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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기 65 -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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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웃음
댓글 29건 조회 1,022회 작성일 25-07-2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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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65)  벽제관에서 옛 일을 회상하며 만난 선풍도인(仙風道人)

북쪽으로 북쪽으로만 길을 가던 김삿갓은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길을 가던 초립 동이를 보고 물었다.

"날이 저물어 어디선가 자고 가야 하겠는데, 이 부근에 절이나 서당 같은 것이 없느냐?"

"절이나 서당은 없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벽제관(碧蹄館)에 주막이 있어요."

김삿갓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래? 그럼 여기가 바로 벽제관이란 말이냐?"
이곳이 벽제관이라는 소리에, 김삿갓은 불현듯 임진왜란 당시의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질풍노도와 같이 진격해 오는 왜군을 피해 선조는 의주(義州)까지 피난을 가게 되었다. 눈앞에 압록강을 건너면 명나라 땅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난관에 봉착하였다.

이때는 이미, 한음 이덕형이 명나라로 구원군을 요청하는 사신으로 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명나라 조정의 분위기를 감지한 한음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나라 황제가 선뜻 원군을 내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 정녕 우리 조선을 구원해 주실 수 없단 말씀입니까?" 한음은 담판을 시작했다.
"그렇소. 조선에 원군을 보낼 수 없소."
명나라 황제는 손조차 내저으며 거절을 했다.

"우리 조선과 명나라는 오랜 형제지국입니다. 형제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 모른 척하시다니오."
"조선국 사신은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마시오."
황제가 냉정하게 잘라서 말을 했다.

"음...."
그러자 한음은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은 스스로 살아남을 길을 찾는 수밖에 없겠사옵니다."
"잘 생각했소. 스스로 싸워 이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오."
황제는 빙그레 웃기까지 하였다.

"폐하. 그 길이 어떤 길인 줄 아시옵니까?"
협박하는 어조로 한음이 말했다.
"내가 알 리 있겠소? 그래, 어떤 방법이오?"

명나라 황제가 궁금해 하며 물었다.
"말씀드리기 황송하오나, 우리 조선이 목숨을 보존하는 길은 왜적 앞에 나아가 항복하는 길 뿐이옵니다."

한음은 황제를 은근히 협박했다.
"으흠, 그런 방법도 있겠구료."
황제는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였다.
"우리 조선이 왜군에게 항복을 하게 되면 그들의 길잡이가 될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야, 뻔한 일이 아니겠소?"

"그리고 왜군은 우리를 길잡이 삼아, 이 명나라로 진군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폐하!..."
"뭐라구?"
명나라 황제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호통을 쳤다.

"조선이 길잡이가 되어 우리 명나라를 친다고? 감히 누구를 협박하느냐! 당장 저놈의 목을 쳐라!"
그러나 한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침착한 모습으로 황제를 설득했다.

"폐하, 소신을 처단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옵니다. 소신이 이곳에서 기한 내에 돌아가지 않으면 소신의 임금께서 부득불 왜군 앞에 나아가 항복하시게 될 것이옵니다."
"아니 저놈이 아직도 내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고 있구나."

"폐하. 고정하시고 소신의 말을 더 들어주소서. 소신의 임금이 왜군에게 항복을 하면, 오래도록 형제국으로 지낸 두 나라는 의리를 저버리게 됩니다. 폐하, 이 같은 크나큰 수치를 역사에 남기지 마소서."
"무엇이?"

명나라 황제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폐하, 바라옵건데 그런 불행이 없도록 통촉해 주시옵소서!"
한음 이덕형은 이같이 고하고 황제의 처분을 기다렸다. 그러자 배석해 있던 명나라 신하가 말하는데

"폐하, 조선국 사신의 목숨을 내건 충절이 갸륵하옵니다. 그의 말대로 조선의 군사를 길잡이로 왜군이 쳐들어온다면 우리 명나라도 시끄러울 것입니다. 하오니 통촉하시어 조선국에 원군을 보냄이 타당하다 사료되옵니다." 하였다.
그러자 함께 있던 다른 신하들도 이구동성으로 아뢰는데, "원군을 보냄이 마땅하옵니다."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여송(李如松) 장군이 이끄는 5만의 군사는 압록강을 건너와 평양성과 개성을 차례로 탈환했는데, 벽제관에서만은 왜군에게 크게 참패하였다.
승승장구하던 이여송은 벽제관에서 왜군에게 한번 혼이 나자, 멀찍이 송도까지 퇴각하여 다시는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전국(戰局)은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다.

왜군을 압박하여 무찔러야 할 판인데, 이여송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싸우려고 하지 않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때 이여송의 접대관은 지혜롭기로 유명한, 명나라에서 돌아온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었다.

이덕형은 이여송에게 속히 싸워주기를 여러 차례 간청하였다.
그러나 이여송은 갖은 핑계를 대며 좀처럼 왜군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이덕형은 간청해 보다 못해, 나중에는 화가 동하여 이여송의 방에 있는 적벽도(赤壁圖) 병풍에 아래와 같은 시 한수를 써 갈겼다.

