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범신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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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江景 방문기
하얀, 분홍꽃과 푸른색 잎파리 함께 짙은 빨간 철쭉이 찐하고 요란하게 피는 날 바람도 쌀랑쌀랑, 나도 버스를 올라 탔다
박범신 소설은 읽었는지 기억없고 그날 다른 약속도 없기에 친구의 권유를 받고 막연한 호기심에 사실 그리 기대하지 않았었다
논산은 많이 지나 다니고 오래 전 기차에서 보이는 남성성냥공장, 연무대훈련소 외에는 그저 그랬을거라 짐작 됐으나 그곳은 논산이 아니라 강경이니 조금 궁금해졌다
강경에서 통학했던 친구가 있었고 강경상고가 유명했으나 조그마한 시골 강경 젓갈이 전국적으로 도대체 왜 이름을 냈을까 생각했다
그저 작은 강으로 연결되는 뱃길을 따라서 작은 바닷배가 드나들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길옆 여기저기 커다란 간판의 큰 젓갈점이 많이 보이는 데도 아직 퀘스천마크다
점심식사로 나온 칼국수와 보리밥은 그저 시골밥상이었고 나와 걷는 길에 작은 개천과 물막이 수문이 나오길래 이곳으로 배가 드나 들었나 하며 속으로 실망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렇게 쪼그라들고 변했겠지 . . 하며
작은 어덕에 기념관이 있었고 그 옆으로 올라 갔다
봉화대 같이 우뚝 솓아 근방을 내려다 볼수 있어서 처음 와보는 곳이기에 보이는 데까지 여기 저기 두리번 거렸다
저만치 건너편에 넓은 곳에 마치 하얀 소금을 쌓아 놓은 것 같아서 아니 ! 이런 곳에 염전이 . . 하며 사진에 담았다
근데 염전이 아니고 비닐하우스 단지란다
거기서 사진들을 박고 있는데 넓은 평야 왼편으로 작은 강 같은 것이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 오면서 바라 보니 그건 그저 작은 강이 아니었다
내가 살던 시골 芙蓉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하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넓은 강이고 그 왼쪽으로 갈수록 더 넓은 강에 강가 푸른 빛이 운치를 더하며 멋이 있었다
아아 !
강경 젓갈이 그냥 만들어 지는게 아니었구나, 이 넓은 강을 따라서 그 옛날 큰 배들이 많이 드나 들었겠지 하며 깨달았다
문학관에 와보니 계단 같은 강의장이 벌써 차 있고 그 앞에 나이 드신 처음 보는 분이 계셨는데 앞쪽이 비어 있어 얼른 자리를 잡았다
조금 후 그 분이 소개를 하고 또한 소설, 시를 내용으로 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가사가 전달이 잘 안되는 것 같다
작가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소개 하는데 점점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저 유명한 소설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다
방금 보고 온 큰강 옆에 살며 이곳에서 통학했다고 하니 나도 기차 통학을 오래 했기에 여기가 어디 쯤일까 궁금하여 휴대폰 구글 지도를 꺼내 보는데 구글 지도는 철로 표시와 강경역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질문 답변이 있다고 하면서 소개가 그렇게 끝나는가 보다 하며 소설가의 여정을 짧은 시간 듣고 마무리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본심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가 하이라이트였다
답변 속에 그가 하고 싶은 말, 소설가로서 자라나는 과정과 함께 독자들에 다가가는 과정 등을 알려 주는데 그가 다녔던 과정들이 일부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어서 짜릿하게 더욱 다가 오는 것 같다
학교 간다고 집을 나서 저쪽에 보이는 드넓은 강가의 갈대 숲 속에서 도시락을 까 먹으며 종일 책을 읽었고 이리 문학서림에서 아침 책을 빌려 공부시간 내내 그걸 다 읽어 저녁에 반납하고, 우리들은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창인동을 지나 오면서 그저 호기심반으로 흘낏하며 쳐다 보곤 하고 싱숭생숭하던 마음을 달래며 지나 왔었는데 거기서 화투를 쳤었다니 과히 그의 행적은 감히 넘을 수 없는 또라이나 기인의 행동처럼 생각되었다
역시 걸맞는 유명한 소설가로서 풍부한 경험과 상상력에 의한 소재를 가진 그가 하는 말에 깊이가 있었고 우리 맘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또한 그의 나름대로 인생을 바라 보는 시각이 있어 방향을 제시하며 삼십을 세번으로 나누어 나이가 든 우리에게도 아직 가능하다는 희망을 이야기 해주었다
