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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논쟁(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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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10-11 22:32 조회 2,67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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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 o o
그냥 이야기 하나
1975년 12월 24일 오후 2-3시경 이리역 광장에  공수부대원을 가득 실은 트럭 2대가 나타나면서 아수라장은 시작되었다 
중앙동 창인동의 술집은 술먹던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찾고 그후 2-3시간후 이리경찰서는 공수부대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리역전 파출소는 부상자들로 100m 정도 길게 줄이 생겼고 위급환자는 이리에서 수술을 할수없어 전주예수병원으로 이송해야했다
우리는 구심점이 없어 저항을 못했다 만약 우리에게 정치적인 이슈가 있었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했을까?
후일에 알려진 바로는 정호용이 부대장 이었다고 한다
이건 젊은 날의 슬픈 이야기 한토막이다

○ o o o
그래 그 놈들이 무지막지한 행패를 부렸구만,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 그 시절에는 군인들 행패가 있었거든,  아마 이런 일이 있었지 않나 짐작이 되는데. 공수부대원 몇놈들이 이리시내에 나와서 술믈 마시다가 이리 깡패들에게 봉변을 당했고, 그놈들이 부대에 들어가 지들 부대원들을 몰고와서 분풀이를 하지 않았을까. 그 놈들이 금마 공수부대원 이었겠지. 
참 어두웠던 시절이야기 일세. 정호용이 그 놈 서울에 수천억대 부동산부자라고 하더구만,

○ o o o
그 시절이면 긴급조치가 남발되는 시점이고만
74년 민청학련 75년 봄 대학에 경찰병력 진입시작한 해

○ o o o
내가 그 부분은 분명히 알고 있다.
잘 아는 부분이니 한마디 합니다.
이리 배차장파 원광고 출신의 장xx라는 깡패가. 있었는데 신태인국민학교 나와 동기이다.
칼 잘 쓰는 건달로 악명이 드섿고 이리시 중앙동파의 숙적이었으며 결국은 중앙동 패거리에 의하여 칼을 무수히 쑤셔맞고 사망하였지.
그가 살아 있을 때 이리시내에서 군이들과 언쟁으로 시작된 싸움에서 객기가 작용되어서 외출나온 공수부대원 2명을 작신 두둘켜 패 깨구락지를 만들어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군인들을 용달차 화물칸에 실어서 금마의 공수부대 위병소 앞으로 택배를 보낸진 것이 화근이 되어 정호영이가 공수부대 전원을 3인1조로 이리시가지에 풀어놓았다.
태도가 불랑한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타킷이 되어 두둘겨 패주라는 특명으로 이리시내가 아수라장이 되었으나 시장. 서장. 학교장등 기관장들의 모임으로 정호영을 설득하여 안정을 찾았다라는 이야기다.
당사자에게. 직접들은 실화이라네.
운동권이라거나 기타 등등의 건으로 만들어진 사건이 아닌데도 운동권내지는 정치적 탄압으로 해석되어지는 것도 알 수없는 노릇이로구먼.
암튼 내가 아는 전부이라네.
인과응보가 얼룩진 것이겠지.

○ o o o
그래 내 짐작이 좀 맞아가지. 왜 내가 그런 일을 눈치 챘냐면 그 시절 해병대에서도 그런 일이 가끔 있었어. 전설적인 무용담으로 말일세. 월남전이 한창일 때는 더 기세가 등등했지.    그리고 과민반응 하시지 말게나.. 친구들 사이니 그런 저런 이야기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은가. 깡패들만 잡아 팼더라면 누가 마다했겠나. 애꿎은 시민들이 피해를 당했으니 울분이 생겼겠지.

○ o o o
과민반응은 아닐세.
운동권은 정당하였고 마치 면죄부 티켓이라도 손에 쥔 것 같은 행동들을 자행하는 것이 현실인 것 같아서 씁쓸하다네.
교복의 호크와 윗 단추만 열고 다녀도 타킷이 되었다하니 억울한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는 느낌이 오지 않는가?
그 이후 광주사태가 발발하여 그 공수부대 전원이 광주로 내려갔으니 광주에서도 껄렁거리는 놈들은 타켓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팩트를 모르면서 짜깁기는...