승부란 한판의 바둑과도 같은 것
전쟁은 꾸물거림을 가장 꺼리오.
알쾌라 적벽 싸움 전에 없던 공적은 손 장군이 책상을 찍던 그때부터요.

그 옛날 중국 삼국시대에 오왕(吳王) 손권(孫權)이 위왕(魏王) 조조(曺操)에게 크게 패한 후, 부하 장졸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모두가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모사 주유(周瑜)와 노숙(魯肅)만은 끝까지 싸울 것을 고집하였다.

이에 손권은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칼로 책상을 찍으며 최후의 선언을 했다.
"우리는 옥쇄(玉碎)할 것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자."
그리하여 손권은 그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조조에게 커다란 패배를 안겨 주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적벽도가 그려진 병풍에 한음이 휘갈겨 쓴 시의 뜻을 이여송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여송은 이덕형의 시를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왜군을 상대로 진격을 하게 되었고, 전황은 조명 연합군의 우위로 왜군을 점점 쇠퇴시켜 결국은 퇴각시키기에 이르게 된다.

김삿갓은 그 옛날, 이 같은 한음의 훌륭한 시 한편이 임진왜란으로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살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벽제관으로 와서 어느 주막에 숙소를 정했다.
그 주막에는 70을 넘었다는 노인이 한 분 있었다. 하얀 구렛나루 수염이 배꼽에 닿을 정도로 탐스러워, 얼른 보기에도 선풍도인(仙風道人)의 노인이었다.

김삿갓은 저녁을 먹고, 그 노인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마침 그때 젊은이 하나가 방으로 들어와 노인에게 인사를 올리며, "저는 지금 한양에 다녀오는 길이옵니다. 한양에는 오늘 아침에 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한양에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리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그러나 노인은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이, 태연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한양이 워낙 복잡한 곳이라, 괴상한 일이 생길 만도 하지."
괴상한 일이라는 것이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인지는 묻지도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김삿갓은 궁금하기 짝이 없어, 자기가 앞질러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한양에 어떤 괴상한 일이 생겼다는 말이오?"
젊은이는 김삿갓에게 대답하는데
"한양의 진산인 남산이 오늘 아침에 무너져 버렸다오."
"뭐요? 남산이 무너지다뇨.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김삿갓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주인 노인은 놀라기는커녕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꺼야. 남산은 수천 년이나 오래된 산이니까. 무너진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지."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서, "노인장! 남산이 무너진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아무리 오래 되었기로 산이 무너지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노인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허기는 자네 말도 옳아. 산은 머리가 뾰족하고 밑은 넓적한데다가, 바위와 바위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좀처럼 무너지는 일이 없을 것이야."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화가 불끈 치밀어 올랐다.
"노인장께서는 이 말도 옳다, 저 말도 옳다... 도무지 줏대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니, 도대체 그런 애매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허허허... 자네 말도 역시 옳으이!"

주인 노인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바로 그때, 젊은이 하나가 또 들어와 노인에게 인사를 올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별 일도 다 있습니다."

노인은 인사를 받으며 묻는다.
"무엇을 보았기에 별 일이라 하는가?"
"저는 오늘, 소가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별 일이라 하는 것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소가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구?... 음, 그럴 수도 있겠지. 소란 놈이 워낙 우직해서, 비록 작은 쥐구멍이라 하여도 우격다짐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거야."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김삿갓은 처음에는 주인 노인이 나이가 많아서 노망하는구나 생각했는데, 대꾸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노망은 아닌 것 같았다.

"노인 어른! 아무리 소가 우직하기로서니, 어떻게 쥐구멍으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상식으로 생각해도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 아니옵니까?"
하고 정면으로 따지고 들었다. 노인은 여전히 웃으면서 말한다.

"허기는 자네 말도 옳아. 소란 놈은 좌우에 뿔이 있어, 쥐구멍으로 파고들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야."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농락을 당하는 것만 같아 화가 불끈 치밀어 올랐다.

"여보시오, 영감님은 언사가 왜 이다지도 분명치가 못하시오. 된 소리 안 된소리 모조리 옳다고 하시니,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허기는 자네 말이 옳아! 된 소리 안 된 소리, 모조리 옳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지."
그러자 옆에 있던 두 젊은이가 별안간 소리를 크게 내어 웃으며 김삿갓을 이렇게 나무란다.

"하하하... 노형은 왜 이렇게도 화를 잘 내시오. 우리 두 사람은 지난날 화를 잘 내어 손해를 본 일이 하도 많았기 때문에, 지금은 저녁마다 선생님을 찾아와서 정신수양을 받는 중이라오. 노형도 화를 잘 내는 것을 보니, 우리들과 함께 선생님한테 정신수양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내가 너무도 경망스러웠구나.") 싶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황희(黃喜) 정승의 옛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씨 조선 초기, 정종(定宗), 태종(太宗), 세종(世宗)대왕의 3대 임금 시대에 정승 벼슬을 40여 년간 지낸 만고의 명신, 황희 정승은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화를 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인물이다.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화가 있었다.