백명이 넘는 친구들이 다들 멍하고 조용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숨을 죽이며 듣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위대한 소설가는 그렇게 태어나는구나 하고 깨달었으며 기대어 명상하고 있는 용균 친구 뒤 강의장 유리창 너머의 콘크리트 벽 위 뒷부분 잔디가 나풀거리고 그 뒤편에 있는 나무들도 보이면서 그 너머 금강 물결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때 넓은 강가의 갈대 속에 숨어서 자기가 장래 소설가가 될 줄도 모른 채 책을 읽으며 책 속에 빠져 있던 그를 생각하여 본다
둘둘산행의 대화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메모 했지만 다 없앴다고 하는 친구가 들려 주는 이야기와 같이 누구나 가슴 속엔 시인이 살고 있고 시인의 친구가 살고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바람에 메말라 사막이 되더라도 눈물이 메말라 소금밭’으로 되어버린 우리들을 선배님이 일깨워 주는 듯하다
버스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대화, 도착하니 먼곳 대구에서 찾아와 반갑게 마주한 윤대, 다른 친구는 아버지의 시골 중학교에 설립 등 잠깐 사이에 여러 고향 이야기를 들려 주었었고, 처음 보는 듯하나 윤곽으로 옛 모습을 추정하여 알아 볼 수 있었던 오래 만에 만난 친구들이 참 반가웠다
간단한 점심과는 달리 저녁 회식에서는 커다란 고기를 썩썩 썰어 익혀 먹는 풍족을 느끼며 한쪽에서는 부라보를 연신 외쳐 대고 있는데 오늘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 와 다시 지도를 펴 보니 금강은 대청댐에서 흘러 내리는 신탄진강과 대전시내를 거쳐 나오는 갑천이 합쳐지고 다시 부강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쳐지면서 세종시를 통과하고 공주를 거치며 부여 백마강을 돌아 이곳 강경에서 논산천과 합쳐 지면서 더 풍부해진다
작가가 써준 친필 메모 한자 江景에서 삼각지 같이 논산천과 합쳐지면서 더 넓어지는 멋있는 江의 景致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를 깨달았다
물은 강경포구에서 더 흘러가면서 성당포구, 웅포, 나포로 전라북도에 미치며 군산, 장항을 만들고 그 옛날 무거운 쌀가마는 나르기 힘들었을 때 두둥실 배로 역할을 톡톡히 했고 부지런히 강경포구를 배들이 들락거리며 새우 등 바닷고기와 젓거리를 날랐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또한 그 옛날 백제가 멸망한 뒤 불교와 학문, 기술을 전파해 준 형님 큰나라를 수복하기 위하여 일본이 군대를 보내 왔지만 이곳까지 미치지 못하고 금강 하구에서 패배했다고 한 금강에 관련한 안타까운 일화도 생각이 나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그 언저리 갈대 숲에서 자라며 소설가의 싹을 키우던 선배님은 우리들에게 금강이 만들어 준 선물 임에 틀림이 없다
준비하느라 고생한 친구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하얀, 분홍꽃과 푸른색 잎파리 함께 짙은 빨간 철쭉이 찐하고 요란하게 피는 날 바람도 쌀랑쌀랑, 나도 버스를 올라 탔다
박범신 소설은 읽었는지 기억없고 그날 다른 약속도 없기에 친구의 권유를 받고 막연한 호기심에 사실 그리 기대하지 않았었다
논산은 많이 지나 다니고 오래 전 기차에서 보이는 남성성냥공장, 연무대훈련소 외에는 그저 그랬을거라 짐작 됐으나 그곳은 논산이 아니라 강경이니 조금 궁금해졌다
강경에서 통학했던 친구가 있었고 강경상고가 유명했으나 조그마한 시골 강경 젓갈이 전국적으로 도대체 왜 이름을 냈을까 생각했다
그저 작은 강으로 연결되는 뱃길을 따라서 작은 바닷배가 드나들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길옆 여기저기 커다란 간판의 큰 젓갈점이 많이 보이는 데도 아직 퀘스천마크다
점심식사로 나온 칼국수와 보리밥은 그저 시골밥상이었고 나와 걷는 길에 작은 개천과 물막이 수문이 나오길래 이곳으로 배가 드나 들었나 하며 속으로 실망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렇게 쪼그라들고 변했겠지 . . 하며
작은 어덕에 기념관이 있었고 그 옆으로 올라 갔다
봉화대 같이 우뚝 솓아 근방을 내려다 볼수 있어서 처음 와보는 곳이기에 보이는 데까지 여기 저기 두리번 거렸다
저만치 건너편에 넓은 곳에 마치 하얀 소금을 쌓아 놓은 것 같아서 아니 ! 이런 곳에 염전이 . . 하며 사진에 담았다
근데 염전이 아니고 비닐하우스 단지란다
거기서 사진들을 박고 있는데 넓은 평야 왼편으로 작은 강 같은 것이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 오면서 바라 보니 그건 그저 작은 강이 아니었다
내가 살던 시골 芙蓉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하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넓은 강이고 그 왼쪽으로 갈수록 더 넓은 강에 강가 푸른 빛이 운치를 더하며 멋이 있었다
아아 !
