복을 잘 입지 않으면 겉에 그럴듯하게 좋아 보이는 계샤쓰도 그렇게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들 보기도 멋있어 입고 싶어 했었다
또한 아파트 신발수거함에는 좋은 신발도 마구 버려지고 있다
초등학교때 나는 졸업할 때까지 검정 고무신만 신고 다녔으니까 그때 운동화 신은 친구를 부러워했었다
조금 비싸기도 하고 고무신같이 비온 뒤 질퍽한 길에서 잘 미끌어지지 않고 좀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운동화는 천으로 되어있어 흙탕물에 빠지면 고무신보다 빨기가 쉽지 않은 단점이 일부 있었지만 . .
고무신은 아무래도 운동화보다 오래 신지 못하고 돌같은 곳을 잘못밟거나 오래되면 고무신이 찢어져 발고락이 나오기도 하고 발에 진흙이나 먼지, 모래가 들어와 발을 버린다
그러면 보통 비료푸대를 꿰메는 실이 질기어 푸대 실을 풀어 꿰메어 신었다
비가오면 벗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끈으로 신발위로 동여메어 신기도 했으며 또한 장난삼아 고무신 신고 그냥 흙탕물에 들어가 휘젖으며 다닐 수 있고 발이 젖지만 집이나 학교에 와서 빗물로 발을 씻어버리면 되고 . .
그때 여자들은 코빼기 고무신을 신었었나 ?
또 중학교에 들어가면 고무신을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그것은 학교 앞에서 복장단속을 많이 할 때였을 떄 이다
다 신은 고무신은 모아 두었다가 엿장시가 오면 그것으로 맛있는 엿을 사먹었었지 ㅎㅎ
리싸이클링이 되니까 친환경적이라고 할까 ?
우리는 보통 검정 고무신을 신었으며 흰색은 어른들이 신었다
또 흰 고무신은 등잔속에 오래 담가 놓으면 잘 지워지지 않지만 그런대로 지우개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경성고무, 태화고무신 회사가 서로 경쟁했던 것으로 생각난다
요즈음 좋은 신발들을 왜 버리나 했더니 오래 신어서 싫증이 난단다
옷과 신발은 수거하여 못사는 나라에 판다고 한다
참,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지 . .
요즘 풍족한 생활에 익숙하여 참지 못하고 싫증을 내며 낭비하는 인생들을 볼때 부쩍 어린 시절 그때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옴은 세월의 덧없음에 젖어서인가 보다 . . ^ ^
아파트 수거함에 깨끗한 신발, 예쁜 옷가지들이 수북히 버려져 있고 그것을 외국인 노동자가 트럭으로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땐 옷은 귀해서 아까워 버릴 수 없고 찢어지면 꿰메고 닳으면 표시가 나지 않게끔 비슷한 천을 덧대어 꿰메 입었으며 추울떄는 두텁게 여러겹으로 껴 입었었다
그때도 눈은 많이 와서 집앞 길의 눈에 발이 쑥쑥 빠지기도 하였고 매우 추웠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추웠고 발이 시렸는데 쉬는 시간에는 교실 바깥 양지쪽 벽에 다들 나란히 기대어 서서 따뜻한 햇볕을 쐬기도 했다
내복이나 겉옷도 마찬가지로 찢어지거나 오래 입어서 닳아 헤어지면 바늘로 꿰메어 입었고 정 안되다 싶으면 대개 명절이 다가 올 무렵 새옷을 사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여자들이 시집올 때는 바느질은 기본이고 옷을 꿰메기 위하여 반짓고리가 있었고 집집마다 발로 구르는 재봉틀이 혼수품으로 자리를 잡았었다
초등학교 6학년쯤 겨울 겉옷은 모자가 달린 잠바 같은 것을 입었다
그옷은 단추로 잠그며 속에 스폰지가 들어있고 겉은 곤색의 엷은 나일론 계열의 얇은 천으로 불똥이 닿으면 구멍이 쉽게 났었으나 겉옷으로는 좀 따뜻했다
안쪽에 조금 터진 곳이 있으면 스폰지가 보였으며 심심하면 그 스폰지를 그냥 조금씩 뜯어 낼 수 있었고 그러다 보면 훵하니 빈 껍데기만 남게되고 . .