하루는 두 명의 종년들이 서로 다투다가 한 아이가 황희 정승에게 달려와
"대감마님! 저년이 이러저러하니, 저런 나쁜 년이 어디 있사옵니까?" 하고 고자질을 하자 황희 정승은
"그래 네 말이 옳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저쪽 종년이 달려와서
"대감마님! 저년이 이러저러하니, 저년이 나쁘옵니다."
황희 정승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누라가 그 광경을 보고
"대감은 이 아이 말도 옳다, 저 아이 말도 옳다 하시니, 세상에 그런 말씀이 어디 있사옵니까?"
하고 나무라자 황희 정승은 마누라에 대해서도 역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마누라의 말씀도 옳소이다."

김삿갓은 오래전 어느 야사(野史) 책에서 황희 정승의 일화를 읽어보고 크게 감동했던 일이 있었다.
종년들의 다툼이 옳으면 얼마나 옳으며, 그릇되면 얼마나 그를 것인가?
별 것도 아닌 다툼이기에 황희 정승은 저마다 옳다고 말해 버렸으리라.
그 한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황희 정승의 도량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주막집 노인은 황희 정승과 똑같은 도량을 보여주고 있으니, 김삿갓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정중히 수그려 보이며, 솔직하게 사과하였다.

"제가 불민한 탓으로, 어른을 미처 알아 뵙지 못하고 경망되이 행한 것을 너그러이 용서하소서."
노인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을 한다.
"무슨 소리!.. 나는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어떤 일에나 시비를 가리지 않기로 했네. 주책없는 늙은이라고 비웃을지는 모르지만, 그게 바로 마음을 편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비결이거든."

김삿갓은 노인의 말에 또 한 번 감탄해 마지않았다.
"노인장 같은 어른을 만나 뵙게 된 것이 다시없는 기쁨이옵니다."

"노인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보잘 것 없는 늙은이한테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는가.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하기에 나는 한평생 둥글둥글 살아오고 있을 뿐인걸!"
​김삿갓은 노인의 겸허한 인사에 또 한 번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다른 노인의 생각을 물었다.

"그러면 매사를 그렇듯 지내시다 보면, 남들에게는 줏대 없는 사람으로 비쳐지는 것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만사개유정(萬事皆有定)
세상만사는 모두가 정해진 이치대로 흘러가는 것)인걸...
그런데도 가엾은 인생은 부질없이 바쁘게 돌아간다네. 浮生空自忙(부생공자망)
따라서 사람들은 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 백년도 다 못 사는 주제에,
상회천세우(常懷 千歲憂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살아가는 것) 하는 것이 아니겠나!"

김삿갓은 노인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말을 하였다.
"어른의 말씀이 정녕 명답 올시다!"
주막집 노인과 밤늦도록 세상사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김삿갓은 다음날 아침, 노인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임진나루를 향해 발길을 부지런히 옮겼다.

방랑시인 김삿갓 (66)
장단에서 황진이(黃眞伊)를 회상하며..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

김삿갓이 임진나루를 건너, 얼마를 더 가니 장단(長湍) 땅에 이르렀다.
이곳은 송도의 삼절(三絶)로 불려오는 기생 황진이(黃眞伊)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당시 송도 사람들은 황진이와 함께 성리학자 서경덕과 박연폭포를 송도삼절로 불렀다.
김삿갓은 황진이는 비록 기생이기는 했을망정, 신사임당과는 또 다른 분야에서 여성 존재를 길이 역사에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진이는 이처럼 뛰어난 여성이었기에, 김삿갓은 황진이의 무덤만은 꼭 참배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전에 많은 남성들을 희롱해 온 일이 무척 후회가 된 임종 직전의 황진이가
"내가 죽거든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백골을 마음대로 밟고 다닐 수 있도록 길가에 묻어 달라."고 했던 황진이의 무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진이는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그림도 잘 그리는 "만능 여인"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녀의 시를 짓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건곤할 제 쉬어 간들 어떠리.

靑山은 내 뜻이오 綠水는 님의 情이
綠水 흘러간들 靑山이야 변할손가
綠水도 靑山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이렇듯 황진이는 언문 시조에도 능했지만, 한시에 있어서도 많은 명작을 남겼다.
가령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보고선

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찍어 내어
직녀에게 얼레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그리운 견우님 떠나가신 뒤
서러워 허공에 던져 버렸네.

誰斷崑山玉   (수단곤산옥)
裁成織女梳   (재성직녀소)
牽牛離別後   (견우이별후)
愁랑碧空虛   (수랑벽공허)

김삿갓은 삼일 동안 장단 땅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황진이의 무덤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황진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김삿갓은 마침내 황진이 무덤을 찾는 것을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얼마 후 산속에 있는 어느 주막에 들려 술을 마시며 주모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이 부근에 혹시 황진이라는 기생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아이참, 손님은 별 말씀을 다 물어보시네. 내 조상의 무덤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판인데 그까짓 기생년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를 누가 알겠어요."
김삿갓은 황진이 무덤을 찾아 제사 지내줄 것을 깨끗이 단념하고 혼자 술을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술을 마시자니 오늘따라 처량한 기분이었다.
황진이 무덤을 찾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산골짜기에는 매화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개울가의 버드나무 숲속에서 꾀꼴새가 영걸스럽게 울고 있었다.

