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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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단체방에 올린 낳고 키워주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부곡에 공감하며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도 눈물이 자꾸 나오는데 . . 후회 같기도 하다
어릴때 우리집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동안 바쁘게 살면서 세월 속에서 묻혀 사라져 가던 것들인데 기억의 구석에서 비집고 나오며 그런 사실들을 마냥 잊어 버리고 싶지는 않다
진즉 애들의 아버지가 된 나도 이 시점에 서서 우리 아버지 마음으로 돌아 가본다
그 옛날 아버지는 여느 보통 사람처럼 우리 어머니와 결혼하여 다섯 자매를 낳고 오랫동안 단란했던 시절을 보냈었다
비록 가난했으나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주어진 작은 논밭을 가꾸고 남의 품삯 일도 하는 평범한 시골 농사꾼이셨다
텃밭에 딸기, 까지를 심고, 밭고랑 가에 옥수수를 심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한바퀴 돌며 심은 배추 무우와 함께 그들이 익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나의 일상이었다
또한 우물가에 단수수를 나란히 심어 단수수 씨알이 거무스레 해지면 그늘에 멍석을 피고서 길다란 단수수 마디 마디를 도막내어 나눠 주면서 제일 맛있는 가운데 도막은 살그머니 나의 차지, 누나들이랑 여름 한철 달콤한 물이 입안에서 줄줄 씹히는 주념부리를 맛 볼수 있게 해주셨다
동네에 과수원이 많지만 돈없어 과일 구경하기가 어려웠는데도 추석날 푸르딩딩한 감 한 바구니를 사서 짊어지고 오셨는데 그런 빛깔의 감도 보기 보다 훨씬 달고 맛이 있어서 식구들이 둘러 앉아 아버지 덕분에 맛있고 즐겁게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 .
아버지는 보리베기, 모심기 벼베기 할 때 동생이 있는 데도 막걸리, 담배 심부름은 꼭 나한테 시키셨다
함께 누에 키울 때도 뽕잎을 주면 누에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뽕잎을 씹어 먹는 모양이 재미있었다
농사철은 항상 바쁘지만, 겨울 되고 농사일이 없어지면 찬 마루에 앉아 새끼를 꼬시고, 나도 옆에 앉아서 꼬고, 작은 방에서 가마니 짜면 나도 엄마, 누나들 사이에서 지푸락을 끼우는 잣대질을 하였고 쿵쾅쿵쾅 내려 치는 것은 아버지가 몫이셨고, 농협에 실고 가서 수매하는 것을 따라가서 구경했다
그래도 농한기에는 시간이 많아 아버지 연배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즐기면서 화투를 치는 노름방에도 가끔 나가셨다
시골 동네지만 노름방은 때로는 판이 점점 커지며 패가망신하고 동네 식구 모두가 야반 도주한 것도 보았다
농사철에는 다른 농부처럼 땀 흘리며 일 하시고 막걸리를 드시며 담배도 피우셨고 성실하게 농사 일을 하셨지만 일요일 어머니는 차려입고 늘 교회에 나가시고 나도 다녔다
중학교 때쯤 동네 교회가 둘로 갈라지며 부흥회도 자주 열렸는데 그곳에 어머니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열리는 부흥회도 걸어서 자의반 타의반 따라가며 참석하게 되었다
거기는 많은 전도사들 마다 다가오는 이천년 곧 말세가 되니 회개하라고 외치며 강단에서 재림, 휴거를 부르짖었고 나도 눈물 흘리는 통성 기도에 참여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으며 아버지의 노름방에 가시는 것을 계기로 집안에 불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회개하고 지옥불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어머니 특유의 목소리를 높혔다
그 뒤로 점차 노름방에 나가지 않았으나 교회에 나가고 죄를 회개하여 구원 받아야 한다고 담배 피는 것도 구박하였는데 그 뒤로 아버지는 대응하지 않고 점차 말수도 더 적어지셨다
그리고 나중에는 겨울에 새끼를 꼬지 않고 가마니도 짜지 않으셨다
집안에서 큰소리가 나니 믿음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오로지 전도 사명감을 우선시 하는 어머니에게 잘못이 있다고 점차 크면서 확신하게 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웃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고 알고 있을 교인들이나 목사님 조차 모른 척하는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전기 없이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면서 두 누나들 도움으로 고등학교에 간신히 다닐수 있었다