주로 초등학교 시절에만 입었었고 옷이름을 모르나 아마 남자애들은 무슨 옷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중학생부터는 추운 날에 교복위에 보통 지퍼로 잠그는 잠바를 덧 입었다
좀 따뜻하게 보이는 잠바를 나도 입었으면 좋으련만 . . 하고 생각을 했지만 중학교 들어가서도 사주지 않고 추운 날이면 좀 어리게 보이는 스폰지가 든 그런 옷을 입으라고 해서 할 수없이 입고 다녔다
그시절 안목에서 보면 요새 코트같이 긴 오리파카는 옛날 누비이불을 연상케하며 그때는 거지같이 누비이불을 겉에 걸치고 다닌다고 모두 쳐다보며 속으로 웃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같은 맥락으로 등산을 하지 않으면서 배낭을 많이 메고 다니는데 그때 그랬다면 그것도 또한 등산을 가나하고 비아냥 거리며 수상하게 쳐다 봤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시절 계샤쓰(스웨터)를 많이 입었다
계샤쓰만큼 따뜻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었다고 할까
팔기도 하였지만 주로 여자들이 손으로 짰었고 지금은 그것을 뜨게질이라고 한다
나도 누나들이 짜준 투박한 계샤쓰를 입었는데 사실 계샤쓰는 긴 한올의 털실로 오랜시간에 걸쳐 손으로 짜야하고 잘못하여 한 올이 풀리기 시작하면 도미노같이 전체 옷이 돌아가며 옷 자체가 해체되기도 했었다
신작로에 털실가게에 가서 누나들 털실 심부름을 한적이 있다
스웨터 짜는 기계가 들어와 신작로 비단집옆 등에 스웨터로 옷을 짜는 데가 두곳 있었다
대부분 내복위 바깥에 입는 윗도리를 짰고 아래내복, 털모자, 털실양말, 털실목도리, 털장갑 등을 짜서 입고 끼었었다
털실양말은 두꺼워 고무신 신을 때 중심잡기가 어렵고 좀 불편하나 그래도 많이 신고 다녔다
털실로 짠 옷들은 구멍이 송송하여 바람이 쉽게 들어오기 때문에 속에 내복을 잘 입지 않으면 겉에 그럴듯하게 좋아 보이는 계샤쓰도 그렇게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들 보기도 멋있어 입고 싶어 했었다
또한 아파트 신발수거함에는 좋은 신발도 마구 버려지고 있다
초등학교때 나는 졸업할 때까지 검정 고무신만 신고 다녔으니까 그때 운동화 신은 친구를 부러워했었다
조금 비싸기도 하고 고무신같이 비온 뒤 질퍽한 길에서 잘 미끌어지지 않고 좀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운동화는 천으로 되어있어 흙탕물에 빠지면 고무신보다 빨기가 쉽지 않은 단점이 일부 있었지만 . .
고무신은 아무래도 운동화보다 오래 신지 못하고 돌같은 곳을 잘못밟거나 오래되면 고무신이 찢어져 발고락이 나오기도 하고 발에 진흙이나 먼지, 모래가 들어와 발을 버린다
그러면 보통 비료푸대를 꿰메는 실이 질기어 푸대 실을 풀어 꿰메어 신었다
비가오면 벗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끈으로 신발위로 동여메어 신기도 했으며 또한 장난삼아 고무신 신고 그냥 흙탕물에 들어가 휘젖으며 다닐 수 있고 발이 젖지만 집이나 학교에 와서 빗물로 발을 씻어버리면 되고 . .
그때 여자들은 코빼기 고무신을 신었었나 ?
또 중학교에 들어가면 고무신을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그것은 학교 앞에서 복장단속을 많이 할 때였을 떄 이다
다 신은 고무신은 모아 두었다가 엿장시가 오면 그것으로 맛있는 엿을 사먹었었지 ㅎㅎ
리싸이클링이 되니까 친환경적이라고 할까 ?
우리는 보통 검정 고무신을 신었으며 흰색은 어른들이 신었다
또 흰 고무신은 등잔속에 오래 담가 놓으면 잘 지워지지 않지만 그런대로 지우개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경성고무, 태화고무신 회사가 서로 경쟁했던 것으로 생각난다
요즈음 좋은 신발들을 왜 버리나 했더니 오래 신어서 싫증이 난단다
옷과 신발은 수거하여 못사는 나라에 판다고 한다
참,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지 . .
요즘 풍족한 생활에 익숙하여 참지 못하고 싫증을 내며 낭비하는 인생들을 볼때 부쩍 어린 시절 그때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옴은 세월의 덧없음에 젖어서인가 보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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