김삿갓의 눈에는 이런 풍경 모두가 마치 황진이의 환상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황진이를 생각하는 시가 한수 읊조려 나왔다.

술을 들며 노래하고 싶어도 옛사람은 없고
꾀꼴새 울음소리만 마음을 괴롭히네.
강 건너 버들가지는 마냥 싱그럽고
산골짜기 매화만 봄 향기를 풍기노니.

對酒欲歌無故人  
(대주욕가 무고인)
一聲黃鳥獨傷神  
(일성황조 독상신)
過江柳絮晴獨雷   
(과강유서 청독뇌)
入峽梅花香如春   
(입협매화 향시춘)


방랑시인 김삿갓 (67)
개풍군수 강호동의 마부(馬夫) 살리기

장단을 떠나온 김삿갓은 개풍(開豊) 땅으로 들어섰다.
이날 밤 김삿갓은 어느 마을에 있는 서당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서당 훈장의 이름은 이윤성(李允成)이었는데, 인물이 풍채도 좋았지만 선량해 보이는 선비였다.

그런데 훈장은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김삿갓과 마주 앉아서도 연신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김삿갓은 그런 광경을 보다 못해 이렇게 물어 보았다.

"훈장께서는 어떤 걱정거리가 있기에 이렇듯 한숨을 쉬고 계시오?"
그러자 훈장은 몇 번의 한숨을 더 쉬곤,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는 오십 평생에 남에게 못할 짓은 안하고 살아왔는데, 오늘은 사람을 죽이는 실수를 하고 말았으니 어찌 마음이 괴롭지 않겠습니까."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람을 죽이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오?"
"알고 보면 기가 막힌 일이지요."
"무슨 말씀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군요."

그러자 훈장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다.
훈장은 신경통이 있어 낮에 지팡이를 짚고 쩔룩거리며 이웃 마을 주부(主簿:의원)에게 침을 맞으러 가는 중에, 나이가 연만한 장년의 한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그 사람은 무엇에 쫓기는지 헐레벌떡 뛰어와,
"지금, 나를 원수로 여기는 자가 칼을 들고 쫓아오고 있으니 그놈이 나의 행방을 묻거든 모른다고 대답해 주시오." 하면서 숲속으로 도망을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잠시 후, 과연 험상궂게 생긴 젊은 놈이 손에 시퍼런 장도(長刀)를 들고 나타나, 훈장의 가슴에 벼락같이 칼을 들이대며 "지금 이리로 도망하는 자를 보았지? 그놈이 어디로 도망했느냐.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 하였다는 것이다."

너무나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훈장은 눈앞이 캄캄해 왔다.
그러면서 죽지 않으려고 본 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을 든 자가 훈장의 말을 듣고 숲속으로 쫓아 들어갔는데, 잠시 후에 숲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온 것을 보면, 도망간 사람이 칼을 들고 쫓던 흉악한 젊은 놈에게 목숨을 잃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훈장이 자책을 하는데

"내가 오늘 그런 실수를 저질렀으니, 그것은 내가 사람을 죽인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하며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훈장이 괴로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죄 없는 사람을 자기가 죽인 것 같은 심정이 될 것이다.

이렇듯 생각이 된 김삿갓은 잠시 후 훈장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
"그 사람을 살려줄 방도가 전혀 없지도 않았을 것인데, 워낙 다급했던 관계로 그런 실수가 있으셨군요."

그러자 훈장은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선생 같으면 그 사람을 살려 줄 방도가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김삿갓은 훈장의 체면을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글쎄올시다. 선생이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고 계셨다면, 칼을 든 젊은 놈이 나타나 도망치던 사람의 행방을 묻기 전에, 선생이 눈을 감고 장님행세를 하고 있었다면 화를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설마하니 장님에게 도망간 사람을 보았냐고 묻지는 않았을 것이니까요."
"옛? 장님행세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요?"

훈장은 김삿갓의 절묘한 계교를 듣자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아뿔싸! 선생 말씀대로 그때, 눈을 감고 장님행세를 했더라면... 아 아, 그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워낙 멍청해서 두 눈을 뻔히 뜨고도 죄 없는 사람을 죽게 하였으니, 이런 기가 막힌 실수가 어디 있단 말이오!" 하면서 새삼스레 괴로워한다.

​김삿갓은 민망한 생각이 들어 이제는 훈장을 위로해 주어야할 판이었다.
"선생이 도망가던 사람에게 원한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물론 원한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잘 잘못을 떠나서 결과적으로 한 사람을 죽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괴로운 것이지요. 선생 말씀을 들어보면,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나저나 선생은 어쩌면 그처럼 죽을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절묘한 생각을 해내셨소?"
훈장은 거기까지 말을 하다가 별안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김삿갓의 두 손을 덥석 움켜잡으며 아래와 같은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 내 조카아이가 꼭 죽게 되었는데, 선생이 어떤 방도로 그 아이를 살릴 수 있겠는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선생이라면 그 아이를 살려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밑도 끝도 없는 훈장의 이 같은 말을 들은 김삿갓은 어리둥절하였다. 