○ o o o
그 옛날 전대협이 그리하였다면 그들의 정반대에 서있으며 이정권의 탄압을 주장하다가 대자보등으로 구속되거나 쫓겨 다니는 지금의 전대협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세상이 달라진 것은 분명한가?
조용해지려코프다.

○ o o o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해서는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으면 하네. 운동권 운운할 때 자네 논조가 그쪽으로 흐르지 않았으면 했어. 그리고 이 카톡을 보는 우리친구들 대부분은, 해방 후 40년 넘게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어 온갖 개발이익을 독차지했던 경상도 군사정권 아류를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하시게. 왜? 우리는 전라도 사람으로 살면서 항상 손해를 봐왔거든. 때로는 노골적으로 지역차별을 당했고.

나는 광주학살의 주인공인 전두환의 일당이 왜 그렇게 “자위권 발포”에 집착하는지를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네. 서울의 사립대학교수와 자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어, 서로 좋은 감정이었지.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전두환 이야기가 나왔어.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였어. 거기까지는 그래도 넘어갈만했지. 그 다음이 가관이었어. “왜 군인들이 총질을 했겠냐? 광주놈들이 악질이라서 어쩔 수 없이 총을 쏜 것이지.” 얼굴이 확 달아올라왔지만 참았고, 다른 이야기를 화제를 돌려 이야기를 끝냈지. 그 다음에 한번 만나자고 메시지가 오고, 전화가 왔지만 대꾸를 하지 않았어.

어리석고 둔한 나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네. 광주학살 일당들이 왜 그렇게 자위권 발포에 집착을 했던가를

그것이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민간인들은 총만 봐도 벌벌 떠는데, 총 든 군인들에게 달려들어 어쩔 수 없이 총질을 해댔다는 것이. 전두환 일당은 이미 정권 탈취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였네. 제 상관이었던 정승화 옆구리에 총을 들이댔고, 최규하를 협박하여 하야 시켰지. 정권탈취에 눈이 먼 놈들은 애비도 없고, 형제도 없지 우리나라 역사에도 있지 않은가. 그 당시 정호용이도 전두환이도 광주에 다녀가면서, 본때를 보여 줘야한다고 했다는 증언이 있지. 그 놈들 정권탈취야욕에 전라도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지. 발포 명령이 없으면 가능한 것인가? 그 놈들은 헬기에서 기총소사 까지 한 놈들이야.

그리고 그 무서운 군인들 총칼의 위협에도 분연히 나섰던 광주사람들의 용기에는 무한한 존경심을 보낼 수 밖에 없네. 

자네 말대로 광주의 질 나쁜 놈들이 선동해서 민중봉기가 일어났다면 그 놈들이 그것을 그냥 지나쳤을 것인가. 대대적으로 보도했을 것이네. 광주 민주화 운동 사상자에는 광주 깡패는 한 놈도 없었어. 왜냐하면 깡패들 속성이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제일로 먼저 도망가지. 그 당시 이리에서도 사고 친 놈들이 제일 먼저 도망갔을 것이네. 하다하다 둘러댈 것이 없으니 보수 꼴통 지만원이 같은 작자는 북한군이 내려와 민중봉기를 사주했다고 했지.

해방 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까지 이르는 독재정권의 희생양이 전라도였네. 하지만 어떤 놈들이 **을 했어도, 우리는 우리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네. 풍성한 인심에 풍류와 해학이 넘치고,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배출되었던 아름다운 고장이 전라도 아니었던가.

내 논리로 자네가 설득이 되겠나? 자네 이야기에 내가 공감을 하겠나?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이야기가 나와 다툼이 없었으면 하네.

○ o o o
이쯤에서 그만 합시다
친구끼리 잘못하면 의 상합니다
정치문제 종교문제는 친구간 금지 품목입니다

○ o o o
o o 와 나는 의가 상할일은 없다고 천명한다네.
o o 도 공감하리라 생각하면서..
내 글이 심했다면 사과하리다.
광주에 그러한 군인들이 내려갔다는 것 정도이지 그이상은 난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토론도 싫다.
차별받은 그 시절도 뚜렷히 기억한다.
이제는 훌륭한 리더쉽으로 전국민의 존경받는 정치가 이루어지길 소망할 뿐이다.
준태, 필요이상으로 해석하지 말고 절대로 과민반응이 아니라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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