강경 젓갈이 그냥 만들어 지는게 아니었구나, 이 넓은 강을 따라서 그 옛날 큰 배들이 많이 드나 들었겠지 하며 깨달았다
문학관에 와보니 계단 같은 강의장이 벌써 차 있고 그 앞에 나이 드신 처음 보는 분이 계셨는데 앞쪽이 비어 있어 얼른 자리를 잡았다
조금 후 그 분이 소개를 하고 또한 소설, 시를 내용으로 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가사가 전달이 잘 안되는 것 같다
작가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소개 하는데 점점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저 유명한 소설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다
방금 보고 온 큰강 옆에 살며 이곳에서 통학했다고 하니 나도 기차 통학을 오래 했기에 여기가 어디 쯤일까 궁금하여 휴대폰 구글 지도를 꺼내 보는데 구글 지도는 철로 표시와 강경역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질문 답변이 있다고 하면서 소개가 그렇게 끝나는가 보다 하며 소설가의 여정을 짧은 시간 듣고 마무리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본심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가 하이라이트였다
답변 속에 그가 하고 싶은 말, 소설가로서 자라나는 과정과 함께 독자들에 다가가는 과정 등을 알려 주는데 그가 다녔던 과정들이 일부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어서 짜릿하게 더욱 다가 오는 것 같다
학교 간다고 집을 나서 저쪽에 보이는 드넓은 강가의 갈대 숲 속에서 도시락을 까 먹으며 종일 책을 읽었고 이리 문학서림에서 아침 책을 빌려 공부시간 내내 그걸 다 읽어 저녁에 반납하고, 우리들은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창인동을 지나 오면서 그저 호기심반으로 흘낏하며 쳐다 보곤 하고 싱숭생숭하던 마음을 달래며 지나 왔었는데 거기서 화투를 쳤었다니 과히 그의 행적은 감히 넘을 수 없는 또라이나 기인의 행동처럼 생각되었다
역시 걸맞는 유명한 소설가로서 풍부한 경험과 상상력에 의한 소재를 가진 그가 하는 말에 깊이가 있었고 우리 맘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또한 그의 나름대로 인생을 바라 보는 시각이 있어 방향을 제시하며 삼십을 세번으로 나누어 나이가 든 우리에게도 아직 가능하다는 희망을 이야기 해주었다
백명이 넘는 친구들이 다들 멍하고 조용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숨을 죽이며 듣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위대한 소설가는 그렇게 태어나는구나 하고 깨달었으며 기대어 명상하고 있는 용균 친구 뒤 강의장 유리창 너머의 콘크리트 벽 위 뒷부분 잔디가 나풀거리고 그 뒤편에 있는 나무들도 보이면서 그 너머 금강 물결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때 넓은 강가의 갈대 속에 숨어서 자기가 장래 소설가가 될 줄도 모른 채 책을 읽으며 책 속에 빠져 있던 그를 생각하여 본다
둘둘산행의 대화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메모 했지만 다 없앴다고 하는 친구가 들려 주는 이야기와 같이 누구나 가슴 속엔 시인이 살고 있고 시인의 친구가 살고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바람에 메말라 사막이 되더라도 눈물이 메말라 소금밭’으로 되어버린 우리들을 선배님이 일깨워 주는 듯하다
버스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대화, 도착하니 먼곳 대구에서 찾아와 반갑게 마주한 윤대, 다른 친구는 아버지의 시골 중학교에 설립 등 잠깐 사이에 여러 고향 이야기를 들려 주었었고, 처음 보는 듯하나 윤곽으로 옛 모습을 추정하여 알아 볼 수 있었던 오래 만에 만난 친구들이 참 반가웠다
간단한 점심과는 달리 저녁 회식에서는 커다란 고기를 썩썩 썰어 익혀 먹는 풍족을 느끼며 한쪽에서는 부라보를 연신 외쳐 대고 있는데 오늘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 와 다시 지도를 펴 보니 금강은 대청댐에서 흘러 내리는 신탄진강과 대전시내를 거쳐 나오는 갑천이 합쳐지고 다시 부강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쳐지면서 세종시를 통과하고 공주를 거치며 부여 백마강을 돌아 이곳 강경에서 논산천과 합쳐 지면서 더 풍부해진다
작가가 써준 친필 메모 한자 江景에서 삼각지 같이 논산천과 합쳐지면서 더 넓어지는 멋있는 江의 景致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를 깨달았다
물은 강경포구에서 더 흘러가면서 성당포구, 웅포, 나포로 전라북도에 미치며 군산, 장항을 만들고 그 옛날 무거운 쌀가마는 나르기 힘들었을 때 두둥실 배로 역할을 톡톡히 했고 부지런히 강경포구를 배들이 들락거리며 새우 등 바닷고기와 젓거리를 날랐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또한 그 옛날 백제가 멸망한 뒤 불교와 학문, 기술을 전파해 준 형님 큰나라를 수복하기 위하여 일본이 군대를 보내 왔지만 이곳까지 미치지 못하고 금강 하구에서 패배했다고 한 금강에 관련한 안타까운 일화도 생각이 나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그 언저리 갈대 숲에서 자라며 소설가의 싹을 키우던 선배님은 우리들에게 금강이 만들어 준 선물 임에 틀림이 없다
준비하느라 고생한 친구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 다음글백제문화 2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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