"저는 의원이 아니올시다. 병으로 죽게 된 사람을 제가 어떻게 살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훈장은 손을 설레설레 내저으며
"나는 병으로 죽게 된 사람을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고, 이 고을 사또에게 미움을 사서 죽게 된 내 조카 아이를 살려달라는 말씀입니다. 선생 같은 분이라면, 곧 죽게 되어있는 내 조카를 충분히 살려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또에게 미움을 사서 죽게 되었다니요? 세상에 아무리 사또의 세도가 좋기로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내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릴 테니, 제 말씀을 좀 들어보세요."
그러면서 훈장은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훈장의 조카, 무송(武松)이는 개풍 군수 강호동(姜浩童)의 마부로 있는 사람이다.
강 사또는 워낙 성질이 불같이 사납고, 기골이 장대한 인물로써 말(馬)을 유난히 좋아하였다.

이곳 개풍 군수로 부임해 올 때조차 한양에서 타고 다니던 애마(愛馬)를 끌고 왔을 정도인데, 무송이는 그 말을 양육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송이가 잘못하는 바람에 그 말이 죽고 말았다. 이에 강 사또는 노발대발하며, 무송이를 그날로 옥에 가두고, 수 일 안에 사형에 처해버린다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훈장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또가 아무리 세도 등등한 벼슬자리이기로, 말 한필 죽인 책임을 물어,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누가 아니라오. 그러나 강 사또는 워낙 감때사나운 사람이라, 그냥 내버려두면 내 조카 놈은 죽음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오. 그러니까 선생이 제갈공명 같은 꾀를 쓰셔서, 내 조카 놈을 꼭 좀 살려주소서.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그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소이다."
그러나 한낱 걸객 시인에 불과한 김삿갓으로서는 무송이가 죽지 않도록 힘쓸 수가 있으랴...

김삿갓은 훈장의 말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억울하게 죽게 된 사람을 구출해 주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였다. 그래서 전후의 사정을 알아야 하겠기에 훈장에게 물었다.
"도대체 강 사또라는 사람은 누구의 힘으로 사또가 된 사람입니까?"

그러자 훈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한다.
"글쎄올시다. 강 사또가 누구의 천거를 받아 사또가 되었는지는, 우리 같은 사람은 알 길이 없지요. 다만, 강 사또의 할머니가 안동 김씨라는 말은 있더군요."

김삿갓은 안동 김씨의 세도가 이곳까지 미쳤는가 싶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 사또가 안동 김씨의 힘을 빌어 사또가 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까?"

"떠도는 소문이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 여부는 알 길이 없지요. 그러나 옛말에 발 없는 말(言)이 천리를 간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아무튼 내가 내일 읍내로 들어가 강 사또를 한번 만나보지요. 그렇다고 죽을 사람을 살려 낼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아니올시다. 선생이 내 조카를 꼭 살려주시리라 믿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김삿갓은 이날 밤 서당에서 후한 대접을 받고, 다음날 아침 개풍 군수를 만나보려고 읍내로 떠났다.

죽게 된 사람을 살려낼 방법이 있어서 사또를 만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죄가 가벼운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려면 사또를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석양 무렵에 개풍 관아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동헌 정문을 지키는 두 명의 군관 사령은 가까이 다가오는 김삿갓을 향하여 호령을 친다.

"이 거지같은 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접근해 오느냐, 당장 꺼져 버리거라!"
그러나 김삿갓은 태연하게 버티고 서서, 군관 사령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이 사람들아! 어따 대고 큰 소리를 치는가? 자네들은 속히 사또에게 한양에서 안동 김씨가 되는 사람이 찾아왔노라고 고하라! 그러면 사또가 반갑게 맞을 것이네."

그러자 군관 사령이 저희끼리 얼굴을 마주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김삿갓은 이때다 싶어, 한 번 더 호령하였다.
"어 허!, 내 말을 사또에게 속히 전하지 못하고 무엇을 꾸물거리고 있는가!"

높은 양반을 모시는 아랫것들은 약자(弱者)에게는 강해도, 강자(强者)에게는 약한 법이다.
김삿갓이 이렇듯 호령을 치자, 군관 사령들은 금시, 모가지가 자라목이 되며
"네 네, 알겠습니다. 한양에서 내려오신, 안동 김씨라는 어른이 오셨다고 사또 전에 여쭙고 오겠습니다."

​군관 사령 하나가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사또가 황급한 걸음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사또는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을 보더니 금새 발걸음을 천천히 하면서 다가오는데, 그의 얼굴에는 김삿갓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표정이 보였다.

​"어디서 온 사람인가?"
사람을 아주 우습게 보는 말투였다.
김삿갓은 (이게 아니다 싶어) 본의 아니게 또 다시 큰소리를 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하옥(荷屋) 대감의 밀명을 받고, 관서지방으로 민정시찰을 나온 사람이오. 이름은 "병(炳)"자 돌림을 쓰오."
하옥 대감이란 안동 김씨의 총수인 김좌근(金左根) 대감의 속칭이었다.

