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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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10-04 22:41 조회 2,139 댓글 0본문
논에 벼가 고개를 숙이며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가을이 되었다
우리 모두 농촌 출신이라 잘 알고 있지만 기억에서 그냥 잊혀져 버릴까 아쉬움에 어렸던 그 시절의 그 곳 농촌으로 돌아가 본다
농촌에서는 모내기를 하고 나서도 벼가 익고 거둘때까지 농사꾼들은 할일이 참 많았었지
모 때우기, 농약주기, 논물대기, 피뽑기 그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농약주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채 등에 무거운 농약통을 짊어지고 오른손으로는 연신 펌프질을 하고 왼손은 농약을 좌우로 흔들며 이곳 저곳 푹푹 빠져 발을 떼기 힘든 수렁 논에서 논 전체를 빠진 곳이 없이 돌아 다니시면서 뿌리셨었다
농약을 주지 않으면 병충해(벼도열병, 흰잎마름병, 문고병, 애멸구, 흰잎나방) 로 인하여 한해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으로 잡던 땅개비 방아깨비도 병충해의 하나에 속하였다
또한 경지정리가 잘된 넓은 들판, 벼가 골고루 자라 만들어진 평평바다 위에 나있는 피는 멀리서 보아도 유난히 잘 보인다
피는 벼에 비하여 키가 훨씬 크고 색깔도 달라서 쉽게 알 수 있다
어느정도 자란 벼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피뽑는 것도 하나의 농사 일이었다
논 여기저기에 피바다가 되어있는 논을 보면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며 아무개 논인데 게으르기는 쯔쯔 . .
모내기철에 비하여 조금 자란 벼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나 논물을 관리하려면 하루 한번씩은 둘러봐야 하는데 자라서 무성한 볏잎이나 논둑에 난 풀이슬 때문에 고무신은 신으나 마나 하기 떄문에 맨발로 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풍부해진 방죽물은 흘러 보내는 도랑에 연결되는 논입구 물꼬만 잘 조절하면 된다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논에 가면서 한손으로 고무신을 들고 좁은 논둑길을 맨발로 가는데 뭔가 물컹하는게 발에 밟혀 움찔 놀라 폴짝 뛰어 건너가 돌아보니 논둑에 큰뱀 두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엉켜 있었는데 그위 가운데를 맨발로 밟았던 것 !
나중에 생각하니 뱀들도 웬 날벼락 이냐는듯 당황하여 내 발을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 된다 ㅎㅎㅎ
벼가 자라 꽃이 피고 낯알이 익어 무게를 견디다 못해 고개를 숙이면 벌판은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게 되는데
아침저녁으로 찬기운이 도는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인것 같다
나락을 벨때가 되면 모심기와 마찬가지로 놉을 한둘 얻던지 아니면 품앗이를 하였지만 우리집은 식구들끼리만 하니 익숙치 않는 나도 거들 수 밖에 . .
나락 한 두포기씩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낫을 벼 뒤로부터 쓱싹 쓱싹 베어서 내 뒤로 놓는 것을 몇번 한 다음 베어낸 벼 몇가닥으로 벼를 한다발씩 묶어 놓고 또 다시 앞으로 베어 나아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베다가 낫이 무디어지면 가져온 숫돌로 쓱쓱 문질러 갈고 또 나락을 베다가 낫으로 손을 베게되면 헝겊으로 동여매고 . .
처음에는 저렇게 많은 논의 벼를 어떻게 다 베나? 하고 막막하기 그지 없었지만 팔, 허리, 다리, 저리는 고통을 참고 또 참다보면 바짝 서있는 벼의 면적이 조금씩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느껴며 고생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힘들지만 기다리던 새참과 점심이 와서 논둑에 둘러 앉아 같이 먹었던 꿀맛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지금은 저 넓은 논의 나락을 베어갈 수 있는 만큼 다 베어 가라고 하여도 힘이들어 금방 포기를 해버렸을 것이 틀림 없지만 그때에는 식구들 모두 달려들어 이를 악물고 해가져도 밤새 베었을 거라는 생각 든다
벼는 그렇게 해서 물이없는 논바닥에 마를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그때는 다들 꼭 그렇게 해야만 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지금은 모심는 것도 이앙기로 따라 다니며, 벼베는 것은 콤바인으로 앉아서, 피뽑기는 잡초방제약 뿌림으로 하고, 농약주기는 것은 등에 엔진을 짊어지고, 경운기 트럭 등에 엔진과 약통을 실고 호스를 끌고 다니며 멀리 분사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고, 요즈음에는 드론을 이용하여 하늘위에서 분사하는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고 한다
농약주기가 좀 어렵지 어릴때 삽, 괭이, 소시랑, 호미, 낫, 지게 등을 사용하여 농사를 맨몸으로 짓던 그때에 비하면 훨씬 쉬워진 것 같다
요즘 다른 먹거리가 많아져서 쌀만을 주식으로 하는 시대의 논농사만을 위주로 하던 농자천하지대본은 그 의미가 좀 변해진것 같지 않나요 ?
