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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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발소
나이 70 이면 563 km 머리카락이 자라고 37 m 손톱이 자란다고 한다
머리는 주기적으로 이발하지 않으면 563km 를 자라는데 길게 돌돌 말아 다니며 옛 어른같이 상투를 틀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 정도는 이발소에 가야하고 이발사 아저씨와 인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돌아보니 옛날에 비하며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 물건 판매, 서비스 행태가 엄청 변화 된데 비하여 이발소는 우리들 60년대 어렸을 때 그 모습과 유사하며 거의 그대로 멈춘 듯하다
그것은 이발소에 들어가면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의 분위기가 그렇고 옛날과 거의 같은 넓은 거울, 뒤로 제껴지는 이발소 의자와 세면대가 그렇다
그러나 달라진 면도 많다
먼저 의자 옆에 길다란 가죽 띠를 달아 놓고 쓱싹 쓱싹 문지르며 면도칼 갈던 것이 사라졌다
가장 많이 변화 된 것은 역시 이발 기계다
면도칼이야 잘 안 들으면 이발사가 힘드니까 날 세우려 가죽에 문지르니 못 느꼈겠지만, 이발기계는 완전 수동식 가위 원리로 잡고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머리카락이 잘라지므로 우리들이 바로 느끼게 만든다
기계가 안 좋다거나 이발사가 서투르면 머리 깍는 도중 머리털이 뜽키고 마치 몇가닥의 머리카락을 기계가 쥐어 뜯는 듯한 아픔을 60년대를 지내 온 우리 세대는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머리 형태는 가위로 다듬는 상고머리가 있었지만 시골 어린매들은 박박 깍는 편이었다
이제 심플한 전동 이발기가 "윙"소리를 내고 약간 진동음이 거슬리지만 조금 간지러울 뿐이다
또 한가지는 이발소에 다녀 오면 더 젊어지는 점이다
머리를 잘라주고 깨끗하게 면도해 주니 더 멋있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60년대 않던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쪽같이 감추어 주며 젊어지게 만드는데 늘 함께 지내는 친구도 잘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아직 한참 젊은 청춘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발소 이용자 중 젊은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보기 힘들다
젊은이들은 대개 고지식한 머리 모습이 맘에 안들어 미장원으로 간다고 한다
주로 나이가 어느 정도 드신 분들이 오는데 혹시 세대가 바뀌면 이발소라는 곳도 혹시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장원이던 이발소던 선택하는 것도 자유의 하나이며 또한 어느 이발소로 가느냐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함께 다니다가 이발비를 주면 내가 가고 싶던 이발소를 찾아서 갔는데 그때 조그마한 자유를 속으로 슬며시 느꼈었다
그러나 요즘은 오래 전부터 다니던 이발소로 다니지만 가끔 다른 이발소로 갈 때는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 .
동네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이발사가 잘 대해 주며 잘 깍아 주기도 하지만 특히 나와 정치 성향이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계엄사태에 관해서도 생각이 같았다
이발사는 늘 TV 뉴스를 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의견들을 들으면서 정치에 관한 판단도 바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정치에 관한 문제는 늘 숨쉬고 들어 마시는, 없으면 안되는 공기처럼 생각된다
우리 같은 소시민도 정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되면 기분이 영 좋지 않고 마치 답답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으며, 순리대로 제대로 진행된다고 생각 되면 괜히 그날 하루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기도 하니까 . .
정치 문제에 관한 한 아무데서나, 아무한테나, 잘 아는 친구하고도 말하기를 망설이고 꺼려하며 카톡방이나 밴드에서도 터부시되고 있는데 반하여 그곳에 가면 친절하게 대해 주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그렇게 마음을 터 놓고 정치라는 것을 시원하게 이야기 할수 있어 좋다
언제나 우리들은 극한 대립하지 않고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며 점잖게 정치에 관하여 성숙한 사회처럼 서로 토론할 수 있는 날이 찾아 올 수 있는 것일까 ?