강 사또는 "하옥 대감"이라는 말을 듣고 경풍하듯 놀라더니, 김삿갓에게 대뜸 머리를 정중히 수구리며 이렇게 말을 하였다.
"귀하신 몸으로 이렇듯 어려운 걸음을 해주시니, 저희 고을로선 다시없는 영광이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강 사또는 앞장서서 김삿갓을 객사(客舍)로 정중히 안내해 들어오더니, 육방관속을 모조리 불러다가 인사를 시키려고 하였다.
그러자 김삿갓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나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옥 대감의 특명으로 비밀리에 민정을 살피러 다니는 몸이오. 따라서 나의 정체가 알려지는 것은 삼가 하시기 바라오."

암행어사라는 말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은연중에 그런 암시를 해보였다. 그러자 사또는 더욱 굽신거리며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면 잡인들은 일체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 날 저녁, 사또의 대접은 융숭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김삿갓에게 술을 대접하면서
"저의 조모님과 하옥 대감은 팔촌 남매간이옵니다. 제가 개풍목(牧)으로 오게 된 것은 하옥 대감의 덕택입지요." 하고 묻지도 않은 말까지 실토하였다.

훈장을 비롯해, 개풍군 백성들 간에 떠도는 소문은 역시 헛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어제 이곳 개풍 고을 여기저기 다녀 보았는데, 사또의 마부가 말을 죽인 죄로 머지않아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 소문이 사실인가요?"

김삿갓이 이렇게 묻자, 강 사또는 머리를 굽실거리며 대답한다.
"제 수하에 무송이라는 마부 놈이 있사온데, 그 놈은 성질이 매우 포악한 놈이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말을 고의로 죽여 없앴기에, 만백성들에게 사또의 권위를 보여주려고 지금 하옥을 시켜 놓고 있는 중이옵니다."

"음.. 사또가 아끼는 말을 고의로 죽였다구요?.... 그런 괘씸한 놈이 어디 있단 말이오."
김삿갓은 사또를 두둔하며 분개하는 빛을 보였다.

그러자 김삿갓의 눈치를 살피던 사또가 안심하며 말을 하는데
"사실,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이옵니다. 목숨이 아까운 점으로 보아서는 살려두고 싶으나 일벌백계(一罰百戒)를 위해 사형에 처할 생각이옵니다."

​김삿갓은 다시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사또! 그 마부란 놈은 세 가지 중죄를 범한 셈이요. 그놈의 죄질은 사형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오."
사또는 너무도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놈은 말을 죽였을 뿐 이온데, 세 가지 중죄를 범했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말 한 필을 죽인 것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요. 그러나 그 일 외에 두 가지 죄를 더 짓게 되었는데, 그 죄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중죄(重罪)인 것이오."

​강 사또는 김삿갓의 말을 들을수록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두 가지 죄란 어떤 죄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거듭 말하거니와, 말 한 필 죽인 것이야 무슨 중죄라고 할 수 있겠소. 그러나 말을 죽임으로써 사또로 하여금 살인죄를 범하게 하였으니, 그 어찌 중죄라 아니할 수가 있겠소?"
사또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에엣?.. 사또인 저로 하여금 살인죄를 범하게 하였다고요?"
"그렇소이다... 말을 죽이지 않았던들, 사또가 그놈을 죽이지 않을 것이 아니오. 그러니 사또로 하여금 살인죄를 범하게 한 장본인은 마부 놈이 아니고 누구겠소이까?"

​이에 강사또는 크게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현명하신 어른의 말씀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저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또께서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않으셨다면, 그 사건을 너무 소홀하게 다룬 감이 없지 않구료. 게다가 그 마부란 놈이 사형을 당하면 사또에게 또 하나의 중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요."

"도대체 또 하나의 죄란 무엇인뎁쇼?"
강 사또는 안색이 시시각각 창백해지며 김삿갓의 말에 기가 질려버린 듯 말소리조차 떨고 있었다.

김삿갓은 강 사또에게 귀띔이라도 해주듯 나지막한 소리로 은밀히 말했다.
"생각해 보시오. 만약 사또께서 수하로 부리는 마부가 말 한필을 죽게 하였다고, 죄를 물어 그를 죽였다고 하면, 그 소문이 멀지 않아 전국 각지에 퍼져나갈 것이 아니겠소?"

"글쎄올시다. 그놈을 죽이면 그런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될까요?"
"물론이지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소이까? 더구나 나쁜 소문일수록 빨리 퍼지는 법이라오."

강사또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당황하면서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그야 뻔한 일이 아니오? (개풍군수 아무개는 백성의 목숨을 말의 목숨보다도 가볍게 여긴다)는 소문이 퍼지게 될 것은 틀림이 없지요. 그리고 그런 소문이 상감마마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날이면, 그때는 사또도 무사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강 사또는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김삿갓의 손을 덥썩 움켜잡으며 애원하듯 말한다.