우리 모두 농촌 출신이라 잘 알고 있지만 기억에서 그냥 잊혀져 버릴까 아쉬움에 어렸던 그 시절의 그 곳 농촌으로 돌아가 본다
농촌에서는 모내기를 하고 나서도 벼가 익고 거둘때까지 농사꾼들은 할일이 참 많았었지
모 때우기, 농약주기, 논물대기, 피뽑기 그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농약주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채 등에 무거운 농약통을 짊어지고 오른손으로는 연신 펌프질을 하고 왼손은 농약을 좌우로 흔들며 이곳 저곳 푹푹 빠져 발을 떼기 힘든 수렁 논에서 논 전체를 빠진 곳이 없이 돌아 다니시면서 뿌리셨었다
농약을 주지 않으면 병충해(벼도열병, 흰잎마름병, 문고병, 애멸구, 흰잎나방) 로 인하여 한해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으로 잡던 땅개비 방아깨비도 병충해의 하나에 속하였다
또한 경지정리가 잘된 넓은 들판, 벼가 골고루 자라 만들어진 평평바다 위에 나있는 피는 멀리서 보아도 유난히 잘 보인다
피는 벼에 비하여 키가 훨씬 크고 색깔도 달라서 쉽게 알 수 있다
어느정도 자란 벼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피뽑는 것도 하나의 농사 일이었다
논 여기저기에 피바다가 되어있는 논을 보면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며 아무개 논인데 게으르기는 쯔쯔 . .
모내기철에 비하여 조금 자란 벼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나 논물을 관리하려면 하루 한번씩은 둘러봐야 하는데 자라서 무성한 볏잎이나 논둑에 난 풀이슬 때문에 고무신은 신으나 마나 하기 떄문에 맨발로 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풍부해진 방죽물은 흘러 보내는 도랑에 연결되는 논입구 물꼬만 잘 조절하면 된다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논에 가면서 한손으로 고무신을 들고 좁은 논둑길을 맨발로 가는데 뭔가 물컹하는게 발에 밟혀 움찔 놀라 폴짝 뛰어 건너가 돌아보니 논둑에 큰뱀 두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엉켜 있었는데 그위 가운데를 맨발로 밟았던 것 !
나중에 생각하니 뱀들도 웬 날벼락 이냐는듯 당황하여 내 발을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 된다 ㅎㅎㅎ
벼가 자라 꽃이 피고 낯알이 익어 무게를 견디다 못해 고개를 숙이면 벌판은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게 되는데
아침저녁으로 찬기운이 도는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인것 같다
나락을 벨때가 되면 모심기와 마찬가지로 놉을 한둘 얻던지 아니면 품앗이를 하였지만 우리집은 식구들끼리만 하니 익숙치 않는 나도 거들 수 밖에 . .
나락 한 두포기씩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낫을 벼 뒤로부터 쓱싹 쓱싹 베어서 내 뒤로 놓는 것을 몇번 한 다음 베어낸 벼 몇가닥으로 벼를 한다발씩 묶어 놓고 또 다시 앞으로 베어 나아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베다가 낫이 무디어지면 가져온 숫돌로 쓱쓱 문질러 갈고 또 나락을 베다가 낫으로 손을 베게되면 헝겊으로 동여매고 . .
처음에는 저렇게 많은 논의 벼를 어떻게 다 베나? 하고 막막하기 그지 없었지만 팔, 허리, 다리, 저리는 고통을 참고 또 참다보면 바짝 서있는 벼의 면적이 조금씩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느껴며 고생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힘들지만 기다리던 새참과 점심이 와서 논둑에 둘러 앉아 같이 먹었던 꿀맛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지금은 저 넓은 논의 나락을 베어갈 수 있는 만큼 다 베어 가라고 하여도 힘이들어 금방 포기를 해버렸을 것이 틀림 없지만 그때에는 식구들 모두 달려들어 이를 악물고 해가져도 밤새 베었을 거라는 생각 든다
벼는 그렇게 해서 물이없는 논바닥에 마를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그때는 다들 꼭 그렇게 해야만 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지금은 모심는 것도 이앙기로 따라 다니며, 벼베는 것은 콤바인으로 앉아서, 피뽑기는 잡초방제약 뿌림으로 하고, 농약주기는 것은 등에 엔진을 짊어지고, 경운기 트럭 등에 엔진과 약통을 실고 호스를 끌고 다니며 멀리 분사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고, 요즈음에는 드론을 이용하여 하늘위에서 분사하는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고 한다
농약주기가 좀 어렵지 어릴때 삽, 괭이, 소시랑, 호미, 낫, 지게 등을 사용하여 농사를 맨몸으로 짓던 그때에 비하면 훨씬 쉬워진 것 같다
요즘 다른 먹거리가 많아져서 쌀만을 주식으로 하는 시대의 논농사만을 위주로 하던 농자천하지대본은 그 의미가 좀 변해진것 같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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