고3 때 다들 목표로 했던 한전 시험이 없어져 친구들이 전기주임기술자 자격시험을 준비하는데 나도 여름 방학때 부채로 더위를 쫒고 공부하며 비지땀을 흘렸었다
몇 친구와 함께 합격한 것을 알게 되었고 선생님은 들뜬 나를 수업 도중에 집으로 보내 주며 식구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릴 수 있게 배려하여 주셨다
집에 가보니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있었는데 합격 소식을 알렸건만 아버지와 식구들 모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고 더 물어 보지도 않아 나는 그냥 식구들과 함께 고구마를 마저 캤다
아버지는 자신의 슬픔에 빠져 아들의 노력이나 희망에 대하여 관심 가질 여력 없고 어머니도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 전부터 아버지는 조금씩 아프셨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었고 점점 깊어졌지만 동네에 병원이 없고 집안 형편 상 도시로 진료 받으러 갈 엄두를 못 냈다
그해 겨울, 아버지는 삶에 대한 의지가 더 없어지고 병이 깊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의 죽음을 예견하셨는지 나중에는 차가운 작은 방으로 누운 자리를 옮기셨고 이듬해 초 내가 공고를 졸업하는 다음 달 돌아 가셨다
졸업하고 나서 따논 자격증 덕택으로 6개월 후 전매청에 취업하게 된다
그곳에 가니 아버지 담배 심부름으로 봉초를 손에 들고 오면서 늘 맡았던 봉초 냄새가 근무하는 공장 안에 가득했고 그 냄새 속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매달 월급날이면 '진달래'라는 담배 한갑이 그냥 나오는데 그 담배를 받으면 담배를 즐겨하시는 아버지가 무척 생각난다
돈이 없어 담배갑을 사지 못하여 신문지 잘라서 봉초를 넣고 돌돌 말아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에게 담배 회사에서 매달 공짜로 나오는 갑 담배를 갔다 드렸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또한 월급을 타서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병이 낫아 아들이 하는 일도 보시고 . .
아버지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셨었으면 . .
그 시절 우리 어머니에게 직접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나라 안 여러 곳 부흥회에서 '곧 다가 오는 이천년 말세에 재림 시기가 되니 부름 받고 휴거를 위하여 빨리 회개하고 구원 받으라'고 부르짖던 그 많던 부흥사들 . .
이제 이천년을 훌쩍 넘긴 지금 그들 중 일부는 아직 살아 있을 것인데 그 많은 전도사들은 그때 이천년 재림, 휴거를 주장하는 뱉었던 잘못을 호도하는 말에 의하여 일부는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던 . .
이 시점에 있어 자기가 한 거짓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버지 사진을 들여다 보면 나는 아버지를 닮았고 하신 일들과 요모조모 생각하는 것도 꼭 닮은 것 같다
내가 아버지이다
어릴때 우리집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동안 바쁘게 살면서 세월 속에서 묻혀 사라져 가던 것들인데 기억의 구석에서 비집고 나오며 그런 사실들을 마냥 잊어 버리고 싶지는 않다
진즉 애들의 아버지가 된 나도 이 시점에 서서 우리 아버지 마음으로 돌아 가본다
그 옛날 아버지는 여느 보통 사람처럼 우리 어머니와 결혼하여 다섯 자매를 낳고 오랫동안 단란했던 시절을 보냈었다
비록 가난했으나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주어진 작은 논밭을 가꾸고 남의 품삯 일도 하는 평범한 시골 농사꾼이셨다
텃밭에 딸기, 까지를 심고, 밭고랑 가에 옥수수를 심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한바퀴 돌며 심은 배추 무우와 함께 그들이 익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나의 일상이었다
또한 우물가에 단수수를 나란히 심어 단수수 씨알이 거무스레 해지면 그늘에 멍석을 피고서 길다란 단수수 마디 마디를 도막내어 나눠 주면서 제일 맛있는 가운데 도막은 살그머니 나의 차지, 누나들이랑 여름 한철 달콤한 물이 입안에서 줄줄 씹히는 주념부리를 맛 볼수 있게 해주셨다
동네에 과수원이 많지만 돈없어 과일 구경하기가 어려웠는데도 추석날 푸르딩딩한 감 한 바구니를 사서 짊어지고 오셨는데 그런 빛깔의 감도 보기 보다 훨씬 달고 맛이 있어서 식구들이 둘러 앉아 아버지 덕분에 맛있고 즐겁게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 .