​"그러면 이 일을 어찌 했으면 좋겠습니까? 어르신께서 슬기로운 지혜를 베풀어주소서."
"글쎄올시다. 워낙 중차대한 사건이어서, 나로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료."
김삿갓은 의도적으로 말을 끊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이다가

"결자해지(結者解之:엮은 사람이 푼다)라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이 일을 원만하게 해결할 방도는 오직 사또의 손에 달려 있을 것이오." 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강 사또는 결심이 선 듯
"마부 무송이 놈을 죽이지 않고 풀어 주면 어떻겠습니까?"

"그야 풀어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되겠지요. 그러나 사또의 위신이 온존하겠소?"
"어르신 말씀하신대로, 더 큰 화를 당하기 전에 내일 아침 풀어주는 것이 저의 위신보다 중할 것 같습니다."
"사또의 말씀대로 하시오."
"그런데 마부 놈은 풀어주는데, 어르신께 특별히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하나 있사옵니다."

"무슨 부탁입니까?"
"어르신께서 한양에 가시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서 하옥 대감께는 아무 말씀도 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김삿갓은 즉석에서 파안대소하였다.

"하하하, 강 사또는 하옥 대감께서 천거한 사람이 아니오. 이런 일을 어찌 하옥 대감께 보고할 것이오. 그런 걱정은 마시고, 모든 것을 원만히 해결할 대책을 찾았으니 이제는 술이나 유쾌하게 마십시다."
김삿갓은 얼굴조차 모르는 무송이라는 마부를 살려주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뻐 크게 웃었다.

그리하여 사또가 권하는 술을 사양하지 않고 통음하였다.
다음날 아침 김삿갓이 길을 떠나려고 하자, 강 사또는 며칠만 더 지내다 가시라고 하며, 김삿갓을 한사코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마지못해 사흘 동안이나 강 사또로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다가 나흘째 되는 날 길을 떠나려고 하자, 강 사또는 멀리까지 배웅을 따라 나오며 말한다.
"송도로 가시는 길에, 송도 팔경의 하나로 유명한 진봉산(進鳳山) 철쭉꽃을 꼭 구경하고 가시옵소서. 일찍이 고려 시인 변계량(卞季良)은 진봉산 철쭉꽃을 구경하며 유명한 시를 읊은 일도 있사옵니다."

김삿갓은 그 소리에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진봉산 철쭉꽃이 그렇게도 유명하다니, 꼭 들려서 구경하고 가오리다."

그러자 강 사또가 변계량의 시를 읊어 보이는 것이었다.

오솔길은 멀리 산봉우리로 비껴있고
흰 구름은 땅에 내려 승가를 덮었구나.
산 속의 옛 절들은 모두가 비슷한데
철쭉꽃은 봄바람에 간 곳마다 달리 피어있네.


방랑시인 김삿갓 (68)
개성 사람들의 두문동 정신(두문불출: 杜門不出)_선죽교 참배(상)

김삿갓은 진봉산으로 철쭉꽃을 찾아 떠났다.
과연, 진봉산 철쭉은 변계량이 읊은 시 처럼 천하에 절경이었다.

제법 험한 산 전체에 철쭉꽃이 얼마나 많이 피어 있는지,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산 전체가 훨훨 불타오르는 듯했는데 가까이 와 볼수록 더욱 놀라왔다.

철쭉꽃은 진달래꽃과 비슷하면서도 취향은 크게 달랐다.
진달래 꽃의 빛깔은 청초한 연보랏빛이어서 순결 무구한 숫처녀를 연상하게 하지만,
철쭉꽃은 꽃송이 자체도 풍만하려니와 빛깔도 농염하기 짝이 없어
진달래 꽃과 견주어 보건데,
한창 무르익은 삼십대 여성의 육체가 연상된다.

진봉산에 피어 있는 꽃은 오직 진달래와 철쭉 뿐이었다.
진달래 꽃이 한물 가자,
철쭉꽃이 때를 만난 듯이 황홀하게 피어 있었다.

김삿갓은 마치 옷을 벗고 잠자리에 누워 있는 여체를 어루만지듯 철쭉 꽃송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보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시 한 수가 읊조려졌다.

지난 밤 봄바람이 동방에 불어 들어
비단 이부자리 곱게 깔아 놓았소
이 꽃이 피는 곳에 새들도 울고 있어
그윽한 그 자태가 더욱 애를 끊노니

진봉산 철쭉에 넋이 나간 김삿갓,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한 발길을 옮기다 보니, 개성의 진산인 송악산이 멀리 바라보였다.
그러자 김삿갓은 '5백년 옛 도읍지를 이제야 보게 되었구나!'하며 감개가 무량해진다.

송악산 기슭에는 수목이 무성하였다.
저물어 가는 산길을 걸어가며 송악산 높은 봉우리를 올려보다
문득 고려조 충신이었던 야은 길재(吉再)의 옛 시조가 머리에 떠올랐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冶隱) 길재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이성계는 고려를 망하게 하고 조선왕조를 창업하자 백성의 추앙을 받던 정신적 지도자인 세 사람을 회유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고려조의 지조를 지켜왔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쪽 같은 절개는 지금도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태조의 다섯째 아들 정안군(후일 조선조 3대 태종)이 주석(酒席)에서 포은 정몽주의 심경을 아래와 같은 시(詩)로 떠봤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다.