한편 대머리 친구들이 이발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 그 한올 한올 소중한 머리카락을 어느 단골 이발소에서 정성스럽게, 조심스럽게 다루어 손질 해주는지 그것도 궁금하기도 하다
그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고 이발소는 잠시 지나가는 정거장과 같다
그리고 우리 머리카락은 계속 또 자란다
나이 70 이면 563 km 머리카락이 자라고 37 m 손톱이 자란다고 한다
머리는 주기적으로 이발하지 않으면 563km 를 자라는데 길게 돌돌 말아 다니며 옛 어른같이 상투를 틀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 정도는 이발소에 가야하고 이발사 아저씨와 인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돌아보니 옛날에 비하며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 물건 판매, 서비스 행태가 엄청 변화 된데 비하여 이발소는 우리들 60년대 어렸을 때 그 모습과 유사하며 거의 그대로 멈춘 듯하다
그것은 이발소에 들어가면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의 분위기가 그렇고 옛날과 거의 같은 넓은 거울, 뒤로 제껴지는 이발소 의자와 세면대가 그렇다
그러나 달라진 면도 많다
먼저 의자 옆에 길다란 가죽 띠를 달아 놓고 쓱싹 쓱싹 문지르며 면도칼 갈던 것이 사라졌다
가장 많이 변화 된 것은 역시 이발 기계다
면도칼이야 잘 안 들으면 이발사가 힘드니까 날 세우려 가죽에 문지르니 못 느꼈겠지만, 이발기계는 완전 수동식 가위 원리로 잡고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머리카락이 잘라지므로 우리들이 바로 느끼게 만든다
기계가 안 좋다거나 이발사가 서투르면 머리 깍는 도중 머리털이 뜽키고 마치 몇가닥의 머리카락을 기계가 쥐어 뜯는 듯한 아픔을 60년대를 지내 온 우리 세대는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머리 형태는 가위로 다듬는 상고머리가 있었지만 시골 어린매들은 박박 깍는 편이었다
이제 심플한 전동 이발기가 "윙"소리를 내고 약간 진동음이 거슬리지만 조금 간지러울 뿐이다
또 한가지는 이발소에 다녀 오면 더 젊어지는 점이다
머리를 잘라주고 깨끗하게 면도해 주니 더 멋있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60년대 않던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쪽같이 감추어 주며 젊어지게 만드는데 늘 함께 지내는 친구도 잘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아직 한참 젊은 청춘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발소 이용자 중 젊은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보기 힘들다
젊은이들은 대개 고지식한 머리 모습이 맘에 안들어 미장원으로 간다고 한다
주로 나이가 어느 정도 드신 분들이 오는데 혹시 세대가 바뀌면 이발소라는 곳도 혹시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장원이던 이발소던 선택하는 것도 자유의 하나이며 또한 어느 이발소로 가느냐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함께 다니다가 이발비를 주면 내가 가고 싶던 이발소를 찾아서 갔는데 그때 조그마한 자유를 속으로 슬며시 느꼈었다
그러나 요즘은 오래 전부터 다니던 이발소로 다니지만 가끔 다른 이발소로 갈 때는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 .
동네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이발사가 잘 대해 주며 잘 깍아 주기도 하지만 특히 나와 정치 성향이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계엄사태에 관해서도 생각이 같았다
이발사는 늘 TV 뉴스를 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의견들을 들으면서 정치에 관한 판단도 바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정치에 관한 문제는 늘 숨쉬고 들어 마시는, 없으면 안되는 공기처럼 생각된다
우리 같은 소시민도 정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되면 기분이 영 좋지 않고 마치 답답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으며, 순리대로 제대로 진행된다고 생각 되면 괜히 그날 하루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기도 하니까 . .
정치 문제에 관한 한 아무데서나, 아무한테나, 잘 아는 친구하고도 말하기를 망설이고 꺼려하며 카톡방이나 밴드에서도 터부시되고 있는데 반하여 그곳에 가면 친절하게 대해 주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그렇게 마음을 터 놓고 정치라는 것을 시원하게 이야기 할수 있어 좋다
언제나 우리들은 극한 대립하지 않고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며 점잖게 정치에 관하여 성숙한 사회처럼 서로 토론할 수 있는 날이 찾아 올 수 있는 것일까 ?
한편 대머리 친구들이 이발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 그 한올 한올 소중한 머리카락을 어느 단골 이발소에서 정성스럽게, 조심스럽게 다루어 손질 해주는지 그것도 궁금하기도 하다
그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고 이발소는 잠시 지나가는 정거장과 같다
그리고 우리 머리카락은 계속 또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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