아버지는 보리베기, 모심기 벼베기 할 때 동생이 있는 데도 막걸리, 담배 심부름은 꼭 나한테 시키셨다
함께 누에 키울 때도 뽕잎을 주면 누에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뽕잎을 씹어 먹는 모양이 재미있었다
농사철은 항상 바쁘지만, 겨울 되고 농사일이 없어지면 찬 마루에 앉아 새끼를 꼬시고, 나도 옆에 앉아서 꼬고, 작은 방에서 가마니 짜면 나도 엄마, 누나들 사이에서 지푸락을 끼우는 잣대질을 하였고 쿵쾅쿵쾅 내려 치는 것은 아버지가 몫이셨고, 농협에 실고 가서 수매하는 것을 따라가서 구경했다
그래도 농한기에는 시간이 많아 아버지 연배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즐기면서 화투를 치는 노름방에도 가끔 나가셨다
시골 동네지만 노름방은 때로는 판이 점점 커지며 패가망신하고 동네 식구 모두가 야반 도주한 것도 보았다
농사철에는 다른 농부처럼 땀 흘리며 일 하시고 막걸리를 드시며 담배도 피우셨고 성실하게 농사 일을 하셨지만 일요일 어머니는 차려입고 늘 교회에 나가시고 나도 다녔다
중학교 때쯤 동네 교회가 둘로 갈라지며 부흥회도 자주 열렸는데 그곳에 어머니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열리는 부흥회도 걸어서 자의반 타의반 따라가며 참석하게 되었다
거기는 많은 전도사들 마다 다가오는 이천년 곧 말세가 되니 회개하라고 외치며 강단에서 재림, 휴거를 부르짖었고 나도 눈물 흘리는 통성 기도에 참여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으며 아버지의 노름방에 가시는 것을 계기로 집안에 불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회개하고 지옥불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어머니 특유의 목소리를 높혔다
그 뒤로 점차 노름방에 나가지 않았으나 교회에 나가고 죄를 회개하여 구원 받아야 한다고 담배 피는 것도 구박하였는데 그 뒤로 아버지는 대응하지 않고 점차 말수도 더 적어지셨다
그리고 나중에는 겨울에 새끼를 꼬지 않고 가마니도 짜지 않으셨다
집안에서 큰소리가 나니 믿음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오로지 전도 사명감을 우선시 하는 어머니에게 잘못이 있다고 점차 크면서 확신하게 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웃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고 알고 있을 교인들이나 목사님 조차 모른 척하는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전기 없이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면서 두 누나들 도움으로 고등학교에 간신히 다닐수 있었다
고3 때 다들 목표로 했던 한전 시험이 없어져 친구들이 전기주임기술자 자격시험을 준비하는데 나도 여름 방학때 부채로 더위를 쫒고 공부하며 비지땀을 흘렸었다
몇 친구와 함께 합격한 것을 알게 되었고 선생님은 들뜬 나를 수업 도중에 집으로 보내 주며 식구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릴 수 있게 배려하여 주셨다
집에 가보니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있었는데 합격 소식을 알렸건만 아버지와 식구들 모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고 더 물어 보지도 않아 나는 그냥 식구들과 함께 고구마를 마저 캤다
아버지는 자신의 슬픔에 빠져 아들의 노력이나 희망에 대하여 관심 가질 여력 없고 어머니도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 전부터 아버지는 조금씩 아프셨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었고 점점 깊어졌지만 동네에 병원이 없고 집안 형편 상 도시로 진료 받으러 갈 엄두를 못 냈다
그해 겨울, 아버지는 삶에 대한 의지가 더 없어지고 병이 깊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의 죽음을 예견하셨는지 나중에는 차가운 작은 방으로 누운 자리를 옮기셨고 이듬해 초 내가 공고를 졸업하는 다음 달 돌아 가셨다
졸업하고 나서 따논 자격증 덕택으로 6개월 후 전매청에 취업하게 된다
그곳에 가니 아버지 담배 심부름으로 봉초를 손에 들고 오면서 늘 맡았던 봉초 냄새가 근무하는 공장 안에 가득했고 그 냄새 속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매달 월급날이면 '진달래'라는 담배 한갑이 그냥 나오는데 그 담배를 받으면 담배를 즐겨하시는 아버지가 무척 생각난다
돈이 없어 담배갑을 사지 못하여 신문지 잘라서 봉초를 넣고 돌돌 말아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에게 담배 회사에서 매달 공짜로 나오는 갑 담배를 갔다 드렸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또한 월급을 타서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병이 낫아 아들이 하는 일도 보시고 . .
아버지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셨었으면 . .
그 시절 우리 어머니에게 직접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나라 안 여러 곳 부흥회에서 '곧 다가 오는 이천년 말세에 재림 시기가 되니 부름 받고 휴거를 위하여 빨리 회개하고 구원 받으라'고 부르짖던 그 많던 부흥사들 . .
이제 이천년을 훌쩍 넘긴 지금 그들 중 일부는 아직 살아 있을 것인데 그 많은 전도사들은 그때 이천년 재림, 휴거를 주장하는 뱉었던 잘못을 호도하는 말에 의하여 일부는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던 . .
이 시점에 있어 자기가 한 거짓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버지 사진을 들여다 보면 나는 아버지를 닮았고 하신 일들과 요모조모 생각하는 것도 꼭 닮은 것 같다
내가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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