그러자 정몽주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안군의 교묘한 회유를 일도 양단(一刀 兩斷)의 절개로 응수한 것이었다.

이러한 대쪽같은 정몽주의 일편 단심의 표현은 야망을 꿈꾸고 있는 정안군과 그의 추종세력에게는 전혀 받아 들일수 없는 것이었다.

주석이 파한 뒤, 포은 정몽주는 죽음을 예감하고 말 안장에 거꾸로 앉아 집으로 돌아갔다 한다.

그리고 선죽교에 이르렀을 때 맞다뜨린 조영규(趙英珪)의 철퇴에 맞아 숨을 거두었으니, 세상에 그런 충신이 어디 있으랴 생각되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어원은 개성 사람들, 아니 고려조에 충성해 오던 문신(文臣 )72명과 무신(武臣) 48명이 이성계가 고려를 거꾸러뜨리고 새나라인 조선 왕조를 창건하자,
그날로 만수산 두문동 골자기로 들어가 풀뿌리를 캐어 먹으면서도 새나라(조선)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성계는 그들의 항거에 크게 당황하여 온갖 회유책을 써보았지만 그들 누구도 새로운 왕 이성계에게 회유되지 않았다.

이에 크게 진노한 이성계는 만수산 사방에 불을 질러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불을 질러 버리면 불길에 견디지 못하고 두문동에서
뛰쳐 나오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문동에 숨어 든 고려조의 망국 지사들은 만수산 전체가 큰 불덩이가 되었음에도 불에 쫒겨 나오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杜門不出)

이로 인하여 개성에는 두문동 정신이라는 새로운 말이 생겼고 이런 정신적 영향으로 개성 사람들은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사는 사람들은 없었다.

따라서 조선왕조에서는 인재人材를 등용할 때 서북(西北)사람을 배척하게 되는 전통이 만들어지게 됐다.
이와 함께 개성 사람들은 호구지책으로 장삿길에 나서게 되었으니

흔히 "개성상인"이라고 하면 이익을 취하는데 영악함이 남달라서 지금까지도 개성 사람들을 흔히, "깍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익에 영악한 개성 사람들이지만 신용이 알뜰하고 셈이 바르기론 개성 상인을 따를 사람이 없는 것이다.

죽음의 도시와 다름없는 개성의 거리를 거닐다 보니
김삿갓은 문득 정몽주가 살해된 선죽교(善竹橋)를 찾아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죽교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보세요 말씀 좀 묻겠습니다.
선죽교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김삿갓이 지나가는 선비를 붙잡고 물어 보니, 사십쯤 되어 보이는 선비는 얼굴에 근엄한 빚을 띄며,
"포은 선생님이 운명하신 선죽교를 가시려고요?
이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서 말만 듣고 찾으시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내가 앞장 설 터이니 따라 오시오."하며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길잡이로 나서주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이렇듯 외지에서 온 선죽교 참배객을 앞장서 인도하는 개성 사람들을 보건데 이곳 사람들이 정몽주 선생을 얼마나 흠모하고 사랑하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윽고 선죽교에 닿자마자 선비는 다리 앞에서 머리를 숙여 잠시 묵념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포은 선생께서는 이 다리 위에서 이방원의 하수인 조영규라는 놈의 철퇴에 맞아 무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포은 선생께서 흘리신 성스러운 피는 이 다리 돌 속에 깊숙이 물들어 3백년이 지난 지금도 돌이 이렇게 붉습니다.
보십시요, 이게 포은 선생께서 흘리신 핏자국 입니다."

선비의 말을 듣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선죽교 돌에는 군데군데 핏자국이 남아 있는 듯이 보였다.

김삿갓은 붉은 핏자국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무심한 돌도 충신의 피를 알아 보는 모양 입니다.
그러나 이 다리에는 충신을 기리는 비각碑閣 하나
없는 건 왜입니까 ?"

그러자 선비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나라에서는 포은 선생의 지조 굳은 충성심이 두려워
간신히 비석 하나만이 있을 뿐 비각조차 세우지 못하게 하였기에 누가 목숨을 걸고 비각을 세우려고 하겠소이까?"
선비는 선죽교에 비각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이렇게 말을이었다.
"조선 왕조가 되고 난 뒤에는 포은 선생님의 충성심을 누구도 찬양하지 못한답니다.
포은 선생님의 충성심을 모르는게 아니라 섣불리 찬양했다가는 목숨이 달아날까 무섭기 때문이지요.
내가 알기로는 석희박이라는 무명시인의 시가 한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시는 어떤 시옵니까 ? "

그러자 선비는 아래와 같은 시를 한 수 읊어 보였다.

​산천은 옛 대로되 거리는 비어 있고
저녁놀 잠긴 곳에 물소리만  처량쿠나
홀로히 말 세우고 옛 자취를 찾아 보니
한 조각 비석에는 "정충문"만 남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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